이탈리아 아씨시, 2019년 여름
도시는 무수한 조각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 곳을 지나고 잠시 속해보는 과정에서 그 조각 중 일부를 발견하고 주머니에 넣어둘 기회를 얻곤 했다. 오랫동안 깊이 들여다 보면 더 많은 조각을 가질 수 있지만, 아주 잠시 들르는 도시에서는 여러 개의 조각을 담고 엮어가기 어렵다. 그럼에도 손에 쥐게 된 작은 하나의 조각이 마음 속에 깊이 박힐 때가 있었다.
아씨시는 이탈리아에서 6번째로 방문한 도시였다. 5주의 유럽 여행은 체력이 좋지 않은 나에게 버거웠고, 그 여정의 한가운데를 지나고 있던 발길은 지쳐 있었다. 여행에도 쉼표가 필요하다는 것을 절감했다. 아씨시를 가기 전에 나는 로마에서도 아팠고, 피렌체에서도 아팠기 때문이다. 매일 걷고 또 걸으며 무엇이든 눈에 담으려는 여행객의 열정을 태울 연료는 차츰 떨어져 갔고, 열이 오르고 피곤해서 하루종일 침대에 누워만 있는 날도 꽤 있었다. 행복한 경험으로 채워져야 할 여행이 피로와 권태로 뭉친 상태로 아씨시에 도착했다.
내가 아씨시에서 가지게 된 조각은 누군가의 표정이었고, 그렇게 기억에 남은 도시는 그곳이 유일했다.
흥미로운 볼거리로 가득찬 파리나 로마와 같은 유럽의 대도시에 비해 아씨시는 텅 빈 작은 마을로 보이기도 했다. 아씨시에는 관광 명소가 많지 않다. 가장 유명한 곳은 대도시의 화려한 성당에 비해 비교적 작은 성 프란체스코 성당이고, 어떤 이에게는 볼 것이 그것 뿐이라고 느껴질 수도 있다. 아씨시에서는 사람들이 여행에서 들르고 싶어하는 굵직하고 휘황찬란한 장소가 이어지지 않는다.
처음 역에 도착했을 때 보였던 것은 낮게 늘어선 건물들과 한적한 길, 그리고 그 길을 사뿐히 걷는 수녀님들이었다. 그 곳은 관광을 위한 도시와는 거리가 멀었고, 발을 디디자 마자 무언가를 구경하기 위해 도착한 것이 아닌 누군가의 삶 속에 내려앉은 기분이었다. 그들의 얼굴에 담긴 평화가 내가 처음 마주한 것이었다. 느린 발걸음 사이에 그 얼굴을 여러 번 만났다. 처음 도시에 도착했을 때 멀찌감치 떨어져 바라보기도 했고, 함께 성 프란체스코 성당으로 가는 버스에 올라 가까이서 마주하기도 했다. 누군가의 온화한 얼굴이 그 도시의 기억으로 새겨진다는 것이 참 묘했다. 그 얼굴은 내가 실체로 만난 평화 중 가장 와닿는 것이었다. 언제나 동경하던 평화를 마음 속에 피워낸 사람들의 표정은 이전에 미술관에서 봐온 그 어떤 그림보다 아름다웠다. 한 마디도 알아들을 수 없는 그들의 언어는 해석 없이도 잔잔했다.
우리는 아씨시에서 겨우 하룻밤을 머물렀다. 내가 갔다고 말할 수 있는 명소는 성 프란체스코 성당과 코무네 광장이 다였고, 흐릿하게 기억 속에 자리잡은 것은 숙소 주변의 조용한 거리 정도이다. 나는 그 도시를 알지 못한다. 그럼에도 그 곳은 마음 속에 평화의 도시로 자리 잡았다. 여행 중 마음을 쉴 수 있었던 유일한 도시, 느리고 부드럽던 도시, 얼굴을 마주한 대화 없이도 온기가 전해지던 도시.
하룻밤을 지내는 경험 속에서 쥐었던 작은 한 조각은 그 어떤 조각보다 빛나고 따뜻했다. 아씨시는 3주간의 이탈리아 여행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이다. 그리고 5주간 발길에 닿았던 18개의 도시 중 가장 다시 가고 싶은 도시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무엇으로 도시를 기억하고, 나는 지금까지 무엇으로 도시를 기억해왔을까. 조각의 개수가 많을수록 가치있게 기억되는 것이 아니었다.
찰나의 순간에 발견한 한 조각으로 모르는 세계를 기억에 남기고, 대륙을 건너 먼 곳에 마음의 평화를 표시해두고 올 수 있었다. 7월의 무더위 사이 쉼표같은 그 곳에서, 여행지와 가장 거리가 멀게 느껴지는 곳에서 몸과 마음이 같이 움직이는 가장 진정한 여행을 경험했다.
멀찌감치 떨어져서 본 수녀님의 표정, 작고 따뜻한 동네 이발소, 한 편의 소설 같이 이어지던 성당 속 걸음들, 노을 진 코무네 광장의 양고기 요리와 뇨끼, 좁은 골목 속을 꽉 채우던 따뜻한 햇살.
그 도시를 사랑하는 데에는 하루면 충분했다.
이탈리아에 가신다면, 아씨시에 하루 정도는 내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