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진 후에야 비로소 다시 쌓을 수 있는 것들
노트르담의 화염, 콰지모도의 종소리, 그리고 우리가 지켜낸 '뼈대'
평안했던 크리스마스 휴가가 끝난 후 일상으로 돌아온 첫 번째 주 금요일 오후.
오랜만에 파리의 심장, 시테 섬(Île de la Cité)으로 향한다.
이곳에는 프랑스 모든 도로의 거리 측정 기준점이 되는 '포인트 제로(Point Zero)'가 있다. 그리고 그 바로 앞, 850년의 시간을 품은 거대한 돌의 숲, 노트르담 대성당(Cathédrale Notre-Dame de Paris)이 상처 입은 거인처럼 서 있다.
나는 아직도 2019년 4월 15일의 저녁을 잊지 못한다.
파리의 하늘이 시뻘건 화염으로 뒤덮였던 그날 밤. 96미터의 뾰족한 첨탑이 힘없이 툭 꺾여 불길 속으로 사라질 때, 센 강변에 모여든 파리지앙들은 비명을 지르는 대신 나직이 노래를 불렀다.
'JE VOUS SALUE MARIE(성모송)' 눈물범벅이 된 얼굴로 부르던 그 합창 소리가 마치 무너져가는 성당을 붙잡으려는 기도처럼 들렸다.
그날 우리는 목격했다. 영원할 거라 믿었던 견고한 성역도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을. 그리고 동시에 깨달았다. 돌은 무너져도 사람들의 마음은 무너지지 않는다는 것을.
1. 돌은 불타도 이야기는 남는다
빅토르 위고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의 유명한 오프닝 곡, '대성당들의 시대'는 이렇게 시작한다.
"Il est venu le temps des cathédrales..."
(대성당들의 시대가 찾아왔어...)
"인간은 별에 닿기 위해 유리와 돌로 층계를 쌓았지."
인간의 욕망과 신앙심이 빚어낸 이 거대한 석조 건물은 하늘에 닿고 싶어 했으나, 결국 중력과 화마(火魔)를 이기지 못하고 무너져 내렸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돌로 만든 성당이 위기에 처할 때마다 그것을 다시 일으켜 세운 건 '예술'과 '이야기'였다.
사실 빅토르 위고가 소설을 썼던 1831년, 노트르담은 이미 낡고 버려져 창고처럼 쓰이다 철거 위기에 놓여 있었다. 위고는 성당의 어두운 구석 벽에 누군가 새겨놓은 'ANANKE(아낭케, 숙명)'라는 단어에서 영감을 받아 펜을 들었다. 소설이 대성공을 거두자 시민들은 "이 위대한 유산을 살려내자"라고 일어났고, 그렇게 노트르담은 한 번의 죽을 고비를 넘겼다.
이번 화재도 마찬가지다. 성당은 처참하게 불탔지만, 그 아픔 때문에 우리는 노트르담을 더 뜨겁게 주목하게 되었다. 돌은 부서지기 쉽지만, 그 안에 깃든 서사는 불타지 않는다. 때로는 눈에 보이는 형체보다, 보이지 않는 마음의 건축물이 더 오래가는 법이다.
2. 콰지모도의 종소리, 나를 깎아 타인을 위로하다
뮤지컬 속 꼽추 콰지모도는 흉측한 외모 때문에 세상으로부터 조롱받지만, 집시 여인 에스메랄다를 향해 가장 순결한 사랑을 바친다. 그가 마지막에 차가운 에스메랄다를 부둥켜 안고 부르는 노래, <춤을 춰요, 나의 에스메랄다(Danse Mon Esmeralda)>는 처절한 절규다.
그런데 가만 보면, 콰지모도의 사랑은 그의 삶과 참 많이 닮았다. 미련할 정도로 모든 것을 내어주는, 그 서글픈 헌신 말이다.
그는 사람들에게 아름다운 종소리를 들려주기 위해, 매일 거대한 종 바로 옆에서 귀를 열어야 했다. 그 굉음 때문에 그는 결국 청력을 잃는다.
남들에게 위로가 되는 소리를 전하기 위해, 정작 자신은 파괴되는 삶. 사랑을 위해 마음을 다 내어주고, 의무를 위해 육신마저 닳아 없어진 남자.
어쩌면 그의 비극은 짝사랑이 아니라, 자신을 지킬 줄 몰랐던 그 처절한 성실함에 있는지도 모른다.
가족을 위해, 회사를 위해, 혹은 잡히지 않는 꿈을 위해 매일 스스로를 깎아내고 있는 당신처럼 말이다.
우리는 남들에게 "좋은 사람", "성실한 직원"이라는 찬사를 듣기 위해, 정작 내 안에서 울리는 "힘들다"는 비명소리엔 귀가 멀어버린 채 살아가고 있는 건 아닐까.
3. 지붕을 버리고 탑을 지키다; 소방관의 결단
화재 당일 밤, 전 세계가 숨을 죽이고 지켜보는 가운데 현장의 소방대장은 잔인한 선택의 기로에 섰다. 불길이 너무 거세져 '숲(The Forest)'이라 불리던 목조 지붕을 구하는 건 불가능했다. 자칫하면 거대한 종이 매달린 두 개의 탑마저 무너져 내릴 상황이었다.
그때 그들은 결단했다.
"지붕은 포기한다. 하지만 두 개의 탑만은 목숨 걸고 사수한다."
소방관들은 무너져 내리는 불길 속으로, 섭씨 800도가 넘는 열기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들은 인간 띠를 만들어 유물을 옮기고, 탑 내부로 진입해 물을 뿌리며 석조 뼈대를 식혔다. 누군가는 무모하다고 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들이 목숨을 걸고 지켜낸 것은 단순한 돌덩이가 아니었다. 파리의 역사, 그리고 인류의 유산이었다.
결국 지붕은 전소되었지만, 노트르담의 상징인 두 개의 탑과 장미 창은 기적처럼 살아남았다.
살다 보면 우리도 그런 순간을 만난다. 모든 것을 다 지킬 수는 없는 위기의 순간. 그때 우리는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남겨야 할까.
화려한 지붕(겉치레, 자존심)은 타버리더라도, 내 삶을 지탱하는 두 다리(신념, 가족, 혹은 나 자신)만은 끝까지 지켜내야 하지 않을까.
그것만 남아 있다면, 지붕쯤이야 언제든 다시 올릴 수 있으니까.
4. 폐허, 다시 시작하기 가장 좋은 땅
성당 앞 광장, '포인트 제로'를 밟아본다.
이곳은 파리의 끝이 아니라 시작점이다.
혹시 지금 당신의 마음속 어딘가가 무너져 내리고 있는가.
열심히 쌓아 올린 것들이 한순간에 잿더미가 된 것 같은 허무함에 잠 못 이루고 있는가.
그렇다면 슬퍼하되, 절망하지는 말기를.
850년 된 대성당도 무너졌다가 다시 일어서는데, 고작 수십 년을 산 우리 인생의 넘어짐 쯤이야 툭 털고 일어나면 그만이다.
오히려 그 무너짐 덕분에 당신은 알게 될 것이다.
내 삶에서 불타 사라질 껍데기는 무엇이고, 저 화마 속에서도 절대 타지 않고 남을 황금 같은 '본질'은 무엇인지.
소방관들이 목숨 걸고 지켜낸 저 탑처럼, 당신 안에도 절대 무너지지 않은 단단한 기둥이 있음을 나는 믿는다.
허물어진 마음 밭은, 역설적이게도 새로운 꿈을 짓기에 가장 좋은 땅이다.
지금은 당신의 인생에 잠시 '공사 중' 팻말이 걸려 있을 뿐이다.
언젠가 저 흉물스러운 비계를 걷어내고 더 웅장하게 드러날 당신을, 나는 파리의 노을 아래서 미리 축하하고 싶다.
그러니 오늘은 콰지모도처럼 마음껏 울어라.
그리고 내일은 다시 돌 하나를 집어 들어라.
우리는 다시 쌓을 수 있다. 반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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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chaine]
다음 화에서는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궁전, 루브르 박물관의 유리 피라미드 아래로 내려갑니다. 모나리자의 신비로운 미소 뒤에 숨겨진, 두 팔을 잃은 <밀로의 비너스>와 머리가 없는 <사모트라케의 니케>를 만나러 갈 거예요. "완벽하지 않아도, 아니 부족하기에 더 위대할 수 있다"라고 말하는 '결핍의 미학'에 대해 이야기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