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락경을 해부하다
《사람, 임락경》독서 후기를 겸하는 글
책을 읽으며 눈물을 흘린 건 오랜만의 일이었다. 《사람, 임락경》이라는 책은 스물다섯 명이 공동으로 쓴 책이다. 임락경의 벗, 제자 그리고 그를 존경하는 저명인사들과 그가 입양해 키운 딸이 한 꼭지씩 책을 완성했다. 이 책은 임락경 목사 팔순 선물로 헌정되었다.
어떻게 견뎠을까? 어떤 마음이었을까? 어떤 대목에서는 가슴이 뭉근해졌다. 함부로 흉내 낼 수 없는 박애정신, 자비심 그리고 누구든 평등하게 대하는 성품을 느끼면서 존경심이 일었다. 때로는 감동이, 때로는 눈물이 내 가슴을 후벼 팠다.
어느 대목에서는 그의 마음을 뜯어보거나 어림잡아 보려고 했다. 하지만, 시정잡배인 나의 속 좁은 심성으로는 그를 짐작할 수 없었다. 아우라가 아닌, 시골 사람의 온기로 후광을 이루는 모습, 이것이 그의 프로필이자 키워드라고 말하고 싶다.
임락경 목사를 알고 나면 결코 그를 존경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자칭, 촌놈 또는 돌파리(이치를 돌파한 사람)라고 부르는 이유를 알려면, 그를 직접 만나거나 책을 통해 그의 발자취를 찾아야 한다. 아니면, 정읍 사랑방교회에서 열리는 '건강교실'로 찾아가야 한다.
그는 음식으로 못 고치는 병은 없다고 주장하는 자칭 돌파리 목사이자 농부다. 나의 경우를 예로 들어보겠다. 나는 아내와 함께 건강교실에 다녀왔다. 처음 다녀와서는 1. 일주일에 한 번 녹두죽을 먹고 2. 겨우살이 차를 마시며 3. 과일을 좋아하는 아내는 과일을 끊고, 과일을 싫어하던 내가 과일을 먹으며 4. 닭고기와 계란, 식용유를 사용한 음식과 과자를 끊고 5. 쓸개환을 먹었다.
두 번째 다녀와서는 1. 나는 아카시아 꿀을, 아내는 잡화꿀을 먹고 2. 백토 물을 마시며 3. 도토리가루와 미숫가루를 먹고 4. 배합사료를 먹은 고기를 끊고 유기농업으로 키운 작물만 섭취하며 5. 아내는 돼지고기를 끊고 소고기를, 나는 야채식을 즐긴다. 물론, 이 외에도 라면을 끊는 등 식습관을 바꾼 예가 수없이 많다.
30~40명 정도의 장애인, 말기 암환자, 고아와 의지할 곳 없는 노인들을 위해 50년 동안 공동체를 운영한 박애주의자 임락경은 노인이 되었다. 힘에 부친 80살 노인은 울며 겨자 먹기로 공동체 시설 문을 닫아야 했다.
체력이 뒷받침하지 않았고, 기관에서 운영하는 시설로 이주하는 장애인이 많았기에.
공동체 시설과 시골교회가 소재한 화천, 사랑방교회와 교육시설이 있는 정읍 그리고 정농회 본부가 있는 홍성을 오가는 여정은 젊은이들도 소화하기 힘들다. 그런데도 그는 여전히 노구를 이끌고 농사를 지으며 건강교실 강의를 한다. 매일 경운기를 몰고, 예초기를 둘러메고, 장작을 패는 노인이다. 예전처럼 힘은 없지만, 60년 숙련된 요령으로 농사일을 해내는 농부 임락경은 종일 웃으며 밭일을 한다.
그는 결핵환자, 나병환자 수용시설에서 십몇 년을, 그리고 자신이 만든 교회 시설에서 오십 년을, 총 67년 동안 변함없이 봉사에 헌신한 참 어른이다. 평생 새 옷을 사 입지 않고, 정부 최고위급의 지도자가 개최한 파티에 고무신을 신고 입양한 딸들 손을 잡고 참가한 사람, 거지인 줄 알고 출입을 거부당했던 진정한 박애주의자 그를 존경하지 않는다면 누굴 존경하겠는가?
나는 임락경 목사의 팬이 되었다. 나는 그에게 한 가지 봉사할 숙제를 달라고 했다. 손재주가 없으니 머리를 쓰는 일을 날라고. 그러자, 목사님은 건강교실 교재를 제본해 오라고 했다. 작은 일부터 하나씩 해내면서 임락경에게 다가가는 삶, 그 길을 가려고 한다. 쭈삣거리지 않고 임락경을 돕는 자원봉사자 모임에도 들어가 볼 참이다. 나는 늦게 만난 성인 임락경의 터전으로 조금씩 동화되기로 마음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