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자들의 회원 번호를 입력하다보면 신기한 우연을 종종 보게 된다. 238번과 138번과 038번 회원이 연속으로 오셔서 와 하고 놀라고, 127번과 712번 회원이 또 연달아 오시고, 김은혜님과 이은혜님이 같은 날 오신다. 6년 째 이용자의 물품 수령 정보를 전산프로그램에 입력하고 있는 나는 상시로 이런 일들을 접한다. 하지만 일이 일인지라 사주나 팔자를 언급하고, 인연 운운하지 않으려다 보니 6년 째 관찰만 해왔다. 그런데 6년 만에 결국 내 입에서 이런 류의 감탄이 터져 나왔다.
나는 사회복지사다. 그러다보니 어려운 일이 이름을 따라간다거나, 비슷한 사람들이 비슷한 일을 겪는다는 생각은 추호도 안 한다. 다만 이분들 뿐 아니라 우리 모두 서로를 지나칠 때, 깊은 연이 닿은 거라고 생각하고 서로를 귀하게 여겨야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평생 마주칠 일도 없는 사람들 속에서 이렇게 때때로 같은 장소, 같은 시간을 경유하는 게 얼마나 놀라운 인연인지 숫자들이 보여준 것만 같다.
날씨가 덥네, 덥네 하며 가을답지 않다고 투덜거리면서도 단풍철을 맞았다. 새파랗던 나무가 울긋불긋하다. 출근하면서 지나가는 가로수길이 평소와 달라 올려다보니 파란 하늘 아래 그렇게 꽃처럼 수놓여 있었다. 마치 한 얼굴처럼 빨갛고, 노랗게 물들어 가는 나뭇잎들을 보면서 나는 문득 깨달았다. 나 또한 깊은 연으로 여기에서 그분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어쩌면 238번과 138번의 이용자분들보다 내가 더 가까운 연인지도 모른다. 우리들이 어우러져 만들어 내는 풍경도 장관일 것이다. 그 인연의 씨실과 날실이 엮어 만든 오늘은 멀리서 보면 빨갛고, 노랗게 물들어 그저 아름다울 텐데.
# 읽고 있던 책에서 마음에 남는 자료가 있어서 공유합니다.
전쟁을 겪은 군인들은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에 많이 시달린다. PTSD는 그들의 정신을 전쟁터로 되돌려보내고 공포에 질리게 만든다. 치료가 요원하고, 사실 전쟁이 길어지면 아무리 강한 군인이라도 걸릴 수 있다. 그런데 그들을 연구한 정신의학자 로이 그링커와 존 스피걸은 다음과 같은 사실을 발견했다.
"군인들은 지속적인 위험 상황 속에서 동료와 상관에 대한 극단적인 정서적 의존을 발달시킬 수 있었고, 심리적 발병으로부터 보호해 주는 가장 강력한 요인은 전투 부대의 사기와 리더쉽(이걸 군인 간의 애착, 사랑으로 표현하는 심리학자도 있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