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귀한 영혼은 자신을 존경한다

또 다른 글3

by 최수현


3.

소희는 모든 것을 되돌리는 꿈을 꾸곤 한다. 그리고 인생의 어느 시점으로 되돌아갈 지 고민한다. 어디서부터 시작하면 내가 더 잘 해낼 수 있을 지 두 번째 기회를 가늠해본다. 하지만 늘 그 생각 끝에 머무는 깨달음은 지금 이 순간이야말로 두 번째 기회라는 것이다.

아무 표지나 징조도 없는 하늘이 드러워진 매일 매순간은 구름의 변덕이나 날씨의 변화무쌍한 자기 표현에도 불구하고 인생은 계속 되리란 것을 시사한다. 시간은 영원하진 않지만 살아있는 한 살아내는 게 법칙이며, 사람들은 저마다 길을 만들어 간다.

그 길은 평탄하지만은 않다. 반드시 가야만 한다는 사실 외엔 공통점도 없다. 하지만 그것으로 충분하다는 것을 소희는 이해한다. 계속 걷다보면 알게 된다.

때때로 어떤 결정이 나길 갈망할 때도 있었다. 삶으로부터 정답을 찾고, 그것으로부터 삶을 찾았다. 하지만 늘 되돌아오게 되는 생각은 삶은 계속되리란 것 뿐이었다.

인생엔 우연도, 기적도, 비약도 없다. 한 걸음씩 제대로 걸으면 한 걸음만큼 앞으로 나갈 수 있을 뿐이다. 소희는 이 명징한 사실이 좋았다. 때때로 이해할 수 없을 만큼 화려한 삶을 목도하기도 하지만 그 삶이 있음으로 해서 소희의 길이 의미를 잃어버리진 않는다. 소희는 자신이 아는 만큼만 살아지는 것이 다행스럽기까지 하다.

책을 읽기 시작했다. 인생이 도저히 이해가 안 될 때, 무턱대고 포기하지 말고 책을 백 권만 읽어보라던 고등학생 시절 담임 선생님의 말이 생각났다. 백 권을 읽어도 인생을 알 수 없어서 이 백 권을 읽었고, 또 읽으며 그동안 오백여권의 책이 자신에게 말을 걸었다. 수치심에 마음을 다잡기가 힘들 땐 수치심이 뭔지 제대로 들여다보려고 심리학책을 읽기도 하고, 친구도, 가족도 없어 외로울 땐 단란한 가족들에 관한 소설도 읽는다. 그리고 삶이란 무엇인지, 가난과 절망과 악이 왜 존재하는지 알고 싶어서 이 책, 저 책 탐닉하다가 가장 실패한 사람들의 이야기도 찾아보았다. 인간으로서의 삶을 포기한 범죄자들에 관해서도 많이 읽었다. 그들의 일탈은 시사하는 바가 컸다. 삶이 계속되리라 믿지 않는 것이 악의 실체라고 소희는 생각했다.

어떤 날은 예상 밖의 횡재를 하기도 하고, 어떤 날은 지워버리고 싶을 만큼 버겁기도 하지만 하늘의 광대함을 바라보다보면 시간의 의미가 이해가 되었다. 나는 영원히 살 순 없다. 언젠가는 지상에서의 마지막 날을 보내게 될 것이다. 하지만 하늘도, 시간도 한 방향으로 흐르는 닫힌 공간이 아님을 마음 켜켜이 새기며 과거로도, 미래로도 아닌 오늘을 산다.

어떤 사람들은 중요한 사실들을 알고 있다. 그것은 삶을 움켜쥐는 방법이나 영원히 사는 방법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가는 찬란한 지혜다. 그걸 책에서, 길 위에서 주워 담아 자기 자신이 되어 간다. 성공한 나도, 영원히 행복해진 나도 아니지만 ‘고귀한 영혼은 자신을 존경한다.’던 이진아가 가르쳐준 니체의 말이 던진 질문의 유일한 해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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