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귀한 영혼은 자신을 존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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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수현

2.


어스름 속에 또 다른 하루의 빛이 잉태한다. 찬바람이 휙 불어 붉게 물든 하늘을 흐트리고, 퍼뜨린다. 구름 사이로 진홍빛 아침해가 번져나가며 위험스럽게 빛난다. 소희는 마스크를 고쳐쓰며 가던 걸음을 재촉한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사람들의 이동이 거의 금지되고, 마스크 없인 어디로도 갈 수 없다. 매일 뉴스는 사망자 수를 갱신하며 보도한다. 재택 근무가 일상이 되었고, 아이들은 학교에 가지 않는다. 해가 채 저물기도 전에 가게들은 문을 닫는다. 사람들의 마음도, 일상도 꽁꽁 얼어붙었다. 할 수 없는 일이 많아졌다.

대부분의 복지 시설도 문을 닫았고, 자활에서도 참여자들에게 집에서 대기하라고 안내했다. 소희가 푸드마켓에 들어간 지 석 달도 채 안 되서 또 다시 직장을 잃을 상황에 처했다.

이진아는 유급 휴가라며 안심시켰지만 소희는 일을 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 것을 견딜 수가 없었다. 그래서 자활의 지시사항을 전달하며 집으로 돌아가라는 조예승 소장에게 일을 계속 하고 싶다고 간청했다.



“괜찮으시다면 저는 계속 나오고 싶어요. 아직 일도 배워야 하는데 쉬려니 마음이 편치 않네요.”


위기 상황이니만큼 복지 시설이 더욱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생각하는 조예승은 푸드마켓의 문을 닫을 생각이 없었다. 혼자서라도 이끌어가야 겠다고 생각하던 차에, 소희의 간청은 오히려 반가웠다. 직원이 코로나에 걸린 터라 더더욱 그랬다.


“그럴래요? 그럼 계속 나오세요.”


코로나로 인해 이동이 어려워지고, 많은 복지 시설의 업무가 중단되면서 취약 계층의 생활은 더욱 힘들어졌다.

푸드마켓은 시에서 선정한 오백명의 저소득층에게 매달 식품등을 제공한다. 그런데 코로나로 인해 긴급한 도움이 필요한 취약 계층이 늘면서 오백명에게만 물품을 제공하는 것은 특혜처럼 보일 정도였다.

경기도는 경기 침체와 도민의 긴급한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서 ‘먹거리그냥드림’을 시작했다. 도민이면 누구든 결식 위기를 느끼지 않고 살 수 있도록 푸드마켓 서비스를 개방한 것이다. 이 사업에 참여할 푸드뱅크마켓을 모집했을 때 조예승은 적극적으로 참여했던 차였다.


‘먹거리그냥드림’은 코로나 펜데믹 기간 내내 이어졌다. 하루에 이백여명의 이용자가 찾아왔고 다른 업무가 마비될 지경이었다. 하지만 소희는 직원보다 더 열심히 일했고, 어떤 일이 주어지든지 거부하지 않았다. 이용자 응대와 물품 관리 뿐 아니라 행정이며, 심지어 기부처 관리까지 기회가 되는대로 모두 배웠고, 바닥에 붙은 껌을 떼라고 할지언정 해야만 한다면 전부 다 했다. 소희는 일을 배워야겠다는 생각 뿐이었다. 그래서 ‘먹거리그냥드림’는 오히려 기회같았다. 이렇게 바쁘지 않았다면 잡무만 주어졌을지도 모른다.


그런 소희를 보면서 직원인 재현은 마음이 불편했다. 자활 참여자는 일반 직장인처럼 월급을 받지 않는다. 기관은 삼십만원을 자활에 내고 참여하고, 자활 참여자는 최저시급도 안 되는 돈을 받고 파견된다. 경력과 기술이 없는 탓에 직원의 개념보다는 일을 배우는 수습으로 여겨졌다.


재현은 껌을 떼고 있는 소희 옆에 앉아 거들며 말했다.


“왜 이런 일까지 해요.”


소희는 이런 질문을 하는 재현이 고맙기도 하면서도 우스웠다. 일을 할 수 없다는 사실이 삶을 옥죄고, 경제적 한계까지 몰고간다는 걸 모르는 사람들이 부럽다.


”코디님은 코디님 일 하세요. 전 괜찮아요.“


재현은 푸드 코디네이터라고 부르는 푸드마켓 직원이다. 기부처 개발과 관리, 물품 수령과 배분, 이용자 관리와 행정을 도맡아 한다. 직원이 소장과 단 둘 뿐이라서 늘 일에 쫓긴다. 그러던 차에 소희가 일에 관심을 가져서 가르쳐준다는 핑계로 하나씩 넘기며 재현은 약간의 죄책감을 늘 가지고 있었다.


큰 키에 덩치가 좋은 재현은 여기에 오기 전에 장애인 생활 시설에서 일했다. 시설에 입주한 장애인들을 먹이고, 재우고, 씻기고, 가르치며 삼교대로 힘에 부치게 지냈다. 재현이 돌보던 사람들은 성인이라서 힘도, 고집도 장난 아니었다. 월급은 사백이 넘게 받았지만 스트레스와 피로에 다른 일을 꿈꿨다. 그래서 푸드마켓으로 전향했는데 여기서도 업무량은 만만치가 않았다. 하루 두 세시간은 운전을 하며 기부물품을 수령해야 했고 일톤여의 물품을 매일 나르고 배분했다. 그리고 남는 시간엔 행정 업무로 야근을 해야할 정도로 업무량에 치였다. 게다가 그 와중에 ‘먹거리그냥드림’이 시작되어서 하루 이삽십명 오던 이용자가 수 백명으로 늘었고, 소화해내는 물품량도 만만치 않았다. 그래서 피로가 누적된 차에 소희를 보니 안타깝기도 하고 짜증도 났다.


소희는 긴 머리를 한 손으로 움켜 쥐고, 어린애처럼 쪼그려 앉아서 한 손으로 열심히 껌을 떼었다. 이제 삼 십분 후면 이용자들이 들이닥칠 것이다.


‘팔자지, 뭐.’


재현은 소희의 일에 대한 고집스런 집착에 대해 그렇게 결론을 내렸다. 재현도 소희가 한부모 가정의 법정 저소득 계층으로 이용자들과 다를 바 없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측은한 마음이 더했는데 불쌍한 사람을 꼭 이용하는 것만 같았다. 단 돈 삼십만원에.


하지만 조예승의 생각은 달랐다. 자활 참여자로 머무는 동안 일하는 걸 배워두지 않으면 자활이 끝나고 나서 소희가 원상태로 되돌아갈 것을 알았다. 그래서 기회가 되는 한 모든 일을 가르치려고 했고, 제법 잘 따라오는 소희를 보며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따보라고 제안도 했다.


”사이버대 다녀봐요. 일하면서 충분히 할 수 있어요. 이수만 하면 사회복지사 2급 자격증이 나오니 시간 내서 해봐요.“


시계가 10시를 가리키자 길에 늘어선 줄이 활기를 띄기 시작했다. 첫 이용자가 들어섰다.


“안녕하세요.”


이용자 은복은 열 시가 되자마자 푸드마켓에 들어섰다. 일곱시부터 와서 제일 처음 순번이 될 수 있었다. 지금은 자기 뒤로 줄이 이어져 골목을 돌아서까지 길게 늘어선 것을 알고 있다.


“어서오세요.”


소희는 이용자 응대를 위해서 노트북 앞에 앉으며 인사를 건넸다. 컴퓨터 화면을 켜고 이용자의 인적사항을 간단하게 적는 사이에 재현은 물품을 꾸려 은복에게 전달했다. 업무가 시작되기 전 사십 여개를 미리 포장해놨지만 금방 동이 날 것이다.


은복은 비닐봉지를 받아들고 무엇이 들었는지 들여다보았다. 라면 두 개와 빵 여남은 개, 그리고 과자 두 봉지, 우유 두 개.


“이게 전부요?“


재현은 소희를 힐끔 쳐다봤다. 소희는 괜찮다고 재현에게 눈짓을 하고 은복에게 말했다.


“죄송해요. 하지만 이용자가 많아서 금방 동이 나요.”


은복은 저소득층이 아니다. 십 억짜리 집도 있고, 자식들이 용돈도 준다. 하지만 도에서 누구에게나 공짜로 준다고 해서 매일 찾아와 물품을받고 있었다. 가끔은 밀키트나 고기팩 같은 것도 나온다. 기부 상황에 따라 물품이 달라지므로 매일 찾아오는 재미가 쏠쏠하다. 그런데 오늘같이 물품이 허접한 날에는 애써 기다린 보람이 없어서 신경질이 났다.


“좀 더 줘봐요. 집에 가족들도 있는데.”


“죄송해요. 오신 분만 드릴 수 있어요.”


“아니 그러면 몸이 아픈 사람들은 누가 챙겨줘요?”


괜한 생떼인 걸 안다. 하지만 은복은 소희를 절절매게 만들었다.


“선생님, 많이 어려우시면 저희가 행정복지센터에 상담을 의뢰해 드릴게요. 가셔서 복지 서비스 상담을 받아보세요.”


뒤에서 기다리던 사람들은 앞 사람이 늑장을 부리자 발을 동동 굴렀다. 뒷 줄에서 어떤 할머니가


“아니, 어려운 때에 이렇게 챙겨주시는 것만으로도 고맙지 뭘 그래요. 그리고 사람들 기다리는 거 안 보이슈?”


라고 한마디를 하자, 은복은 뒤를 힐끗 보고는 마지못하는 척 물러섰다. 줄이 아까보다 더 길어보였다.


은복처럼 매일 물품을 받으러 오는 어르신이 부지기수다. 필요 이상으로 받아간다. 매일 오시다보니 한 사람, 한 가정이 소화하기엔 물품 양이 많았다. 그래서 물품양을 줄인 것은 사실이다. 공짜라는 생각에 찾아오는 사람들이 태반이고, 막상 행정복지센터에 의뢰해보면 대상자도 거의 없다. 소희는 실제 도움을 받아야할 소수의 사람들을 위해서 이만큼 넓게 그물을 치는 것은 밑빠진 독에 물붓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조예승은


“지금은 코로나 위기로 법정 저소득계층이 아니라도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이 많아요. 그 사람들을 일일이 소득 조사하고 선별하는 시스템을 만드는데는 시간이 오래 걸려요. 그 사이에 복지 사각지대가 넓어지는 거죠. 좀 힘들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데까지 해봅시다.”


라고 말하며 이 사업을 두둔했다.

밑바닥까지 내려와보지 않았다면 소희는 계속 이런 복지 사업들을 세금낭비라고 일축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회복지 시스템의 도움으로 삶의 난관을 극복한 경험이 소희를 달라지게 만들었다.


”소장님 말씀이 맞네요.“


기초생활수급제도도 때때로 악용된다. 하지만 그런 사례를 줄이고자 법이 엄격해지면 정말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의 접근이 어려워지게 되고, 복지 사각지대가 넓어져 사회 문제가 된다. 먹거리그냥드림사업의 취지는 장발장을 만들지 말자는 것이다. 노숙인이 계란을 한 판 훔쳐서 재판을 받은 사건이 있었다. 어떻게 보면 그 사람을 위해서 만들어진 사업이 ‘먹거리그냥드림’이었다.


소희는 여기서 일을 하면서 복지가 뭔지 배워갔다. 그리고 사회복지 대상자인 동시에 복지시설 종사자로 이 일의 매력에 푹 빠져 버렸다. 소희는 경쟁밖에 모르던 세계에서 도태되고 자신이 정말 쓰레기 같았다. 그런데 사회 복지는 성공한 사람이 아닌 실패한 사람들을 위해서 설계된 따뜻한 정책이었다. 사회복지를 알아갈수록 소희는 세상이 그래도 살 만 하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한 달에 한 번씩 자활 교육이 있다. 아무리 일이 바빠도 자활 첨여자는 이 교육에 참석해야 한다. 소희는 오랜만에 자활을 찾았다. 사무실에 들어서니 같은 기수의 자활 참여자 몇몇과 이진아가 회의실로 막 들어가고 있었다.

소희는 사무실에 있는 다른 분들에게 폐가 안 되는 선에서 최대한 반갑게 이진아에게 인사를 건넸다. 이진아는 다른 참여자와 대화를 하던 도중에 소희가 끼어들었는데도 불구하고 귀찮은 내색도 없이 예의 그 명랑한 태도로 소희를 맞았다. 소희는 기분이 좋아졌다.

다른 사람들과 상담을 마친 후 이진아는 소희에게 다가갔다. 소희는 커피를 마시며 기다리다가 이진아가 오는 것을 보고 얼굴이 환해졌다. 그리고


“어떠세요?”


라고 안부를 묻는 이진아에게 소희는 ’먹거리그냥드림‘에 대해 들려주었다. 이진아는 열의에 넘쳐 일 이야기를 하는 소희를 찬찬히 바라보았다. 처음 봤을 땐 겁에 질린 어린애 같았다. 소희가 작기도 하고, 너무 의기소침해서 나이보다 어리게 봤었다. 그런데 생각보다 나이가 많았고, 사회 경험도 적어서 어떤 일에 참여시켜야 할 지 고민도 많이 되었다.

이진아는


”힘들진 않으세요?“


라고 종종 물었다. 그 때마다 소희는


”배우는 과정인데 힘들어도 해야죠.“


라고 씩씩하게 대답했다.

조예승이 자활 종료 후 소희를 채용하고 싶어하는 걸 이진아는 안다. 하지만 아직 소희에게 말하진 않았다. 소희가 사회복지사가 되려면 공부도 해야하고, 무엇보다도 이쪽 일이 보람은 있어도 돈이 되거나 쉬운 건 아니라 먼저 제안하고 싶진 않았다. 그런데 소희가


“사회복지 공부해 보려구요.”


라고 말을 꺼내자 이진아는 마음이 놓였다. 그리고 오랜만에 눈가에 깊은 주름이 지도록 웃었다. 자활 참여자들이 살아갈 길을 찾아내는 것을 보는 일이 이진아의 보람이다. 그런데 소희처럼 열심히 하는 사람들은 특히 애정이 간다. 삶을 포기하지 않는 것, 그것은 재능이다.


”잘 생각하셨어요.“


이진아는 진심으로 말한다.

이진아는 교육이 있을 때마다 참여자들에게 말한다.


”선생님들, 여기 오셨다고 기죽지 마세요. 다시 시작하는 용기를 내는 것은 대단한 거예요.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변하지 않습니다. 선생님들은 삶을 움직이는 주체예요. 누구 못지 않게 성실하시죠. 자신을 믿으세요. 고귀한 영혼은 자신을 존경한다고 니체란 사람은 말했어요. 그게 선생님들이 삶을 포기하지 않고 여기에 있는 이유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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