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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들 사이로 얼기설기 이어진 전깃줄 너머에서 가을 하늘이 뭉게 구름을 품고 있다. 동쪽에서 비춰드는 열기는 이제 아득히 먼 곳에서 전해 온 소식처럼 현실감을 잃었고, 제법 서늘해진 공기는 여름과 벌써 절연한 듯 모르쇠로 일관한다. 유난히 길고 무덥던 여름의 포화에 한층 더 낡아버린 건물들이 시커먼 먼지자욱을 드러내며 순한 소들처럼 늘어서 있다. 주택 단지를 지나며 골목을 꺾어 대로변에 들어서자 바람이 한차례 불고 지나간다. 어디선가 오토바이 지나가는 소리가 들리고, 강아지와 산책을 하던 젊지 않은 여자는 강아지를 자기 쪽으로 끌어당긴다. 하얀 푸들은 마지못해 주인 쪽으로 몸을 붙이면서도 눈은 정처없이 헤맨다. 짧은 호각소리와 함께 신호등 불빛이 초록색에서 빨간색으로 바뀌고 자동차들이 일제히 움직이면서 내는 소음에 강아지 짖는 소리가 묻힌다. 소희는 대로변을 힐끗 바라보다가 길 건너편 카페에 시선이 멈춘다. 길을 건너지 않으면 커피를 살 수 없다는 생각이 머릿 속을 스친다. 하지만 핸드폰을 보니 시간이 촉박해서 가던 걸음을 계속 재촉하며 지하철역으로 향한다.
지하철 입구에서는 가을 단풍보다도 이른 가을 정경이 펼쳐진다. 여전히 반팔에 짧은 스커트를 입은 여자는 자신을 지나쳐가며 바람막이를 여미는 여자와 체크무늬 남방을 입은 남자를 무심히 바라본다. 그토록 올 여름이 더웠건만 사람들의 옷차림은 더위를 잊었다. 오늘 비가 내릴 거라는 예보가 있었지만 번번이 기상예보는 틀렸고 대낮부터 무더위가 맹위룰 떨치던 기억이 아예 사라진 걸까. 소희는 자신의 검은색 반팔티와 여름용 기지바지를 내려다 본다. 좀 쌀쌀한 감은 있다. 하지만 더위가 또 이어지면 맥을 못 출 것 같다. 갱년기에 들어서면서 열감과 땀이 많아졌다.
개찰구에서 표를 끊고 모란행 승강장으로 향했다. 사람들은 울굿불굿하게 너울거리며 양쪽으로 갈라진다. 출퇴근길엔 모란행이든, 별내행이든 다를 게 없이 번잡하다.
무리에 떠밀려 에스컬레이터에 몸을 실었다. 에스컬레이터는 걷는 사람들과 서 있는 사람들로 깔끔한 두 줄을 이루고 있다. 소희는 서두르고 싶지 않았다. 서서 내려가며 사람들을 관찰한다.
하행과 달리 상행은 한산하다. 이삼층 높이의 에스컬레이터에 젊은 남자 둘, 지팡이를 짚은 노인이 서 있을 뿐 거의 텅 비어 있었다. 젊은 남자 둘은 핸드폰을 보느라 여념이 없었고, 노인의 투명할 정도로 지친 눈은 멍하니 올라가는 방향만 바라보고 있다. 집을 꿈꾸는 걸까.
집의 척력은 인력보다 약하다. 소희는 갑자기 집이 그리워졌다. 그냥 귀가해서 청소도 하고, 책도 읽고, 이불 빨래도 하며 하루를 보낸다 해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하지만 그녀가 몸을 싣은 에스컬레이터는 승강장으로 향하고 있었고, 승강장에는 때마침 지하철이 들어섰다. 백밀몽에서 깨어나며 지하철에 몸을 싣는다.
소희는 제대로 된 일을 해본 적이 없다. 일찍 결혼한 것은 아니지만 인생에 반황이 길었다. 아르바이트로 먹고 살 만큼만 벌며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렸고, 때때로 연애를 했다. 그러다가 스물여덟에 결혼을 하고, 스물아홉에 딸을 낳았다. 그리고 서른 여덟에 가난한 싱글맘이 되었다.
소희는 자신에게 닥친 새로운 생활에 무지했다. 예전엔 살아지는 대로만 살면 되는 줄 알았다. 하지만 전부 잃은 후 다시 시작하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었다. 소희가 가진 것은 맨 몸과 아이 뿐이었고, 삶의 무게는 이전과 달랐다.
구인란은 뒤져 무경력자도 가능한 서비스 직종을 찾아 보았으나, 아이가 어려서 풀타임은 힘들다보니 제대로 된 직장을 구할 수도 없었다. 간신히 반나절 아르바이트를 구했는데 월급은 팔십여만원에 불과했고, 조그만 동네 화장품 가게에서 사장님의 보조로 일하는 거라서 아이가 커도 지금보다 오래 일할 수도, 월급이 오를 여지도 없었다. 더 나이들기 전에 전망 있는 직장을 구해야 한다는 생각과 어린 딸을 돌보는 일, 그리고 궁핍한 생활은 소희의 머릴 지끈거리게 만들었다.
일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 안에 혼자 있을 때면 집요하게 찾아드는 번뇌를 잊으려고 창 밖을 바라본다. 눈에 들어오는 풍경들은 아무 의미가 없이 반복되는데도 소희는 매번 처음 보는 것처럼 관찰했다.
버스 속도에 휙휙 지나가는 건물들의 매력없는 모양새에 시선은 가도, 마음은 가지 않는다. 이울어져 가는 구시가지의 병약한 풍경은 언젠간 여기도 사라질 지 모른다는 쓸쓸함과 두려움으로 심장이 조여들게 만든다. 가난한 사람에게 영원한 집은 없다. 또 어디로 가야하나. 소희의 시선은 풍경들을 정처없이 헤맨다.
소희가 탄 버스가 신호등에 걸려서 멈췄고, 창문 맞은편 건물의 이름이 눈에 들어왔다. ‘지역자활센터’. 그리고 그곳에 걸린 현수막엔 이렇게 쓰여 있었다. ”정부지원일자리. 자활근로사업 참여자 모집“이라고 말이다. 자활은 뭘 말하는 걸까.
소희는 재빨리 핸드폰으로 지역자활센터가 어떤 곳인지 검색했다.
’가난하고, 사회 적응 능력이 떨어지는 법정저소득 계층이 스스로 일해서 다시 사회에 진입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곳. 그럼 나도 대상자네.’ 라는 생각이 소희의 머릿 속을 스쳤다.
소희는 이 년 전, 이 동네에 들어설 때만해도 빈털털이였다. 이혼 후 어린 딸 손을 잡고 여기로 찾아온 건, 어린 시절 이곳에서 살았던 막연한 기억 때문이었다. 그 기간은 짧았지만 이사를 많이 다녔던 소희에겐 고향처럼 느껴졌다. 가족이 아무도 없는 소희로서는 익숙한 장소에 기대는 심정이었다. 하지만 여기라고 삶이 쉬운 건 아니었다.
비스듬히 기울어진 지대 위에 지은 건물이라서 반 일층같은 지하였지만 어둡고 습했다. 창문 안을 들여다 보다가 벌레가 지나가는 느낌에 화들짝 놀라 몸을 떼었다. 어디선가 발을 끄는 듯한 소음이 끊임없이 들렸고, 윗층에 사는 사람의 기침 소리도 가깝게 들렸다.
소희는 부동산 중개인을 따라 현관으로 들어섰다. 손잡이를 살짝 당겼는데도 경첩이 느슨해서 떨어져나갈 것 같았다. 귀에 거슬리는 마찰음을 내며 문이 열리고, 문 앞에 늘어뜨린 대나무발을 걷으니 한줄기 빛이 집 안으로 스며들었으나 사람들의 그림자에 치여 스러졌다. 손을 더듬어 전등 스위치를 찾았다. 손에 닿는 벽지가 습기를 가득 먹어 축축하고, 기분 나빴지만 참고 전등 스위치를 찾아서 불을 켰다.
“무보증에 월세 이십인 집이 이렇지, 뭐.“
소희가 뭐라고 한 것도 아닌데 부동산 중개인이 먼저 변명조로 말을 꺼냈다.
벽지를 타고 시커멓게 곰팡이가 슬어서 오랫동안 사람이 살지 않은 것 같은 방 한 귀퉁이에 낡은 이불이 깔려 있었다. 코 끝에서 매캐한 곰팡내가 가시질 않았다.
소희는 아랫 입술을 깨물고 얼굴이 달아오르는 것을 참았다. 삶은 내내 위태로웠지만 서른 아홉에 이렇게 무너지리라곤 상상도 해본 적이 없었다. 아이와 단 둘이 세상에 내던져진 심정은 외롭고, 쓸쓸한 게 아니라 무서웠다. 그리고 어떻게 살아야할 지 감도 잡을 수 없는데도 시간에 등떠밀려 계속 앞으로 나아가야 했다.
“저기… 애 엄마!“
부동산 중개 일을 하다보면 사람들의 개인사가 보인다. 가난하고 힘든 사람은 부지기수다. 하지만 어린 아이 손을 잡고 서 있는 여자의 표정이 마음에 걸렸다. 최복순은 의지할 데 없이 바닥까지 추락 중인 사람의 태반이 무지로 인해 극단적인 선택을 한다고 생각했다.
”네?“
”행정복지센터에 가봐. 가면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거예요.“
그렇게 해서 법정저소득계층이 된 소희는 지자체 주무관의 도움으로 새로운 동네에 자릴 잡을 수 있었다. 긴급지원제도와 공공임대주택 제공, 아이의 교육비와 급식 등이 지원되었고, 소득 수준이 낮아 매달 일정 금액이 지원되면서 최소한의 삶은 보장되었다. 밑바닥 계층으로 전락했지만 그보다 더 깊은 나락이 있다는 것을 아는 소희는 깊이 감사했다. 하지만 여기에 머물기엔 살아갈 날이 너무 많았다. 삶은 더 나아져야 했다.
소희는 자활은 법정저소득계층을 벗어나도록 돕는 일자리 센터라는 설명을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드디어 길을 찾은 기분이 들었다.
지역자활센터는 두 층으로 된 야트막한 건물로 카페가 들어선 빌딩과 길게 늘어선 상가 건물 사이에 자리잡고 있었다. 일층엔 분식집과 협동조합에서 운영하는 작은 식품점이 있고, 센터는 건물 안으로 들어가서 이층으로 올라가야 했다. 소희는 안으로 들어가서 계단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한참을 망설이다가 계단을 오르는데 계단을 오를 때마다 질식할 것 같은 불편감을 느꼈다. 자신이 얼마나 형편없는 실패자인지 증명해야 하는 일은 어디서도 배운 적이 없었다. 경멸과 동정, 의심을 마주하는 법도 타고나진 않았다. 도움을 받아야할 때마다 이 두 생각이 머릿 속을 떠나질 않았다. 소희는 두려움과 서글픔, 부끄러움을 떨쳐내려고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계단을 천천히 올라갔다.
안으로 들어서니 작은 복도가 나오고 오른쪽 끝으로 넓은 사무 공간이 펼쳐져 있었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일하고 있었으며 그들의 눈이 일제히 소희를 향했다. 소희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목소리가 잘 나오질 않았다.
“일자리 상담하러 왔는데요.”
사무실에서 나와 소희를 맞아준 건 이진아 사회복지사다. 짧은 머리, 편안한 세미 정장에, 눈 근처에 깊은 흉터를 가진 그녀는 강한 첫 인상 때문에 오해를 많이 받는다. 잘 웃지 않고 살아 온 탓에 굳어진 얼굴 근육과 힘든 일을 많이 목격하며 단련된 눈은 더욱 엄격한 분위기를 발산한다. 그러나 이진아는 이곳에서 일하는 어떤 사람들보다도 내담자들에 대한 애정을 갖고 있다. 때론 사회복지사 업무의 선을 넘어설 정도로 내담자에게 헌신한다.
십 년 전, 알코올 중독인 남편을 기어이 중독 센터로 보내고, 두 아이와 살 길이 막막해서 이곳을 찾았던 자신을 한 시도 잊은 적이 없다. 그 때, 자신을 반갑게 맞아주던 대표 수녀님의 인사가 자신에게 어떻게 들렸는지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이쪽으로 오세요, 선생님.”
이진아는 언젠가 그 자리에 서 있었던 자신을 대하듯이, 소희의 눈을 따뜻하게 마주보았다.
오래 전, 가정 폭력으로 엉망이 된데다, 한심할 정도로 가난에 찌든 자신을 스스로도 허용할 수 없을 때, 대표 수녀님은 그런 자신을 지인처럼 반갑게 맞아들이며 따뜻한 커피를 건네고 마치 수다 떨듯이 나의 근황을 물어봐 주었다. 이런 삶에도 불구하고 나는 누구인지, 왜 이렇게 살아야 하는지 집요하게 일깨우던 심장은 불행의 비열함 속에서 잔뜩 독이 올라 있었다. 안 그래도 안 좋은 인상이 얼마나 더 구겨지고, 도발적일 지 스스로도 알았다. 사람들이 자신을 보며 얼굴을 찌푸려도 개의치 않았다. 하지만 수녀님의 명랑하고 따뜻한 환대에 그녀는 일순간 북받쳐 오르는 울음을 참지 못 했다. 맘 속에서 웅크리고 있던 수치심이 녹아내렸다.
마찬가지로 이혼 후 가난에 시달리며 소희는 어딜가든 자신이 이곳에 있어도 되는건지 생각하는 버릇이 생겼다. 세상에 대한 소속감을 잃어버렸다. 어딜 가든 숨고만 싶었다. 이곳에 올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그 마음을 안다는 듯이 이진아가 소희에게 커피를 건네며 말을 걸었다.
”잘 오셨어요, 선생님.“
지하철 역에서 나와 15분 정도 걸었다. 탄천 다리를 지나니 오른편에 찾고 있던 운동장이 보였다. 첫 출근이다. 소희가 일할 곳은 탄천 운동장 안에 있는 체육 회관 건물 지하 2층에 있다. 저소득층에게 기부 물품을 나눠주는 시설이라고 했다. 소희가 물품 판매 일을 해봤다고 했더니 이진아는 여기를 추천해주었다.
신호등 앞에 멈춰서서 기다리며 소희는 지나온 길만큼 험하고, 아픈 길은 더 이상 자신에게 찾아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했다. 여전히 새로운 장소, 처음 해보는 일은 날 것의 두려움을 안겨주지만 이진아에게 들었던 말이 힘이 되었다.
“진짜 어려운 난관은 선생님은 이미 넘으셨어요. 실패하고, 무너지는 건 삶의 관성에 이끌려 한순간이예요. 진짜 어려운 건 그래도 살아가는 일이죠. 그런데 그동안 선생님은 살아나가기 위해서 노력할 만큼 하셨어요. 지금보다 더 고단한 시간은 없을 만큼 진짜 힘껏 버티셨잖아요. 노력하지 않아서 선생님이 무너진 게 아니잖아요.“
”네, 오기든, 독기든, 똘끼든 젖먹던 힘까지 다 짜내서라도 지금까지 해왔듯이 몇 번이라도 더 노력할 수 있어요.“
“그럼 안심하세요. 더 이상 삶이 선생님을 몰아세우지 못하도록 자활이 울타리가 되어줄 거예요. 노력만 하면 되요. 여기가 반환점이에요. 정말 잘 오셨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