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행의 변

by 최수현

지하철이 거의 텅 비었다. 맞은편 의자에도 회색 푸퍼를 입고 몸을 거의 눕듯이 뒤로 기댄 여자 한 명이 앉아 있을 뿐이다. 다리를 죽 뻗고 발목을 까딱거리며 핸드폰을 들여다보고 있다. 혼자라고 느낄 만큼 자신의 공간을 확보해 자연스럽게 늘어진 여자에게서는 타인을 의식하는 새침함이 느껴지지 않는다. 그녀는 졸린 몸을 한껏 스트레칭하고 다음 정거장에 도착하자마자ㅕ 벌떡 일어나서 지하철을 떠났다.

한 정거장을 더 간 후에 지하철은 종점에 도착했다. 몇 안 되는 사람들이 지하철 문간에서 쏟아져 나와선 출구와 환승구로 바삐 빠져나갔다. 느린 걸음으로 환승을 하는 난 또다시 혼자가 되어 먼저 지나간 사람들의 뒷모습만 바라본다.

분당선에 도착하니 환승하려고 기다린 사람들이 빽빽하게 서서 다른 풍경을 연출한다. 기다린다는 것은 지루한 일이다. 핸드폰을 들여다보는 사람들, 지하철이 오는 방향으로 막연한 눈길을 보내는 사람들, 자신만의 생각에 잠겨 빈 시선울 허공에 던지는 사람들이 저마다 조용하게 서로에 의해 침해된 자신의 공간을 견디고 있다. 우린 너무 가까이 있다.

연말이 되어 내년도 이용자 신청을 받느라 300여 명의 사연을 읽었다. 도움이 필요하다는 요청은 누구에게나 구차하게 느껴진다. 그들은 자신이 속한 복지 단체의 사례 관리 담당자의 손을 빌려 자신의 사연을 전한다. 인생은 함께 일하는 누군가의 말처럼,

“평등하지 않고, 공평하지 않으며 “ 덧붙이자면 친절하지도 않다.

이용자 중에는 과거에 대통령의 옷을 디자인하던 분도 계시고, 어린이집 원장선생님이었던 분도 계시고, 서울대에 다니다가 정신 질환이 와서 정신재활시설에 입소한 분도 계시고…… 어릴 때부터 고생과 가난이 몸에 밴 분들도 계신다. 삶은 생각보다 위험천만하다.

아베 총리를 암살한 남자가 나와 동갑이었다. 통일교에 빠진 어머니에 의해 가난과 외로움에 방치된 채 자라면서 통일교에 원한을 품었고, 그 분풀이를 통일교와 가까운 정치인에게 한 것이라고 법정에서 말한 걸 읽었다. 그는 자살 시도를 한 적도 있었으나 실패하면서 죽지 못해 살아왔던 것 같다. 그에게도 삶은 위험천만한 것이었으며, 마음속에 악마가 깃들 만큼 너무 오래 외로움을 견뎠다.

삼백여 장의 신청서를 읽고, 이분들의 신청이 시청에 잘 받아들여지도록 정리하면서 누군가 궁지에 몰리기 전에 누군가가 먼저 손내밀 수 있는 세상에 대해서 생각했다. 물론 야마가미 테츠야 씨가 모난 사람이 아니란 것도 아니고, 죄는 용서받을 수 없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모든 범죄자가 불우한 환경에서 자란 것도 사실이다. 환경적으로든, 정서적으로든, 신체적으로든 그들은 견딜 수 없는 고통을 받았고 스스로 해결할 수가 없었다. 삼백 여개의 슬픈 사연들을 읽고, 그런 삶을 살도록 자신을 방기 했냐며 비난할 수 없는 이유는 그것 말고도 많다. 치매에 걸린 독거어르신, 중증 장애아를 홀로 키우는 어머니, 조손가정의 어린아이,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학교를 그만둬야 했던 고등학생 등등……

아니다. 지하철에서 지나치게 가까이 있지만 서로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우리는 사실은 오히려 너무 멀리 떨어져 있다. 나는 그들이 모두 안녕하길 바란다. 얼굴도 기억하지 못할 사람들이지만 늘, 계속 안녕하길 친구처럼 바래본다.

오늘도 모두 평안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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