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

by 최수현

이십 대 중반, 반삭을 하고 카키색 야상을 걸치고 남자애처럼 돌아다닐 때, 어느 늦은 밤, 길거리에서 손금을 봐주는 할머니를 만났다. 길 한복판에 좌판을 깔고 가리개도 없이 장사하시는 할머니 앞자리에 털썩 앉아서 손을 내밀었다. 내 질문은 간단했다.

“난 왜 친구가 없나요?”

내 손금을 찬찬히 봐주던 할머니는

“성공해.”

라고 뜬금없이 말씀하셨다.

“네?”

“성공하면 인간관계는 따르기 마련이야.”

할머니는 손금을 봐주신 걸까, 인생의 지혜를 나눠주신 걸까 그 후로도 오랫동안 생각했다.

할머니 말대로 내 인생이 잘 풀리는 동안에 나는 사람들에 치여서 살았다. 그리고 사람들이 귀찮아질 무렵에 내리막길을 걷게 되었고, 간신히 지상으로 올라왔으나 내 곁엔 가족들 뿐이다.

어릴 땐 사람의 외모나 형편이 아니라 내 영혼을 봐주는 사람들이 있을 거라고 믿었다. 사람들이 다가올 때마다 내 진정성을 발견해 준 거라고 겁 없이 상상했다.

젊음이 지나가고, 인생의 부침을 겪고, 연륜이 쌓이며, 외로움보다 더 중요한 것들이 생긴다. 나는 더 이상 사람들의 호의나 친절, 연민을 내 영혼의 특별함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종종 거짓말을 한다. 내가 정말 좋아하지 않는 것을 좋아한다고 하고, 해본 적 없는 일을 잘하는 것처럼 말해도 아무도 진실을 눈치채지 못한다.

대중성을 무시한 채 촌스러운 취향을 만족시키는 옷을 고르고 대충 걸쳐 입은 날 보며 아이가 입을 삐죽거린다.

“사람들이 얕봐.”

나는 거울 속에서 빛나는 꽃분홍색 스웨터를 황홀한 듯 바라보며 대꾸한다.

“내가 좋아하는 걸 하지 않는다고 사람들이 날 사랑하는 건 아니잖아.”

“꼴값이다.”

아이는 비아냥거리며 검은색 스웨터를 툭 던져준다. 나는 그걸 고이 접어서 진열대에 도로 놓고 꽃분홍색 스웨터만 들고 계산대로 향한다.

사람들은 외모를 보고 판단한다. 그게 전부다. 하지만 만약에 누군가 진짜 내 영혼을 알아본다면 꽃분홍색 스웨터를 입은 날 보며,

”너답다. “라고 말해서 날 놀래킬지도 모를 일이지! 모든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싶던 어린 날은 지나갔다. 공주님처럼 고상한 관심과 사랑도 기대하지 않는다. 늪지에 사는 슈렉이 모든 사람들의 환심을 사는 디즈니식 조언도 별로다. 나는 자유로운 몸짓으로 촌스런 날갯짓을 하는 미운 오리다. 호숫가에서 우아한 백조들을 보면서 설레는 동화 속 미운 오리가 아니라 나만의 라이프 스타일과 영혼을 어쩌지 못해 숲으로 숨어든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 같은, 아웃사이더 오리다. 내 영혼을 누군가 알아볼 때까지 얼음 상태로 멈춰 있는 슬프고 아름다운 백조가 아니라 나답게 사느라 거칠고 촌스런 날갯짓 밖에 할 줄 모르는 천상 미운 오리다.

어릴 때, 할머니의 조언은 옳았다. 하지만 할머니가 몰랐던 건, 내가 그때 원한 친구는 소울메이트였다는 사실이다. 내 못생긴 날갯짓이 사람들을 물리치긴 해도, 슈렉이 단 하나뿐인 피오나를 만난 게 눈에 띄게 ‘초록색’이기 때문이었다는 걸 디즈니가 놓쳤듯이 할머니도 그걸 생각하지 않으셨다. 나는 아름다운 사람이 아니다. 그런데 그게 내 진정한 장점이란 걸 꽃분홍색 스웨터를 들고 집으로 돌아오며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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