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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스모스 Dec 12. 2024

모과가 떨어졌다


어른 주먹 두 개보다 큰 모과가 보도블록 위에 떨어져 있다. 우람한 녀석들을 고층에서 내려다볼 때도 그 밑을 지나는 게 우려스러울 정도였다. 누군가 낙엽을 쓸고 갈 때까지 모과는 매달려 있었던 게 분명하다. 많은 사람이 오가는 길인데 나를 기다렸을 줄이야. 오늘은 곧바로 오지 않고 한 바퀴 휘~ 돌아온 참인걸 어찌 알았을까? 주워서 건물을 들어서면서도 반가움이 넘실댔다.



묵직했지만 어찌 그리 차가운지 이리저리 돌려 잡느라 향기를 맡을 새도 없었다. 노란 얼음덩이를 들고 4층까지 계단을 오르는데 '차가워'가 절로 나왔다. 잎이 나고 꽃이 피고 그 꽃잎이 흐드러지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꽃이 핀다고 모두가 열매를 맺는 건 아님을 만냥금을 키우면서 배웠지만, 오가며 모과나무에 저 꽃만큼 열매가 맺는 건 아닌지 염려도 컸다.



우람한 나무에서 흩뿌리는 꽃잎이 바닥을 분홍으로 도배했었다. 초록 알맹이가 여기저기 눈에 띌 때 간혹 고층에서 새어보기도 했다. 그러고 보니 봄부터 까치가 계절 없이 울기도 했다. 엊그제 아침에는 그 아래서 비질하시는 분에게 머리를 조심하셔야 한다고 농을 건넸는데 저 녀석도 들었을까? 내 지나는 발걸음에 맞춰서 드러누워 있다니.



계단을 다 오르고서야 가늘게 실금이 가 있는 걸 발견했다. 제법 높은 곳에서 뛰어내렸다는 거고 보도블록에 헤딩을 했다는 거고 단단한 몸집에 충격이 갔다는 거다. 자잘한 공격도 생체기로 이겨냈음이 보인다. 크게 아픈 곳은 없어 보이는데 온몸으로 뛰어내린 이유가 뭘까? 제 풀에 이제 다 여물었다는 건가? 오늘만큼은 뭐라도 쓰보라는 메시지인가? 분통 터진 시국에 저 몸 던져 아파주겠다는 건가?



어떤 자리 누구라도 제대로 생각을 좀 하라요구 같다. 조직도 나라도 제각기 위치에서 일 제대로 할 때 바로 선다. 사진도 찍고 향기도 맡아보고 귀에도 대어 본다. 대천에서 보냈을 그 시간을 생각한다. 빗소리 바람소리가 들어앉았나? 지나다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품고 있을까? 한 곳에서 보고 듣고 삼키며 키워낸 한 알 모과를 보며 그 안에 들었을 수많은 사연을 추측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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