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나는 핸들을 꽉 잡을 테니 너는 여차하면 브레이크를 팍 올려라"
두 사람의 팽팽한 신경이 창밖의 눈 세상을 한 바퀴 돌아 얼음 위를 굴러가고 있는 차바퀴로 돌아왔다. 빙판길에서는 브레이크를 밟으면 미끄러지니 핸들을 똑바로 잡아야 했고, 혹여 미끄러질 때 할 수 있는 일이라곤 핸드 브레이크를 올리는 것뿐이라고 배웠다.
이제 막 서른을 지난 두 사람, 콩닥거리는 가슴의 눈빛은 창을 뚫을 기세다. 웅장하게 열려있는 한 겨울의 88 고속도로 위. 눈이 내리고 녹기도 전에 다시 내린 눈은 슬쩍 덮인 빙판아래에 엄청나게 실한 얼음판을 만들어 놓았다. 녹아서 움푹 페이기도 하고 울퉁불퉁한 길이다. 시속 2~30킬로미터로 기다시피 지나 오르막을 겨우 올랐는데 평평하게 펼쳐진 길은 무섭기만 하다.
중앙 분리대도 없고 길 가가 훤히 보이는 양쪽 들판에는 눈을 둘러쓴 나무들이 이어진다. 매섭고 덜덜 떨리는 경치일 뿐이다. 의기투합하여 운전대와 수동 브레이크를 각각 붙잡고 동갑내기 둘이 출근 중이다.
사륜구동 차를 두고 운전 잘하는 친구 차를 탔다. 자주색 프라이드는 얼음 위를 헛돌기도 하고 웅덩이에 빠져 후진을 하기도 했다. 그나마 출근 시간을 피하여 오가는 차는 드물다. 한 때 죽음의 도로로까지 불린 고속도로는 만나는 차가 더 무서웠 건만 굴러가는 건지 미끄러져 가는 건지 지금은 자기들이 타고 있는 차가 더 무서운 순간이다.
양쪽 학교에는 날씨로 인한 지각을 통보했고 이참에 일주일 묶을 채비를 해서 고개를 넘고 있다. 편도 92킬로미터의 마지막 순간에 꼬불꼬불한 길을 따라 두 학교로 가는 중이다. 핸들을 잡은 이가 덩치는 작은데도 제 친구를 내려주고 길을 돌려 제 학교로 가기로 했다. 읍에 있는 하숙집을 한 달간 빌려둔 상태다. 서설 퍼렇게 대비한 덕인지 그날 차가 미끄러지거나 뒤집히는 불상사는 없었다.
이십 대를 넘기면 안 될 것 같은 불안감에 스물아홉 막차를 타고 결혼했단다. 이제 막 3살이 되는 아이를 둔 친구와 여전히 싱글인 친구는 33세다. 읍에 겨울을 보낼 하숙집을 구하고 길이 막힌 친구를 같이 지내자고 했으니 쉽지 않은 배려다. 친구를 내려주고 차를 돌려 고제에서 웅양으로 넘어가는 길은 어떠했을지, 당시에는 몰랐으니 젊긴 젊었던가. 들어도 세월 속에 묻혔던가.
거창군 고제면은 무주로 넘어가는 산 고개의 아래 동네다. 중학교와 면 사무소가 있고 보건지소와 농협이 가장 큰 기관이었던 아주 작은 마을, 거기 고제중학교가 있었다. 거창읍을 중심으로 합천 방면의 거창 북쪽 웅양면에 웅양중학교가 있었다. 둘은 같은 날에 경남도의 발령을 받고 경남에서 가장 먼 그 두 곳의 서무책임자로 뽑혀갔다. 눈에 갇혀서 퇴근 후 읍에 있던 하숙집에서 3주가량을 함께 보냈다. 사실은 그 시절을 회고할 여유도 없이 3~40대를 보냈지만 둘은 그렇게 스쳐 지나간 동갑이었다.
꼭 1년을 채우고 바닷가 동네 교육청으로 발령 나서 집 가까이로 올 때 그 친구는 도간 교류를 통하여 부산 쪽으로 넘어갔다. 후에 결혼을 하고 아들 둘을 낳았다는 소식은 인편으로 들었는데 지금은 어디 사는지.
"나는 너의 기억을 꼭 붙잡고 있을 테니 너도 훗날 나를 한 번 떠올리는 날이 있기를 바라! 너도 내 기억을 슬며 시라도 붙잡고 있었으면 좋겠다. 친구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