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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래울 Jun 21. 2024

까마귀, Nevermore

에드거 앨런 포, 센 말은 문득 상처를 동여매 준다.

북한산 까마귀


까마귀 (The Raven)

                                                      에드거 앨런 포          

아주 황량한 한밤중, 허약한 상태에서 생각에 잠겨있었네

아주 오래된 잊혀진 학문에 대한 낡고 오래된 고서를 바라보며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그러다가 꾸벅꾸벅 조는데, 갑자기 내 침실문을 가볍게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어

내 방문을 누군가가 가볍게 톡, 톡 두드리는 것처럼.

"누가 찾아왔어" 난 중얼거렸네

"내 방문을 두드리는 - 단지 그거야, 그뿐이야."

아, 분명히 기억하는데 그건 아주 황량한 12월이었고,

죽어가는 불씨들은 마루 바닥에 그림자로 유령처럼 자국을 남기고 있었네.

난 빨리 내일아침이 오기를 바랐고,

책을 읽으며 슬픔이 멈추기를 바랐지, 르노어가 가버린 슬픔을

그녀는 희귀하고 찬란한, 천사들이 르노어라고 이름 지어 준 처녀여 -

여기 지상에서 영원히 그 이름이 없어졌네.     


자주색 커튼의 비단이 서로 스치며 내는 소리를 들으니

전율이 이네 -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는 공포심이 가득했네.

떨리는 내 가슴을 진정시키려, 난 일어나 반복해 말했네,

"누가 찾아왔어, 그 손님이 안으로 들여보내 달라고 문을 두드리는 거야 -

늦게 찾아온 손님이 안으로 들여보내 달라고 문을 두드리는 거야 -

바로 그것일 뿐이야, 다른 것은 아니야."(뭘 기대하는 걸까?

혹시 그 여자가 아닐까 기대하다가 체념하고 마는)     

그런 생각을 하니 용기가 나서 더 이상 머뭇거리지 않고

“남잔지 여잔지 모르겠지만 문을 안 열어 주어 정말 죄송합니다,

하지만 내가 깜박 졸고 있었고, 당신이 너무 부드럽게 문을 두드리니까,

너무 부드럽게 방문을 두드리니까

못들었어요, 소리를" - 그리고 문을 확 열었네 -

어둠뿐, 아무것도 없었네.     

그 어둠을 깊이 응시하고, 한참 서서 의아해하고 두려워도 하며 의심에 싸여

어떤 살아있는 인간도 한 번도 꿈꿔보지 못한 꿈을 꾸면서 (그녀가 다시 돌아왔으면)

하지만 아무도 나타나지 않았고 어둠일 뿐이고,

들리는 소리라고는 나지막한 소리, "르노어?"

내가 이렇게 속삭이자, 메아리가 돼서 다시 돌아오네, "르노어" -     

단지 이것뿐이야. 다른 것은 없었어

다시 침실 문 쪽으로 몸을 돌려서 실망감으로 영혼이 들끓고 있네

아까보다 좀 더 크게 두드리는 소리를 들었네.

“이건 확실히 창문 쪽에서 나는 소린데

뭔지 한번 봐야겠다, 이 미스테리를 풀어보자 -

잠시 마음을 진정시키고, 이 미스테리를 풀어보자 -

‘바람일 거야, 그 이상은 아닐 거야’     


내가 윈도우를 열자, 갑자기 퍼덕거리는 소리가 나면서,

성인들이 살았던 먼 옛날로부터 온 것 같은 위풍당당한 까마귀가 걸어들어오더라,

인사도 없이, 잠시도 지체하거나 멈추지도 않고 들어오더라,

마치 자기가 귀족이나 귀부인의 풍채를 가지고, 내 침실 문 위에 앉아버리더라-

마침 내 침실 문 위에 있는 아테네 여신의 조각상 흉상에 걸터앉았네.

아예 자리를 잡고 앉아있네, 그뿐이네.     

이 칠흑같이 검은 새를 보고 있노라니 내 슬픈 생각을 웃음으로 바꿔주더라

그의 얼굴 표정이 어찌나 근엄하던지

"네가 비록 정수리의 깃털은 짧긴 하지만, 겁쟁이는 아닌 거 같애”

죽음의 신(플루토)이 살고 있는 밤의 해안에서 날아온 것 같은 새구나 -

네가 온 그 동네에선 너를 뭐라고 부르니"

까마귀는 말했네, "네버모어."     


난 이 못생긴 새가 말하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네,

물론 그 대답이 별 의미가 있는 건 아니고 - 아무런 관련성도 없지만,

살아있는 인간치고 누가 침실 문 앞에 새가 앉아있는 것을 경험한 사람이 몇이나 있겠나

게다가 그 새가 자기 이름이 네버모어라고 하는 새가 침실 문 위에 앉아있는 경험을 한 사람이 몇 사람이나 되겠는가     

하지만 이 새는 조각상에 앉아서 그 말만 하네

그 한 마디에 자기 영혼을 다 쏟아붓는 것 같은

다른 말은 하지 않고 그 말밖에 안 하는 - 얼마나 집중하는지 깃털도 하나 까딱하지 않고

그걸 보더니 나도 모르게 내가 중얼거리네 “다른 친구들도 다 떠나갔어

너도 아침이 되면 떠나가겠지, 내 희망들이 다 떠나갔듯이

그랬더니 그 새가 “네버모어(결코)”     


어떻게 답이 이렇게 적확할 수가 있을까 깜짝 놀라서

새가 말은 하는데 저 말은 그 새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말일 거야

아마도 이 까마귀의 주인이 연속되는 재앙 때문에 너무 불행해져서

“네버모어”(더 이상은 없어, 이제 끝났어) 그 말만 하게 됐나봐,

그래서 까마귀가 그것을 따라하게 됐나봐

불행했던 주인이 희망에 찬 찬가가 다 없어지고 후렴구 네버, 네버모어(이제 끝났어 이제 없어)라고 말하게 돼서 까마귀도 그걸 듣고 배웠나봐     

하지만 여전히 보고 있자니 까마귀의 모습이 웃겨서 미소 지으며,

곧바로 쿠션 있는 의자를 문 위의 새와 조각상을 잘 볼 수 있는 문 앞에 가져다 놓았네,

그리고는, 벨벳 쿠션에 고개를 묻고 앉아서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며,

이 생각 저 생각에 잠겼네, 이 옛날로부터 온 이 불길한 새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

이 불길하고, 못생기고, 공포스러운 무어라 표현할 수 없는 존재가

“네버모어”라고 하는 의미가 뭘까 생각하네     

추측에 추측을 거듭하며 앉아 있었고 수척하고, 하지만 아무 말도 하진 않았네

그동안 이 새는 불타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는데

그 시선이 내 가슴속 가장 깊은 곳까지 때리는 것 같네     

이런저런 생각하며 머리를 기대고 있네,

램프 불빛이 비치고 있는 의자의 벨벳 쿠션에 편하게 머리를 기대며,

하지만 등불이 비치고 있는 벨벳 쿠션에, 그녀가 더 이상 기대지는 못하리라,

아, 영원히 못하리라!     

그런데, 내 생각에 갑자기 방안 공기가 달라진 것 같아,

어딘가에서 천사들이 나타나 향수를 흔드는 것 같은 향기가 퍼지네

"신이 너를 보냈니? 신이 너를 보내서 나에게 망각의 약을 가져다 주라고 그러든? 르노어를 잊으라고?

그 망각의 약을 벌컥벌컥 마시고, 이미 가버린 르노어를 잊어버리라고 하디?"

“네버모어”(절대 못 잊어)     


"오 어떻게 저렇게 알지? 넌 악마니?

악마가 보냈든, 폭풍에 떠밀려 밀려 왔든,

이 마법에 걸린 땅이 네가 어떻게 왔든 간에

제발 나에게 진실을 말해주게 -

천국에 가면 약이 있니? 이 아픔을 치료할 약이 있니? 네가 사는 곳에는 이 아픔을 상처를 치료할 약이 있니?

“네버모어”(절대 없어)     


"신에게 맹세하건대 "사악한 것! - 하지만 신이나, 새든 악마든!

우리를 굽어보는 천국과 우리들이 숭배하는 신의 이름으로 -

슬픔으로 가득 찬 이 영혼에게 말해주게, 저 먼 천국에,

천사들이 르노어라고 부르는 신성한 처녀가 있니? -

천사들이 르노어라고 부르는 귀하고 빛나는 처녀를 만나 안을 수 있을까?"

“네버모어”(더 이상 없어)     


"자, 이제 헤어지자" 난 벌떡 일어나 소리쳤네 -

"밖으로 나가 폭풍 속으로 꺼져버려! 그 지옥으로 가

네가 방금 말한 그 거짓말의 흔적으로 깃털 하나 남기지 말고!

날 좀 내버려 둬! - 조각상에서 꺼져!

내 가슴에 박힌 네 부리를 빼, 내 집에서 나가!"

“네버모어”(절대)     


그리고 까마귀는, 결코 푸덕거리지 않고 아주 가만히 앉아있네,

내 침실 위 아테네 여신의 창백한 조각상 위에.

그 모습은 마치 꿈꾸는 악마처럼 보였어

그리고 그의 위에서 불빛이 그의 그림자를 바닥에 드리우네,

그리고 바닥에 떠도는 그 그림자로부터 내 영혼은,

결코 자유롭게 되지 못할 거라네! “네버모어”          


 미국 문학의 상징이고 대중문화에 계속 등장하는 대표작인 에드거 앨런 포의 <The Raven>을 박선주 교수의 번역과 강의로 이해한 내용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12월의 한밤중은 죽음과 연관된 시간이고 화자는 지쳐 떨어졌고, 마음은 약하기 짝이 없고, 애인이 죽은 슬픔을 잊기 위해 암호를 해독해야 하는 아주 어려운 책을 펴놓고 보다 졸다를 반복하는데, 갑자기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잠이 깬다.


 갑자기 누굴까 혹시 그녀가 아닐까 하는 헛된 희망에 열어보지만 아무도 없다. 다시 소리가 나 창문을 열었더니 갑자기 까마귀 한 마리가 느닷없이 들어오는데 마치 자기 집인 양 당연한 권리인 양 천연덕스럽게 들어와 화자가 제일 중요히 여기는 팰리스 조각상 위에 떡하니 앉는 그 모습을 보자니 ‘세상에 내가 이런 경험을 다하는구나, 어이가 없어, 이런 진기한 경험을 누가 했겠나’ 하며 보노라니 웃기기도 하다.


 그 새의 표정이 너무 근엄하고 진지해 말을 걸어보는데 “네 이름이 뭐니?” 하니까 “네버모어”(비슷한 소리) 웃기기도 놀라기도 하여 조금씩 자기 속얘기를 이것저것 하기 시작하는데  새의 말은 오직 “네버모어”이나 질문에 너무 적확하게 맞아 떨어지는 것이다.

(nevermore =not any more, 더 이상 없어, 더 이상 안 돼)     

 이런 저런 얘기 끝에 결국은 르노어 얘기에 이르게 되고 괴로우니까

“이 고통을 없애는 약이 있니?” - “nevermore”

“천국에는 그녀가 있니?” - “nevermore”

“꺼져!” - “nevermore”

그리고 램프가 까마귀를 뒤에서 비춰 큰 그림자로 드리워져 앞으로 이 까마귀가 갈 것 같지 않고 화자의 영혼이 이 까마귀의 그림자에서 들어 올려지지 못할 거라는 암시 nevermore!로 끝난다.      

 애인을 잃은 슬픔을 극대화 시키는 장치로써 까마귀가 나타나 이것저것 지껄이다가 떠나진 않고 거기 머무르는 내용의 단순한 플롯으로 ‘애인이 죽어 슬픈데 까마귀가 들어와서 안 나간다’로 107행이나 늘여 쓰고 있다.      

 비슷한 소리로 청각적 음악적 효과를 내는 것으로 유명한 에드거 앨런 포의 프로젝트는 사운드로만 이야길 만드는 게 주특기란다. 우는 소리, 낙엽 소리, 바람 소리, 그릇 소리같이 의미는 없으나 슬픈 감정을 주는 소리를 찾던 포는 “오,어”하는 동그란 소리(“네버모어, 르노어”)를 굴려가면서 애잔함을 느껴 슬픈 시를 만들었다고 한다. 자전적인 스토리의 스토리텔링이 아니라 슬픈 소리 들을 연구해서 사운드만으로 만들어진 시라는 것이다.      

 이 화자는 애인이 죽어서 미친 사람으로 화자가 애인을 잃고 보는 비전이 새까만 까마귀인 것인데, 현실이 아닌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공감하기 어렵지 않다.  


 둥지를 틀고 앉은 환상 속의 새까맣고 큰 까마귀는 도대체 무엇일까? 박선주 교수의 분석에 따르면 우선 나를 잊지 말라는 죽은 르노어의 솔직한 감정의 표현일 수 있다. 또한 팔리스를 가장 중요한 곳에 걸어두는 이 지적인 화자에게 까마귀는 그 위에 앉은 지혜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지혜로는 그 슬픔을 이길 수 없으니 지혜를 부정하는, 지혜를 내리누르고 있는 본능일 수도, 이성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슬픔일 수도 있다.    

 즉, 살아 돌아온 르노어일 수도, 나를 잊으라고 말하는 르노어일 수도, 잊지 말라고 말하는 르노어일 수도, 자신의 분신일 수도, 죽음의 메신저일 수도 있다. 까마귀는 에드거 앨런 포가 굉장히 유명하게 만든 죽음의 상징이고, 플루토라는 죽음의 신에게서 왔다고 하니 죽음의 나라에서 온 죽음의 메신저일 수도 있다.      

 착하고 아름답고 진귀한 사람들이 죽어 사라지는 이성적, 논리적 근거가 없는 삶의 미스터리 앞에서 의미를 다 버리고 미친 사람의 소리만 가지고 진실에 다가가게 만든다. 이 시간은 사라지면 끝이고 그 어떤 것도 영원하지 않다는 진실에 광인만이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무신론자인 나는 수술 전 마취의 과정으로 임사체험을 한다고 느꼈었다. 정말 죽음이란 까만 까마귀 빛깔로 모든 존재의 기억이 차단되는 완벽한 단절이지 않을까.


 불멸의 하드락 그룹 '퀸'이 떠나가는 연인을 향해 벼랑에서 막 뛰어내리려는 절망적인 충동으로 부르는 듯한 노래 '네버모어'에도 포의 까마귀 언어 '네버모어'가 공허하고 시리게 계속 변주되고 있다.

 폴 고갱의 타히티 작품 중의 걸작인 '네버모어' 그림에도 창틀 위의 까마귀 옆으로 화가가 스스로 써놓은 제목  'NEVERMORE'가 보인다. 그림 속 여인은 당시 고갱의 연인으로 열네 살 때(1896) 고갱과 동거를 시작했고 열다섯에 딸을 낳았지만, 아이는 태어난 뒤 곧 죽었고 '네버모어'는 그 무렵(1897)에 그린 그림이라 하니 어린 아내의 절망과 고갱의 아픔이 엿보인다.


 '네버모어'라는 진실의 말에 직면해 엄혹한 이별의 아픔에 대해 단호하게 선긋고, 자꾸 비어져 나오는 미련을 지지며 어쩌면 한 줄 위로 받았을지도 모른다. 센 말은 문득 상처를 동여매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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