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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래울 Jul 10. 2024

둔한 건 싫어

진은영 '남아있는 것들' 중 & 이병률, '혼자가 혼자에게'


 나에겐, 둔한 사람만 아니라면 교류하고 싶은 의사가 충분히 있다. 사실 우리는 잘 만나다가도 어느 순간 둔해진 관계라서 안 만나게 되고, 또 멀어지게도 되는 것 같다. 그래서 그런가. 아예 둔한 사람 자체를 멀리하게도 되는 것 같다. 어떻게 보면 ‘안 섬세한 사람들’에게 있어 섬세한 사람이란 ‘그거참 머리 아픈 사람들’임에는 틀림이 없을 것만 같다. -이병률, <혼자가 혼자에게>중-


 나이 먹어갈수록 본인이 아프거나 편치 않을수록 상대에 대해 둔해지게 마련이다. 대하는 상대가 편할수록 그의 입장이나 욕구나 상처를 헤아리는 촉수는 쉽게 열리지 않는다. 헤아려봤자 마음이나 몸이 부산하게 신경써야 할 것들이 늘어나니까 본능적으로 자기보호의 조명을 비추기에도 머리 속이 뜨거워지는 것이다.

 

 당사자만 만나는 줄 알고 간만의 약속을 잡았는데 친한 사람을 데리고 나와서 친분 자랑을 하니 졸지에 관객이 되는 경우에도 맥이 빠진다. 어렵게 만든 시간에 이것저것 신경쓰다 횡설수설 하다 돌아오는 기분은 만신창이가 되어 버리고 만다. 내 얘기를 사례로 들어 강의 시간에 질문을 해서 내 숨통을 막아버리던 동료 친구도 그에 대한 구린 감정이 씻겨지지 않은 채 떼어냈는지 떨어져 나왔는지 어느덧 잊혀진 인연이 됐다.

 오래 전 일이지만 고마운 일에 밥을 사는 자리에 꼽사리로 굳이 불려 나갔는데 퇴근길임에도 본인은 밥을 먹었다며 셋이 앉아 2인분을 시키고 추가반찬을 주문하는데 얼굴이 뜨거워 다시는 그가 밥 사는 자리에 나가지 않으리라 다짐했었다. 

 어떤 때는 셋이 밥을 먹는데 2인이상 주문 가능 메뉴라 단품 요리를 추가했는데 그 단품 요리를 자연스럽게 셋이 나눠 먹게 되었다. 배가 고팠다면 공기밥 추가라도 했겠지만 그만저만 배가 찼고 양도 줄이던 차라 한 밥상 안에서 상대의 밥공기가 있는지 없는지 끝까지 눈치채지 못하던, 나이들어가며 둔해지는 친구들의 모습을 거울처럼 서글프게 관찰하게 되었다. 

 

 이런 둔한 감각 지적질을 하다보니 내가 저지른 만행도 만만치 않게 떠오른다. 모처럼 맘에 맞는 직장동료들이 한 차로 조금 먼 둘레길 산책을 나갔는데 갑자기 오래 묵은 감정이 해결되지 않은 친구가 개인적으로 감당키 어려운 일이 생겼다고 약속도 없이 멀리서 와 기다리고 있다는 전화가 왔다. 그 친구가 돌아갈 시간이 가늠이 안 돼 황급한 마음에 서둘러 돌아 나온 적이 있다. 그들에게 그렇게 급히 마무리를 하게 큰 김을 빼놓고 허둥지둥 사과는 했으나 정식으로 마음을 써 사과하지 못해 두고두고 회한이 됐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혼자 돌아 나오거나 약속 없이 들이닥친 친구를 기다리게 하는 것이 옳았다. 친한 동료들의 욕구에 소금을 뿌리며 내 욕심을 채운 둔한 판단이었다.


 둔함은 어쩌면 이기적인 게으름이기에 나이들수록 경계해야할 덕목이다. 자신과 타인에게 고무줄 잣대를 들이대 강하게 재단하거나 섬세하지 못한 자신의 둔함에 대해 점점 둔해지기 쉽다. 이래저래 상처를 주고 받기 쉬운 피로감 때문에 점점 만나는 사람들이 줄어간다.


 '그렇게 지랄맞은 혼자인 채로 혼자가 아닌 세상 모든 이들에게 왜 당신은 혼자가 아니냐는 물음은 참을 것이다. 딱히 어떤 결과를 바라서는 아니겠지만 혼자 있을 핑계로 나는 모든 계절을 탈 것이고 좀더 잔혹하고 괴팍한 외로움을 즐길 것이다. 그러다 혼자에게 말을 걸어 괜찮냐고 물을 것이다.' -이병률, <혼자가 혼자에게>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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