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작 못하는 것을 할 생각은 없었다. 회피하거나 거짓말이 더 쉬웠으니까
나의 초등학교 5학년 시절. 인생 최악의 위기가 찾아왔다.
수업시간 선생님은 영어로 자기소개를 하라고 하셨다. 부담 가지지 않도록 몇 명만 발표해 보자는 말씀에도 지원자가 없자, 발표 후 다음 발표자를 지목할 수 있다는 특별한 선택권을 주셨다. 그 말이 떨어지자 아이들은 너도나도 발표하기 시작했다. 다음 발표자를 지목할 수 있다니 이 어찌나 달콤한 제안이란 말인가! 친구들에게 장난을 칠 수 있는 공식적인 기회였다.
Let me introduce myself..
친구들은 열심히 발표했고 키득대며 다음 발표자를 골랐다. 그러다 나와 가장 친한 친구가 발표를 했고, 내 친구는 우리와 자주 다투던 애를 지목했다. 그리고 나는 예측할 수 있었다. 그 애는 분명 나를 지목할 것을!
이런! 어쩌지? 한국어 발표도 잘 못하는데 영어로 발표를 하라니! 이렇게 창피를 당할 수 없었다. 내 엉성한 발음과 영어울렁증을 모두에게 보여줄 수 없었다. 그 순간 나는 인생 최고의 기량을 발휘했다. 배를 쥐고 비틀거리며 교탁으로 갔다. 그리고 선생님, 배가 아파서 양호실에 다녀와도 될까요?라고 말했다. 나름 인생 최고의 열연을 보였다. 끙끙...
그러나 어린이의 거짓말은 어찌 그렇게 미흡할까. 당시 나를 보던 선생님의 표정과 말투가 아직도 기억난다. 선생님은 콧방귀를 뀌며 그래라~라고 말씀하셨다. 내 꾀병이 들켰구나!라고 느낌과 동시에 뒤도 돌아보지 않고 교실을 빠져나왔다. 나는 선생님께 보인 모자란 거짓말과 연기보다 친구들 앞에서 영어발표를 엉성하게 하는 부끄러움이 더 컸다. 나는 양호실로 갔다. 이 뒤에는 잘 생각이 나지 않는다. 그 순간 그 자리를 회피했고 나의 영어실력을 감출 수 있었다는 그 안도감만이 남아있다.
다음에 너 지목하려고 했어!라고 말하는 애의 대답으로
저런 아쉽네~라고 으쓱하며 대답했다.
오래된 이 이야기 속 나는 어딘가 퍽 가여웠다. 만약 어색한 연기 따위 없이 진실을 이야기했다면 어땠을까 종종 생각한다. 솔직하게 그러나 담백하게, '선생님 잘 모르겠어요. ~이렇게 얘기하고 싶은데 영어 단어를 알려주실 수 있을까요?' 했다면... 아마 초등학생이 아니겠지. 어린이는 이렇게 담담할 수 없다. 특히나 자존심만 높은 사춘기 시절 다가오는 낯선 것들은 어려움과 두려움 더나가 가이 공포라는 감정을 같이 가지고 온다. 무서웠겠지 그때의 나는... 이라며 스스로를 다독일 뿐이었다.
나는 아는 척하는 게 좋았다. 아니 모르는 걸 들키고 싶지 않았다. 중학생 때는 국어 선생님의 관심을 받는 게 좋아서 국어시간 예습을 하기 시작했다. 인자한 중년 여성의 미소와 칭찬을 받고 그 덕분인지 국어 점수는 늘 괜찮게 나왔다. 뭐가 되었던 열심히 하는 아이를 좋게 봐 주는 어른들의 포용력으로 난 무럭무럭 성장했다. 선생님들의 칭찬들은 아는 척하고 싶은 마음에 비료가 되어 더 쑥쑥 자라났다. 책이나 인터넷에서 본 좋은 글귀를 잘 기억해 두었다가 마치 내가 생각해낸 듯 발표하기도 했다. 인터넷을 잘 모르는 선생님들은 나의 글을 칭찬해 주셨다. (이게 대학교 논문이었다면 나는 매장이었겠지! 중학교 교과서 쓰기여서 다행이다.)
어릴 때는 모든 것을 잘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공부도 친구 사귀기도 운동도 노래도 그림 그리기도... 못하는 걸 들키고 싶지 않아서 회피하거나 거짓말을 했다. 중학교 국어시간에는 예습을 해서 성적이 오른건 좋은 일이었지만 대부분상황은 결국에는 못하는 내 모습을 보이고 좌절하고 자신감이 쭉쭉 깎여나갈 뿐이었다. 이 얼마나 쓸데없는 에너지 낭비란 말인가!
못하는 건 당연하다. 안 했으니까. 공부를 안 했으니까 공부를 못하고, 운동을 안 했으니까 운동을 못하는 건데, 그게 싫었다. 정작 못하는 것을 할 생각은 없었다. 회피하거나 거짓말이 더 쉬웠으니까. 우선 당장 내가 잘하는 것처럼 연기하고, 피했던 그 많은 순간들이 있었다. 난 더 잘할 수 있는데 지금 안 하는 거라며 위로했다. 잘하지도 못하는데 눈만 높아지고 해 놓은 건 아무것도 없으면서 말만 하는 허세가 들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아는 척하는 게 얼마나 우습고 부질없는지 보이기 시작했다. 사회에서 별것도 없는데 허풍 떠는 사람들을 많이 만났고, 그들의 위선에 과장에 실소를 한 적도 있었다. 그리고 나의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나도 그랬구나...
춤추기도 연기하기도 집안일도 모든 것을 처음 할 때는 누구나 못한다. 내가 한국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한국어가 쉽고 영어가 어렵다는 그 당연한 사실을 먼저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그것들을 잘하고 싶다면 익숙해질 때까지 계속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못하는 나를 보듬고 인내심을 발휘해 견뎌야 한다.
어릴적에는 괜한 남들과의 비교로 잘하지 못하는것을 부끄럽게여겼다. 그리고 어른이 될수록 어디서 주워듣고 본건 많아서 콧대만 높아졌다. 내가 아무리 잘나도 나보다 잘난 사람이 더 많고, 완벽히 잘하가다도 어쩌다 삐끗하고 실수할 수 있는 게 사람이다. 남들의 시선과 흉이 무서워서 시작조자 못하고 그저 잘하는 척 흉내만 내고 있다면 너무 가슴 아픈 일이다.
우리는 첫 인생을 살고 있다. 아무것도 배우지 않은 채로 태어난다. 살면서 모든 일을 100% 잘할 수는 없다. 못하는 나. 그래도 괜찮은 나. 모르면 모른다고, 못하면 못한다고 해도 우주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자격지심에 빠질 필요가 없다. 속이고 회피할 시간에 뭐라도 해보는 게 미래의 나를 위해 더 좋을 것이다. 무언가를 배우고 싶다는 의욕과 잘하고 싶다는 마음만 있다면.
나는 수영을 잘 못해요! 그런데 좋아해요!
나는 피아노를 못 쳐요! 그래서 잘 치는 사람들이 부러워요!
라고 당당하게 말한다.
나 못해요! 그런데 응원해 주세요! 조금씩 해볼게요!
나는 오늘도 못하는 나를 응원하며 영어 문장을 공부한다. 아주 천천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