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먹기 : 좋은 것부터 먹을 결심

먹는 시간을 아껴 다른 곳에 쓰고 싶었다.

by 차고요

수요일과 금요일, 초등학생인 나에게는 커다란 셀프 행사가 있었다.


먼저 금요일은 다음 주 학교준비물이 적힌 안내장이 나오는 날이었다.

나는 학교에서 나눠주는 일주일 시간표를 동네 문방구 아저씨에게 전달하는 일을 했다. 아저씨는 내가 가지고 온 안내장을 복사하며 다음 주에 필요한 준비물들을 확인하셨고, 그 대가로 아폴로나 차카니 같은 100원짜리 과자 한 개를 가져가라고 하셨다. 나는 내 안내장이 아저씨에게 도움이 된다는 사실도 좋았으나, 뭐니 뭐니 해도 공짜로 먹을 수 있는 '100원 뷔페'가 나를 설레게 했다. 한주에 한번 학교가 끝남과 동시에 눈썹 휘날리며 문방구로 달려갔다. 오늘은 꾀돌이 먹어야지! 길에서 주운 동전으로, 혹은 심부름해서 받은 돈을 탈탈 털어 문방구 구석 불량식품 코너는 나의 설렘이오 낙원이었다. 친구들이 한 입만~ 한 입만 해도 어쩐지 내가 벌어서 산 그 저렴한 음식은 아까웠다. 그러기에 새끼손톱보다 작은 과자를 건네줄 때 '특별히 주는 거야!'라며 생색을 거하게 냈다.


그리고 수요일은 맛있는 급식이 나오는 날이었다.

공식적으로 정해놓은 것도 아닌데 내가다니 학교는 매주 수요일 맛있는 특별식이 나왔다. 한 달 급식표가 나오는 날이면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철두철미하게 비교 분석했다. 문제 풀 때보다 더 치밀하고 정확하게 풀어보니 수요일은 아이들이 좋아하는 간식이 자주 나온다는 게 결론이었다. 우리는 급식표에 형광펜을 쳐가며 맛있는 것이 나오는 날로 그날의 학업 스트레스를 희석시켰다. 영양사 선생님께서 고민하며 만든 메뉴임에도 우리의 눈에는 평소에 흔하게 나오는 김치보다 드물게 등장하는 떡갈비가 더 귀했다. 핫도그, 요쿠르드, 닭다리 등 기존보다 조금 더 귀한(?) 메뉴가 나오는 날이면, 역설적이게도 그것을 먹기 위해, 가장 늦게까지 남겨두었다.


이는 좋아하지만 가장 나중에, 천천히 아껴 먹겠다는 마음이었다. 좋아하는 것을 마지막에 먹으면 더욱 특별할 것 같았다. 그렇게 별로 특별하지 않은 음식들로 배를 채운뒤, 부른 배를 두드리며 아껴두었던 소중한 그것을 먹었다. 다행히 디저트 배는 따로 있었고, 가장 좋아하는 것으로 마무리하는 식사가 작은 행복이었다.




고등학교 때는 사춘기답게 식욕이 폭발했다. 나와 친구들은 누가먼저랄 것도 없이 학교에 먹을거리를 가져가기도 했다. 심지어 날짜가 지난 라면도 잘게 부숴 라면수프를 톡톡 뿌려 놓기만 해도, 우리는 게눈 감추듯 먹어치웠다. 걸신에 들렸다는 옛말이 틀린 게 하나도 없었다. 밥을 먹어도 우리들의 허기는 사그라 들 생각이 없어서 일층에 있는 매점에 하루에 한 번 꼭 들려야만 했다. 거기서 데워먹는 햄버거나, 쫀드기 같은 불량 식품을 사 먹었다. 누가 뺏는 것도 아닌데 사다둔 맛있는 것들을 억지로 먹었다. 이미 배가 부른 상태였는데도 무엇에 홀린 듯이 계속 먹었다. 불안함이었는지 스트레스에 혹은 성장기 호르몬에 의한 것인지는 모르겠다. 그 순간만큼은 내 눈앞에 있는 이것들을 당장 내 뱃속으로 옮기겠다는 욕심이 들었다.




좋아하는 것을 아껴두고 먹겠다는 마음과 동시에 배불러도 당장 먹어버리겠다는 마음의 근원은 사실 비슷할 것이다. 그 안에는 욕심과 절제, 만족과 불만족의 애매한 마음이 숨어있다.

대학생 때는 시간에 쫓겨 밥버거나 삼각김밥 같은 간편 조리 식품들로 끼니를 때웠다. 무수한 스트레스와 편의점의 염분 높은 음식은 서로 뒤엉켜 내 얼굴을 넘어 목전체까지 여드름을 만들었다. 나는 이것들이 몸에 좋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음에도 어쩔 수 없었다. 먹는 시간을 아껴 다른 곳에 쓰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별로 먹기 싫었음에도 먹어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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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기 위해서 사느냐 살기 위해서 먹느냐

그건 나중문제다.

뭐가 되었던 먹을 때 좋은(good & like) 것부터 먹는 것.



이 작은 먹거리에서 어떤, 얼마큼의 만족을 얻을 것이냐는 전적으로 본인에게 달려있다. 같은 것을 먹어도

내가 왜 이런 걸 먹어야 하는지 불평하며 먹을 것인가. 따끈하고 든든하게 먹을 것이냐는 본인의 선택에 달려있다.


우리는 좋은 것을, 좋아하는 것을 먼저 먹을 결심이 필요하다. 인생에 몇 번 정도는 부실하고 저렴한 것들로 끼니를 때우기도 할 것이지만, 한 끼에 정성을 들이고 만족하는 자세는 삶을 살아가는데 큰 변화를 만든다.


그래서 나는 무얼 먹던 내가 먹을 만큼만, 내가 좋아하는 것 위주로 먹되, 나에게 좋은 것들로 음식을 구성한다. 물론 나도 인간인지라 가끔 기름지고 칼로리만 많은 음식을 먹기도 한다. 핵심은 내가 만족하느냐이다. 먹고서 불평할 거라면 애초에 먹지도 않는다. 어쩔수 없이 먹는다면 그다음에 좋은 것을 먹기위해 미리 계획한다. 나는 내일 먹을 음식을 상상하며 잠에 드는 시간을 좋아한다. 내일은 이거 먹어야지! 하는 그 설렘과 만족이 좋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나에게 좋은 것만 먹을 결심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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