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공은 그냥 살고 있는 것일 텐데 음악이 자동으로 깔리다니!
마지막으로 궁둥이를 씰룩거렸던 적이 언제인가?
내 인생 첫 뮤지컬은 초등학생 때 보았던 <그리스>였다. 1950년대 날티나는 남주인공과 요조숙녀 여주인공의 어리숙한 미국 고등학생들의 로맨스를 담은 뮤지컬. 이는 사춘기 소녀의 마음에 불을 지피기엔 충분했다. 뜬금없이 ‘summer loving 해질녘’을 외치는 당당함과, 주인공을 위해 비추는 조명들과 앙상블은 내 마음을 앗아갔다. 그 뒤로 혼자 씰룩거리며 뮤지컬 넘버를 따라 부르기 시작했고 시카고, 브로드웨이 42번가, 아가씨와 건달들, 레베카 등 수많은 뮤지컬 관람이 시작되었다.
발레, 연극 오페라 등 다양한 공연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좋아하던 장르는 뮤지컬이었다. 뮤지컬은 뜬금없이 노래만 부르면 그 주변은 자동으로 주인공을 위한 무대가 된다. 안개 뒷편에서 신문 읽던 아저씨도 두비두밥 거리며 춤을 추고, 무대 위에 사람들은 오와 열을 맞춰 멋진 군무를 만든다. 주인공들의 열정과 꿈은 동화 속 한 장면처럼 구성되고 난 그런 장면을 볼 때마다 요동치는 심장소릴 느낄 수 있었다. 주인공은 그냥 살고 있는 것일 텐데 음악이 자동으로 깔리다니! 나도 낭만 가득히 살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때쯤 혼자서 궁둥이(정확히 엉덩이가 아니다. 진정으로 뮤지컬스러우려면 궁둥이를 흔들야 한다.)를 열심히 흔들며 귓속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열심히 따라 불렀다. 나만의 엉성한 안무는 덤이었다. 다행히 눈치는 있어서 큰소리로 부르지는 않았지만 그 순간만큼은 내가 뮤지컬 주인공이오 내가 바로 낭만 그 자체였다.
낭만, 감상적이고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분위기나 행동이라고 사전상에는 적혀있지만, 조금 더 주관적인 의미를 부여하자면 지금 생각하면 웃음이 나는 사건들, 무모함, 어리석음이 있어도 즐거웠던 사건들. 공간과 순간의 소중함을 알고 행복함을 느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뮤지컬 주인공처럼 씰룩거렸던 엉뚱한 어린시절 또 다른 낭만 일화를 소개하자면 가족들과 간 여행을 말할 수 있다.
나는 여행지의 멋진 랜드마크도 좋았지만, 바닥에 굴러다니는 돌멩이나 꽃 또는 돌아다니는 비둘기, 열심히 일하는 개미들을 관찰하는데 시간을 보냈다, 굳이 비싼 비행기를 타고, 긴 시간을 들여가며 갔던 여행지에서 개미를 관찰하는 행위는 어쩌면 참 어리석은 것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엄마는 나를 다그치거나 혼내지 않고, 그 순간을 그냥 묵묵히 내버려 두고 지켜보셨다.
엄마는 나의 시간과 공간을 존중해 주셨고, 그 안에서 느끼고 생각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셨다. 물론 이러한 사건들은 성인이 된 후에 종종 놀림거리로 등장하긴 했지만.. 그 순간 개미를 보았던 그 여유로웠던 경험이 낭만 속에서 성장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었다고 확신하기에 우리는 웃고 넘어갈수 있었다.
이러한 가르침(?)과 삶 덕분에 나는 순간에 만족할 줄 아는 사람이 되었고, 낭만을 잘 느낄수록 더 많은 낭만을 찾을 여유가 생긴다고 생각하게되었다.
기차를 타고 창밖에 지나가는 풍경을 감상하는 것, 아이 추워! 하면서 기다림을 참고 따끈하고 말랑하고 고소한 붕어빵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가는 순간. 양말이 어디 있나 흥얼거리는 것도 작은 낭만이다.
약속장소에서 사람을 기다리는 것, 예쁜 편지를 골라서 손 편지를 쓰는 것, 라디오에서 좋아하는 노래를 기다리다가 그 노래가 나왔을 때 녹음버튼을 누르는 것, 친구집에 전화할 때 어른들이받으면 빳빳이 긴장하며 저 00친군데요... 00있나요. 말하는 것, 지금은 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추억회상도 멋진 낭만 중에 하나다.
책갈피 은행잎을 말리는 것, 자연의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 감나무에 남겨둔 까치밥을 구경하는 것, 제 몸 보다 큰 씨앗을 들고 가는 개미를 관찰하는 것, 아스팔트를 뚫고 올라오는 민들레의 위대함을 느끼는 것, 아날로그 같은 것, 젊은 날의 무모함을 알지만 도전하는 그 힘. 현실에 얽매이지 않고 귀찮음을 감수하는 것. 과거를 회상했을 때 기분 좋은 것 따뜻한 것.
우리 삶 곳곳에 낭만이 있다.
누군가의 낭만이 나에게는 맞지 않을 수도 있다. 본인만의 낭만을 찾는 방법은 우선 지금당장 근처무언가를 관찰해보기도하고, 당연한 것들을 감사해보는 일도 좋다. 우선 여러 가지를 시도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멈추었을 때 '계속하고 싶다. 혹은 멈추고 싶지 않다. 좋았다.' 느끼면 그것이 본인의 낭만이다. 같은 공간 같은 시간 속에서 같은 것을 느낄 필요는 없다. 좋다고 느끼는 이 시간이 아주 중요하다. 세상에 쓸모없는 낭만은 없다.
현재, 좋아하는 노래를 들어도 엉덩이를 씰룩거린다던지, 흥얼거릴 여유 없는 어른이 되었는가? 설령 내가 뭘 했는지 몰라 자괴감이 들어도 하루하루마다 그날의 낭만이 있음을 잊지말자. 우리는 낭만에 살고 낭만에 죽어야 한다. 우리 행복하려고 살고 있잖아? 그러기 위해선 작은 흥얼거림부터 시작이다.
낭만은 우리를 즐겁게 살기 위한 작지만 완벽한 원동력이다. 오늘 하루 가장 좋아하는 노래를 듣고 즐겁게 춤을 춰보자. 우리의 삶은 춤과 노래, 멍 때리기 등등 나의 가슴을 두근거리게 할 낭만을 찾는 과정이다. 만약 그 낭만을 찾았다면 주저 없이 낭만에 취하길. 당신만의 낭만의 이야기도 덤덤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낭만가가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