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심 잡기: 빙글빙글 돌아가는 세상에서

과도하게 비틀린 흙은 다시 떼서 다시 처음부터 시작해야 한다.

by 차고요



나는 꼼지락 거리는 게 좋았다. 그래서 그림 그리기를 아주 좋아했고 동시에 만들기도 참 좋아했다. 고무찰흙과 지점토, 놀이터 모래 등을 이용해 많은 작품을 만들었다.


나의 공식적인 첫 도예 작품은 유치원에서 만든 엄마 얼굴이었다. 부조 기법으로 톡 튀어나오는 얼굴을 만들어야 했는데 코를 만드는 게 너무 어려워서 선생님이 열심히 도와주셨던 순간이 생각난다. 어린 나는,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만든다는 그 행위 자체가 좋아서 리본도 달아주고 최대한 예쁘게 꾸몄다. 그리고 그 얼굴은 우리 집 장식장을 떡하니 자리하고 있는 ‘작품’이 되었다.

물레 없이 만든 수제그릇

그러다가 초등학생 때인가? 민속촌에서 일일 물레 체험을 하게 되었다. 만들기에 꽤 자신감 있었지만 제 멋대로 돌아가는 물레는 처음이었다. 달항아리 같은 멋진 작품을 만들어야겠다는 포부는 사라지고 내 뜻과는 다르게 움직이는 물레를 야속해할 뿐이었다. 나는 손만 지긋이 대고 있었을 뿐, 선생님이 99%를 만들어 주신 작은 도자기들도 우리 집을 장식했다. 살다 보니 이 도자기들은 어느 순간 사라졌지만(깨진 것으로 추청함) 나는 이때를 시작으로 마음 한 구석에 ‘언젠가 내 힘으로 도자기를 만들어 보리라’하는 목표가 생겼다.



그 뒤로는 이미 초벌이 된 도자기 위에 그림을 그리는 도예수업(그리기)을 종종 들었고, 이것으로 내 욕망을 채워줄 수 없다는 걸 깨닫고는 본격적으로 전문 도예공방을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손으로 빗고, 물레와 한 몸이 되어 만드는 나만의 예술이 하고 싶었다.

출처: https://biz.heraldcorp.com/article/10624778

첫 시간은 흙을 반죽(꼬박 만들기)하고 초코파이를 만드는 연습이었다. 갑자기 웬 제과 제빵이냐고 의아해 할 수 있겠다. 기물(그릇, 잔 등) 하단 여분을 남기는 작업이 필요한데 이 여분이 꼭 초코파이 같아서 나 혼자 초코파이 만들기라고 이름 붙였다. 뭉쳐진 흙을 풀고 누르고 다시 올려가며 흐트러지지 않게 중심을 잘 잡아야지 동그란 초코파이가 나온다. 서로 꼬여있는 두 갈래 흙을 압박해야 하기 때문에 힘도 많이 들뿐더러, 중심에서 어디 하나 튀어나오지 않도록 조절해 주어야 한다.


만약 중심이 덜 잡힌 채로 기물(그릇 등)을 만든다면 찌그러지고 어딘가 얇아지거나 굵어져 소성(가마에서 불로 익히는 일)할 때 금이 가거나 파손된 확률이 높아진다. 무엇 보다도 모양이 예쁘지 않다. 원하는 모양을 만들기 위해서는 중심 잡기를 가장 공들여야 한다.


‘한 바퀴 한 바퀴 한 바퀴’


선생님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씀하신 부분이었다. 그렇지만 모두가 알 것이다. 초보의 눈에는 다 어려워 보인다는 것을. 한 바퀴가 어느 정도인지, 다 돌아온 거긴 한 건지, 중심이 어딘지, 중심이 잡히긴 하는 건지.. 이리저리 휘둘리고 흙도 튀어 엉망이 된 내 모습조차도 보이지 않는 나에게는 그 중심 잡기가 큰 고난이었다.


‘중심이 흔들려요’


선생님께서 말씀해 주신 ‘중심이 흔들린다’는 말도 무엇인지 몰랐다. 그렇지만 괜한 자존심에 선생님의 말을 전부 이해했다는 듯이, 괜히 끄덕거리고 내 흙더미를 만지는 척했다. 그렇지만 어딘가 엉성한 내 초코파이는 가감 없이 나의 실력을 보여주었다. 그렇게 한주 한 주. 중심 잡기만 주야장천 하던 날. 드디어 컵 모양새를 닮은 무언가를 만드는 날이 왔다.

힘이 많이 들어가는 백토

결전의 날이었다. 단단한 흙을 부드럽게 만들고 내손에서 스르륵 흘러가게 하는 일은 힘일 많이 들었고 시간도 많이 걸렸다. 중간마다 손 끝에 걸리는 돌멩이를 빼내기도 해야 했고, 흙이 마르지 않게, 또는 물을 너무 많이 묻혀 떡이 되지 않기 위해 조절해야 했다. 중심이 엉망 징창임에도 예쁜 모습을 만들어야겠다는 목표로 기물을 만들고 있는데 어딘가 찌그러지고 비틀리는 모습이 있었다. 난 분명 중심을 잘 잡았다고 생각했는데 내 컵은 한쪽으로 휘어가고 있었다.


연습 삼아 만들어 본 것들을 반 갈라보니 그 실력이 여실 없이 드러났다. 한쪽은 얇고 한쪽은 두꺼운 웃긴 모양새가 첫 시작이었다. 그래도 계속 연습했다. 허리도 팔도 허벅지도 아팠지만 흙을 만지고 노는 행위 자체가 정말 재밌었다. 부실하지만 뿌듯한 나의 연습 물들을 보며 다른 사람의 모습도 슬쩍 구경할 여유도 부렸다. 그리고 그때 그들의 흔들리는 흙탑이 눈에 들어왔다.


중심이 덜 잡혔네..


내 중심은 보려고 해도 안보이더니 남들의 중심은 잘 보이는 것이었다. 타산 지석이라는게 이럴 때 쓰는 말인가? 중심이 흔들리고 있는 모양이, 중심이 잘 잡힌 모양이 바로 저거구나. 확연하게 느껴졌다. 내가 보는 것만큼 남들도 흔들리는 내 중심이 잘 보이겠지. 그 뒤로는 중심을 잡는데 더욱 신경 쓰고 작업했다.


중심이 잘 잡혀 있지 않으면 이리저리 휘둘린다. 그리고 한쪽으로 쏠린 흙더미의 힘은 생각보다 굉장히 강해져서 어느 순간은 더 이상 되돌릴 수 없다. 그렇게 한쪽으로 과도하게 비틀린 흙은 물레를 멈추고 손으로 다시 다져서 시작하거나, 아니면 전부 떼서 처음부터 시작해야 한다. 반대로 중심이 잘 잡혀 있다면 아무리 이상한 모양이어도, 실수했어도 다시 원래대로 쉽게 돌아갈 수 있다. 그리고 중심 잡기를 잘하면 또 다른 중심을 잡을 때도 익숙하게 해낼 수 있다. 흙을 빚을 때, 흙을 깎을 때 모두 중심잡기가 가장 중요하다.




단단한 흙이 말캉해지고, 어느 순간 흔들림이 없이 꼿꼿하게 서 있을 때가 바로 중심이 잘 잡혀있는 모습이다. 중심이 잘 잡히면 얼마나 기쁜지. 도예 선생님은 물레 작업을 할 때 힘이 많이 들어 고되지만 굉장한 힐링을 느낀다고 하셨다. 나도 그래서 도예작업이 좋았다. 마치 정신 수련하는 것처럼 바퀴 한 바퀴 속으로 외치며 내 손끝에서 중심을 잡아가는 그 과정이 명상과 다름 없었다.


저마다의 기물을 집중해 만드는 수업 시간에는 돌아가는 물레 소리만 들릴 뿐이다. 그래서 그런가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는 이 세상 모든 소음과 움직임이 더욱 크게 다가온다. 그럴 땐 다시 한번 상기한다. 빙글빙글 돌아가는 흙덩이를 내 힘으로 내 정신으로 녹여내는 작업. 휘어지고 비틀어지고 어딘가 엉성해도 곧 탄탄한 중심을 가진 나의 흙탑을 상상한다. 고요하고 평화로웠던 물레 위 중심 잡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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