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하기 : 새들도 아가양도 나도 기억하기 위해서

글쓰기는 참 어렵다. 그리고 글을 쓴다는 것은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다.

by 차고요

그때가 언제였지?


숙제로 제출할 글을 다듬기 위해, 사건과 감정을 꾹꾹 눌러쓴 오래된 일기장을 꺼내 들었다. 일기장속 글은 ‘어릴 때 나는 이런 생각도 했구나!’라고 놀랄 만큼 정교하고 감성적이었다. 그때의 고민과 이성적인 판단도 흥미로웠다.


남의 일기 보듯 히히거리면서 읽다 보니 시간은 어느새 새벽이었다. 일기는 참 매력적이다. 꾸준히 쓰기 위해서 지구력도 필요하고, 뭘 했는지 복기하는 과정이 은근히 고통스러우면서 사건의 중요성을 판단해 중요한 것 위주로 적어내니 계획적인 면도 필요하다. 감정을 마구 쏟아내다 보니 나도 몰랐던 생각과 느낌을 담아내기도 한다. 잊고 있었던 사건이나 그날의 감정 모든 것이 담겨있는 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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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문학 시간 중 소설 쓰는 시간이 있었다. 그 당시 감성 노래에 푹 빠져있었을 때라서 노랫말을 소설로 풀어보았다. 나만의 인물로 이야기를 풀어가는 이 과정이 너무 재미있어서 한동안 글 쓰는데 푹 빠졌고 비슷한 취미를 가진 친구들과 ‘소설쟁이들의 모임’이라는 소모임을 만들어 글을 쓰기도 했다. 우리는 본격적으로 인터넷 카페까지 만들었고, 인소(인터넷 소설)계의 왕이라고 불리는 귀여니처럼 간지러운 연애 소설도 썼었다. 그러다가 입시와 대학을 거치며 적극적으로 글을 쓰던 열정은 자연스럽게 사그라들었다. 흥미가 사라진 것이다.


내가 다시 글쓰기에 갈망을 느끼게 된 건 대학교 졸업 후 이제 막 사회생활을 시작했을 때였다. 책도 잘 읽지 않고 짧은 글과 말이 전부였던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 같은 SNS에 익숙해지면서 길고 좋은 글에서 점점 멀어졌다. 사용하는 단어나 문장도 한정적이어서 점점 언어능력이 퇴화하고 있음을 느꼈다.


내가 무슨 말을 하려 했지?

저 물건 이름이 뭐였지?


나는 또렷이 기억할 수 없었다. 그리고 이는 나 외에도 요즘 모두가 겪는 문해력 상실이라는 것을 알았다.


문해력은 꾸준히 다듬어야 한다는 것을 깨닫고 일기도 꾸준히 쓰기 시작했으며 나만의 주제로 짧은 글쓰기를 연습했다. 철학적인 물음과 답에 대한 것이 주를 이뤘다. 가령 죽음의 의미, 친구 관계, 인생관, 환경문제 등 나름 진지하게 글을 썼다. 그리고 친구와 함께 한 달에 한 번 글을 쓰는 활동도 했었다. 블로그를 개설해 글을 쓰기도 했고, 또 마침 근처에서 글쓰기 수업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냉큼 등록해 글쓰기 공부도 했다. 좋은 글을 위해서 다른 사람의 글을 보는 것도 필요하고, 때로는 반강제적으로 마감이 있어야 글을 쓰는데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더욱 거침없었다.



글쓰기 수업 과제였던 '자서전 쓰기' 술술이 써졌다. 그동안 하고 싶었던 말이 많았던 건지 초보자의 자신감인지 모르겠다. 이까짓 껏 금방이지! 콧방귀 뀌며 쓴 글을 선생님에게 보내고, 그다음 날 선생님이 그에 대한 피드백을 보내주셨다. 그 피드백을 읽으며 나의 자존심은 와르르 무너졌다. 내가 생각하기에 내 글은 거의 완벽에 가깝다고 생각했는데 여기저기 수정이 필요한 부분이 가득했기 때문이다. 그동안 일기만 쓰던 실력이었으니 당연한 이야기였지만 선생님이 정성스럽게 작성해 주신 파란 글자가 하나하나 내 마음에 꽂혔다.


처음에는 이렇게 내 글이 엉망일 수 없다며 부정했고, 나중에는 그럴 수 있다며 스스로를 위로했다. 한 번 더 선생님이 써주신 피드백을 읽어보니 맞는 말 투성이었다. 그리고 또다시 천천히 읽어보니 부끄러웠고, 또 한 번 내 글을 쳐다볼 염두가 나지 않았다. 그렇게 내 글은 노트북 파일로 조용히 저장되었고 다시 볼 용기가 생긴 건 거의 1년 만이었다. 몇 년이 지나 다시 봤을 때도 역시 내용이나 어휘력 문장구조 모두 엉망진창이었다. 선생님의 설명을 듣고 괜히 더 그런 마음이 든 게 아니다. 객관적으로 별로였다. 부끄러웠지만 처음 써둔 글(초안)은 본인의 글이 아니라는 글쓰기 선생님의 말씀을 떠올렸다. 지금 이 글은 내가 쓴 글이지만 손가락이 움직이는 대로 작성한 자료라고 생각했다.


책으로 출판되어 다듬어지고 정돈된 글보다 이제 막 써서 낸 글은 솔직함과 기억력이 가장 큰 순간이라 더욱 실감 난다. 오타가 나든 말든, 어휘가 어색해도 본인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을 가감 없이 그대로 읊어준다. (이 과정은 마치 그림을 그리는 것과 같다. 머리로 그려가는 것이 아니라 손이 알아서 움직이게 된다.)


글쓰기 숙제를 할 때 자서전이라는 주제는 어딘가 거창한 느낌이 들어 ‘내 생각 모음집’이라고 생각하고 작성했다. 내가 느꼈던 시간, 맛, 감정, 관계를 적었다. 그래서 이 날것의 글은 머릿속에 떠오른 그 순간의 감정을 담기에 바빴던 고민과 행복, 지향점, 꿈, 슬픔, 목표들이 있었다. 그래서 더욱 솔직하고 엉망이었다. 이때문에 더욱 부끄러웠던 것이다.


부끄러운 글을 쓰고 다시 읽어보며 정리하는 것은 매우 힘들지만 그 과정을 해내면서 완성되는 가치관, 탄탄해지는 생각, 나만의 진리가 참 매력적이었다. 창피함을 이겨내고 부끄러움을 깨달아야지 사람은 단단해지고 더 강해진다고 했다. 나는 이 과정이 진정한 글쓰기가 아닐까 한다.

글쓰기는 참 어렵다. 그리고 글을 쓴다는 것은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다. 아니 정정하자면 부끄러움을 느끼는 과정이 맞다. 특히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글은 더더욱! 나는 좋은 글이라는 목표에 갇혀서 글을 잘 쓰지 못하는 것에 걱정이 있었다. 뭔가 멋진 것을 쓰고 싶은 욕심에 머리에서만 빙빙 맴돌기도 했다. 난 처음부터 완벽한 글을 쓰고 싶었다. 꼭 못하는 사람들이 욕심이 많다. 내가 그랬다.


그런데 글은 그냥 써야 한다. ‘우선 저지른다’는 말이 더 어울릴까? 잘 쓰던 못 쓰던 상관없는 나만 보는 일기장처럼. 우선 내가 어떤 생각을 하고 사는지 기록하는것이 제일 중요하다. 그리고 천천히 다시 읽어가며 다듬어가는 것이다. 처음부터 완벽할 수는 없다. 인생도 글도 시간을 들여 나에게 맞게 바꾸는 것이다.


나는 내가 두서없이 써 내려간 일기장 속 글들이 지금의 나를 만드는데 가장 큰 자양분이 되었음을 확신한다. 순간의 감정을 기록한다는 것은 굉장한 일이다. ‘나는 이런 사람입니다.’라고 한 문장으로 정의할 수 없는 복잡하고 다양한 가치관을 가진 사람 그리고 그 인생. 나는 사람들이 글을 많이 읽고 썼으면 좋겠다. 나도 그들의 삶을 느끼고 나와 닮은 부분과 그렇지 않은 부분을 알고 서로를 다정하게 이해하는 삶을 살고 싶다.


부디 이 글을 덮으면 우선 아무거나 작성하길 바란다.(나 스스로에게도 하는말이다.) 부담가지지 않고, 솔직하고 가감 없던 일기 쓰기처럼, 내 머릿속을 정리하고 알고 있는 것을 솔직하게 이야기 하는 글쓰기에 부담을 덜었으면 좋겠다. 초안은 엉망이고 부끄럽지만 우리의 자료가 되고 시작이 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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