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바라기 소년

제19화 라이 타이 검술

by 김하록

소연과 태석은 프랭크가 그들에게 남긴 저택에 들어온 첫날 점심으로는 짜장면과 탕수육으로 배를 채우고,저녁으로는 고추잡채밥과 새우볶음밥으로 대충 때웠다. 프랭크가 태국으로 떠나기 전 가사도우미를 통해 깨끗하게 청소하고 정리해두었을 뿐 아니라, 이불과 베게 등 필요한 침구류를 빠진 것 없이 새것으로 다 준비해둬서 그냥 몸만 누이면 되는 상황이었다. 어둠이 내리고 밤이 깊어지자 소연과 태석 사이에 어색한 침묵이 흘렀고, 태석이 침묵을 깨고 소연에게 말을 걸었다.


"처음이라 어색하고 불편할 텐데, 난 여기 소파에서 잘 테니까, 소연이 니는 고마 안방에 가서 자라."

"여기 2층까지 하면 방이 다섯개가 넘는데, 뭐할라꼬 소파에서 불편하게 잡니꺼? 그라지 말고 아무 방이나 들어가서 편하게 주무시이소."

"오 그렇나? 알았다. 혹시라도 밤에 누가 들어오면 바로 나와바야 하니까 내는 그라모 여기 출입문 옆에 있는 방에서 잘꾸마."

"알겠십니더."

"내가 둘 다 잘 지켜주고 건사할 테니까 니는 아무 걱정하지 말고 고마 뱃속에 있는 아이만 생각해서 좋은 생각만 해라."

"고맙십니더."


소연은 그저 몇번 본 게 다인 태석이 자신과 뱃속의 아이를 지켜준다는 말에 무안함과 고마움과 또 재호의 부재로 인한 서러움이 교차하면서 울컥했지만, 그 감정을 최대한 갈무리하면서 태석의 말에 대답했다.


"좋은 꿈 꾸고 잘 자라."

"안녕히 주무시이소."


다음날 아침 재호는 아침 식탁에 앉아서 난 홈으로부터 남칸 귀족의 식사예법을 배우고 있었다. 식탁에는 맑은 닭고기 육수와 갓 뽑아낸 부드러운 쌀국수, 그리고 잘게 다진 고기를 토마토와 땅콩가루, 고추기름으로 볶은 소스로 만든 샨누들의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었다. 곁들임 음식으로 갓 짠 땅콩 기름과 잘게 썬 파, 그리고 겨잣잎 절임이 놓여 있었다. 재호가 젓가락으로 들어올린 국수를 이빨로 끊어 그릇에 떨어뜨리자, 난 홈이 바로 식사예법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남칸 귀족은 입에 넣은 면을 이빨로 끊어 그릇에 떨어뜨리는 것을 극도로 천박하게 여깁니다. 그리고 젓가락을 짧게 잡는 것은 노동 계층의 습관으로 간주되니, 젓가락을 길게 머리 윗부분을 잡도록 하세요. 또한 젓가락이 그릇에 부딪히는 소리조차 내지 않는 것이 남칸 귀족의 절제된 품격입니다. 국수를 먹을 때에 왼손에 사기숟가락을 들고 젓가락으로 적당량의 면을 집어 올린 뒤, 입으로 바로 가져가지 않고 입높이까지 들어 올린 숟가락 위에 정갈하게 똬리를 틀듯 얹습니다. 면이 숟가락 위에 완전히 안착하면, 숟가락을 입가로 수평하게 가져가서 먹습니다. 처음부터 입에 한 번에 넣을 수 있는 만큼의 소량만 숟가락에 얹습니다. 입술을 크게 벌리지 않고 면을 조용히 빨아들이며, 이때 후루룩 소리를 내는 것은 절대 금기입니다."


재호가 난 홈이 가르친 대로 먹다가 나중에 그릇을 들어서 국물을 마시자 또 다시 난 홈의 가르침이 시작되었다.


"남칸 귀족은 그릇을 들고 통째로 마시는 일은 절대 없습니다. 오직 숟가락만을 사용하여 국물을 뜹니다. 숟가락을 입술에 살짝 대고 국물을 흘려넣듯 마시며, 이때도 허리와 고개는 수직 상태를 유지하셔야 합니다."

"네, 알겠습니다. 다음부터는 주의하도록 하겠습니다."


난 홈의 식사예법을 들으면서 샨 누들을 다 먹은 재호는 라이 타이 수련 도복으로 갈아입었다. 라이 타이의 핵심인 낮은 무게중심과 지그재그 보법을 수행할 때 다리의 움직임을 전혀 방해하지 않도록 통이 극단적으로 넓은 기마바지 형태의 샨 바지를 입고, 발목 부분은 정글의 덩굴에 걸리지 않도록 끈으로 단단히 묶었다. 상의는 차이니스 칼라 형태로 내구성이 강하면서도 움직임이 유여한 두꺼운 야생 실크로 만들어졌으며, 앞여밈은 단추가 아닌, 천으로 만든 매듭으로 고정시켰다. 소매는 손목보다 약간 짧았고, 가슴에는 남칸 가문의 상징인 사자 문양이 검은색 실로 정교하게 자수되어 있었다.


흑색 실크와 은색 자수로 만든 무복을 입은 재호의 모습은 그야말로 한 마리의 검은 사자와 같이 당당한 모습이었다. 그런 재호의 야성미 넘치는 모습을 본 시리와 난 홈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자기도 모르게 입술이 벌어져서 다물줄을 몰랐다.


"왜 이렇게 가슴이 뛰는 거지?"


시리는 자신의 가슴에 손을 대며 진정시키려 애썼지만, 심장의 고동소리는 더 커져만 갔고, 호흡마저 가빠졌다. 난 홈의 상황도 다르지 않았다.


아잔 통 검술 사범 앞에는 검날 끝이 위로 휘어 올라간 샨족 전통 장검 샨다 두 자루가 놓여있었다.


"이건 샨족 전통 장검 샨다다. 이제부터 이 진검으로 네게 라이 타이의 파검법부터 발검, 기본 보법과 베기, 찌르기를 가르치도록 하겠다. 발검 전 파지 자세는 '사자의 대기(The Shadow of Chinthe)'라고 부르며, 무게 중심을 지면에 가깝게 낮추고 척추를 곧게 세워서 탄력을 응축한 자세를 취한 다음 왼손은 검집의 입구를 움켜쥐되, 오른손은 은색 원형 가드인 칼코에 이렇게 부드럽게 올려둔다. 이때 검집을 몸쪽으로 바짝 붙이지 않고, 약간 앞으로 비스듬히 내밀어 발도 공간을 미리 확보한다. 오른손은 칼자루를 미리 잡지 않고 손바닥을 펼쳐 자루 끝 근처에 가볍게 띄워둔다. 이는 적에게 공격의사를 숨기면서 찰나지간에 자루의 지렛대 원리를 이용해 낚아채기 위함이다. 발검 직전 왼손 엄지로 칼코를 살짝 밀어 검신을 1인치 정도 벌린다. 이때 나는 아주 미세한 소리가 라이 타이의 시작을 알려준다. 왼발은 적을 향하고, 오른발은 그 뒤에 비스듬히 둔다. 보폭은 어깨너비 정도로 유지하여 언제든 사방으로 튈 수 있는 용수철 같은 상태를 만든다. 왼발과 오른발의 무게중심은 5:5 내지 왼발에 6 정도의 무게를 둔다. 무릎은 부드럽게 굽혀 충격을 흡수할 준비를 하고, 척추는 꼿꼿이 세워 적을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는 듯한 귀족의 위엄을 유지한다."


아잔통의 설명과 시범이 계속되는 동안 사이롱을 위시해서 시리와 난 홈은 재호의 자세변화에 계속 놀란 입을 다물지 못했다. 순박하고 천진난만한 청년 재호의 눈빛에 어느새 형형한 검기가 흘렀고, 처음 배우는 라이 타이 검술임에도 재호의 자세는 너무나 자연스럽고 수려해서 가르치는 아잔통도 감탄할 수준이었다.


"찰나의 역류라고 불리는 샨다의 발검은 단순히 칼을 뽑는 것이 아니라 검집과 검신을 서로 반대방향으로 교차시키는 것이 특징이다. 오른손이 검을 앞으로 쏘아낼 때, 왼손은 검집을 뒤로 강하게 잡아 당겨서 발검 속도를 더욱 가속시킨다. 시선은 검을 보지 않고 오로지 적의 눈이나 목을 향햐며, 검은 마치 신체의 일부처럼 소리 없이 궤적을 완성한다. 내가 먼저 시범을 보여줄 테니 보고 따라하도록!"

"네, 사범님!"


아잔통의 군더더기 없는 찰나의 발검을 보고 난 뒤 재호가 샨다의 발검을 완벽히 수행하자, 아잔 통을 위시해서 이를 구경하던 모든 이의 짧은 탄성과 더불어 그들의 눈이 딱 벌어졌다.


"천재!"


사이롱은 이 한마디 말을 나직히 뱉으며 전날 남칸과 무세 가문의 족보를 순식간에 암기하던 재호의 뛰어난 암기력을 떠올렸다. 이 순간 사이 롱은 재호를 그냥 평범한 소년인줄 알았던 그의 생각이 크게 빗나갔음을 단번에 알아차렸다. 발검에 이어서 아잔 통의 라이 타이 검술에 대한 설명이 계속 이어졌다.


"이 샨다 검은 곡선 모양으로 무게 중심이 끝에 실려 있어서 직선적인 힘보다 회전과 흘리기를 중시한다. '사자의 도약(Rising Slash)'이라고 불리는 이 상향 베기는 수중 사자 잠영의 낮은 자세에서 발도와 동시에 아래에서 위로 대각선으로 베어 올린다. 그리고 '안개의 흐름(Circular Cut)' 또는 '초승달의 궤적'이라고 불리는 이 회전 베기는 칼날이 허공을 가를 때 직선이 아니라 칼날의 곡선을 따라 원을 그리며 적의 목이나 어깨, 손목 등 관절을 베어 넘긴다. 어깨의 힘으로 끊어치는 것이 아니라, 손목의 스냅과 허리의 회전을 사용해서 검의 무게를 이용해 미끄러지듯 베어낸다. 그리고 베기의 가장 중요한 점은 한번의 공격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베기가 끝난 지점이 다음 베기의 시작점이 되는 '무한궤도'식 베기라는 점이다. 따라서 칼이 멈추지 않고 계속 춤을 추듯 끊임없이 휘둘러져야 한다. 다음은 '사자의 송곳니(Curved Thrust)'라고 불리는 곡선 찌르기 동작이다. 사자의 송곳니는 직선으로 찌르는 것이 아니라 손목을 살짝 비틀어 검 끝의 곡률이 적의 늑골이나 턱 밑을 파고 들게 찌른다. 이렇게 곡선으로 찌르면 적이 뒤로 물러나도 휘어진 끝이 사정거리를 보완해 줘서 적을 찌를 수 있고, 찌른 후 비틀어 뽑을 때 적에게 치명상을 입힐 수 있다. 자 지금까지 보여준 사자의 도약, 안개의 흐름, 그리고 사자의 송곳니 동작을 하나씩 연계해서 수행해보도록!"

"네, 아잔 통!"


재호가 아잔 통이 알려준 대로 상향 베기와 끝없는 무한궤도식 회전 베기, 곡선 찌르기 등을 연속 동작으로 연계해서 보여주자 제일 먼저 아잔 통의 넋이 나가버렸고, 사이 롱과 시리, 난 홈 등은 놀람과 감탄으로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검끝이 이렇게 깨끗하다니. 참으로 만고의 기재로다! 회전베기는 단 한 동작만 선보이고 무한궤도식은 시범도 보이지 않았는데, 혼자서 생각해서 저렇게 완벽하게 수행하다니 정말이지 믿어지지 않는 습득력과 응용력을 가진 천재 중에 천재로구나."


아잔 통의 나지막한 탄성이 자신도 모르게 그의 입에서 새어나왔다. 곧 자신의 실수를 깨달은 아잔 통은 재호가 교만해지지 않도록 엄준하게 과제를 부여했다.


"앞으로 이 세 가지 동작을 한 달 동안 집중적으로 수련하고 갈고 닦는다. 알겠나?"

"네, 아잔 통!"


그렇게 재호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사오 칸이 되기 위한 교육을 한 치의 빈틈도 없이 철두철미하게 체계적으로 받기 시작했다. 난 홈에 의한 예절 교육은 수시로 받았고, 그리고 오전에 라이 타이 수업이 끝나면 점심을 먹고 나서 오후에는 태족 출신의 언어학자 사이 렝으로부터 미얀마 샨어와 남칸어를 같이 배웠고, 저녁을 먹은 이후에는 시리와 자유로운 대화를 하며 남칸어를 연습했다.


재호가 베이스 캠프에 온 지 사흘째 되는 날 DEA 동남아 지부장으로 발령받은 프랭크가 태국 방콕에 도착했다. 미대사관의 DEA 사무실에서 간단한 신고식을 마치자마자 운전기사로 DEA 요원 1명을 대동하고서 미대사관에서 외부로 향하는 비상 통로를 이용해서 지하주차장으로 이동한 다음 거기 세워진 한 위장차량에 탑승하고선 재호가 있는 베이스캠프를 향해 전속력으로 달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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