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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깨 May 16. 2021

[제 20회 전주국제영화제] '프랑스여자 (2019)'

프랑스 여자, 경계에 서 있는 그녀

아직 세상에 나오지 않은 영화를 볼 수 있다는 선물은 영화제에서만 맛볼 수 있다. 단 하루밖에 시간이 없던 나에게 전주국제영화제에서 볼 영화를 고르는 것은 쉽지 않았으나, 여성 감독 작품을 꼭 하나는 보고 싶어 선택한 <프랑스 여자>. 나는 이 영화를 통해 앞으로 김희정 감독의 팬이 될 것 같다. 우선 개인적으로 공감될 수밖에 없는 인물이다. 만약 해외에서 6개월 이상 살아본 경험이 있다면 '미라'에게 강력하게 감정이입이 될 것이다. 런던에서 1년 7개월 남짓 정말 '나홀로' 살았던 때가 겹쳐지면서.. 영화를 보는 내내 미라의 외롭고 고독한 어깨를 꼭 감싸고 싶었다.


영화가 개봉되기 전에 스포를 할 수 없어서 너무나도 아쉽지만, 이 영화의 스토리라인은 매우 놀랍도록 치밀하고 탄탄하다. 장르적인 공포감을 주는 듯하면서도 유쾌하고 따뜻하고 또 고독하다. 마치 우리의 일상처럼. 특히 술집 배경의 5분이 넘는 롱테이크 장면은 인물의 대화만으로도 분위기가 180도 전환되어 긴장감을 주는데, 배우들의 합이 대단하다고 느꼈다. 술집 이야기가 나와서 하는 말인데, <프랑스 여자>에서 공간은 매우 중요하다. 미라가 '잠'을 자는 숙소, 항상 친구들과 함께 마시는 술집, 파리의 바.  어쩌면 우리가 공간을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공간이 우리를 기억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관계의 상실과 고독감에 대한 영화가 이토록 많은 것은 결국 그것이 인간과 삶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 영화는 희망을 이야기한다. 살아야 한다, 고독하고 외로울지언정 일어나야 한다. 일어나서, 후회가 남을지언정 사랑과 우정을 맛보고 하고 싶었지만 못 했던 이야기도 해야 한다.

사실 전주국제영화제로 향했을 당시 나는 외로웠다. 바쁜 도시 속에서 나는 고독했고 그로 인해 슬펐다. <프랑스 여자>를 보고 나는 정말 그 무엇보다 큰 위로를 받았다. 의학에도 동종요법이라는 것이 있다. 슬픔은 기쁨으로 치유하는 것보다 슬픔으로 치유한다는 것. 외로웠던 나에게 이 영화는 역설적으로 외로움을 말함으로써 은근한 위로를 건네는 것 같았다.


배우들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미라'역을 맡은 김호정 배우는 마치 이자벨 위페르와 같았다. 온갖 감정을 다 가지고 있음에도 절제하고 어딘가 고고한 학 같은 이미지가 비슷했다. '해란' 역을 맡은 류아벨 배우의 카리스마는 스크린을 넘어서까지 전해졌다.       



내가 이 영화를 봤던 시점에서 영화는 전주국제영화제에서 3번째로 상영된 것이었는데, 그럼에도 매진이 되었다. 원래 GV가 예정되어 있지 않았는데 서프라이즈로 김희정 감독님과 어린 시절 영은을 맡은 배우분과 '성우'역을 맡은 배우분께서 참석해주셨다!  이 배우 분 이름을 미처 못 들었는데, 하 너무 재밌으시고 매력 넘치셨다! 김희정 감독님은 이번 전주국제 심사도 하셨다고 한다. 감독이 실제로 폴란드 학교에서 7년 공부하며 느낀 낯섦, 외국에 사는 한국여자들의 삶. 이방인의 모티프로 영화를 만드셨다고 한다. 감독님의 전작 '설행'도 이참에 꼭 봐야겠다.


실제로 안내상 배우가 공연예술을 하는 학생들에겐 밤 12시가 넘으면 공짜 술을 주었던 '한잔의 청춘'이라는 실존하는 술집이 공간적 배경의 모티프가 되었고, 김희정 감독이 실제로 덕수궁의 강의실에서 공연예술아카데미 수업을 들었다고 한다. 일종의 자전적인 이야기처럼 느껴지는 부분이다.


영화는 거울이다. 불이 꺼지고 영화가 시작되면 어느샌가 '나'를 잊고 이야기에 몰두하게 된다. 그러나 이야기를 들여다보면서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우리 자신을 들여다본다. 그리고 영화가 끝나고 불이 켜지면, 온전히 '나'로서 홀로 남아있게 된다. 그게 영화의 매력이다. 이 매력을 <프랑스 여자>를 관람하면서 오랜만에 느꼈다. 감사한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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