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중독되지 않은 자, 유죄
영화 <언컷젬스>와 덕업일치
1. 길티 플레져
영화 <언컷젬스>의 주인공 하워드는 도박 중독자다. 실제로 금전이 오가는 도박뿐만 아니라 그는 일상생활에서 타인들을 만날 때, 타인 모르게 말과 행동으로 혼자만의 도박을 한다. 좋아해서 하는 수준을 넘어, 해야만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힌 것으로 보인다. 이 도박 중독에서 주인공은 벗어나기 어려워 보인다. 영화 속에서 주인공은 도박으로 인해 평판도 깎이고, 개인적으로는 도박 자금을 융통하기 위해 정신적 스트레스와 사채업자들에게 신체적 폭력에 시달린다. 그런데도 계속 도박을 하다, 총에 맞기까지 한다.
이런 그를 보고 나는 두 가지 의문이 생겼다. 첫째는 왜 도박일까? 그리고 영화 상에서 주인공은 도박을 할 때 가장 기뻐하고, 또 도박을 꽤 잘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이를 보고 생긴 두 번째 의문, ‘내가 좋아하고 잘하는 일을 할 때, 죄의식을 느낀다면 나는 그것을 하지 말아야 하나?’
2. 덕업일치
취미가 밥 먹여주는 세상이 됐다. 꽤 오래전부터 ‘덕업일치’라는 단어를 주변에서나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자주 듣는다. 덕업일치란 말 그대로 ‘자기가 열성적으로 좋아하는 분야의 일(덕질)을 직업으로 삼았다.’는 뜻이다.
앞서 ‘취미’라고 적어 놓았지만 취미라는 단어가 담기에는 ‘덕질’은 더 심오하다. 오히려 덕질을 ‘하고 싶은 일’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더 적절할 것이다.
3. 네가 하고 싶은 걸 왜 네가 몰라?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사는 것. 모든 사람들이 꿈꾸는 일일 것이다. 하지만 ‘꿈’이라고 말한다는 건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못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사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찾는 것부터 어렵다. 먼저, 세상에는 수없이 많은 일들이 있다. 또 셀 수 없이 많은 일들이 지금 이 순간에도 없어지고 다시 생겨나고 있다. 그리고 계속되는 과학의 발전으로 인해 사회는 너무나 빠르게 흘러가고 있다. 이런 새롭고 좋아 보이는 일들은 미디어를 통해 계속해서 보여진다. 스스로가 어떤 하나의 일을 진실로 좋아하는지 깊이 생각할 여유가 부족하다. 개인적으로는, 한 사람이 좋아하는 일은 하나가 아니다. 한 개인이 여러 가지를 한 번에 좋아할 수 있다. 또 누군가 무엇인가를 좋아한다고 생각했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것이 싫어지는 경우도 주변에서 많이 볼 수 있다.
‘네가 하고 싶은 걸 왜 네가 몰라?’라고 묻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렇게 하고 싶은 일이나 좋아하는 일이 명확한 사람들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나 좋아하는 일을 찾지 못해서 방황하는 이들을 답답해하고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하고 싶은 일을 정확히 안다는 것이 얼마나 큰 행운인지 알지 못한 채 말이다.
위에 ‘네가 하고 싶은 걸 왜 네가 몰라?’라는 질문에 답을 해보자. 하고 싶은 일을 모르겠는 이유는, 이 하고 싶은 일이라는 게 개인의 주관적인 느낌이 많이 작용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고 싶은 일을 정량적인 수치로 나타내기 어렵다.
우리가 보통 어떤 일을 정량적인 수치로 치환할 때 가장 많이 사용하는 것이 시간과 돈이다. 이 시간과 돈을 많이 쓰는 일이 내가 좋아하는 일이라고 얘기를 하지만 이 두 가지만으로 좋아하는 일을 말하기엔 부족한 부분이 있다. 예를 들어, 고3 수험생이 자신이 원하는 대학이나 과에 진학하기 위해서, 공부하기 싫지만 수험공부를 오래 하고 있다고 하자. 이것을 두고 공부에 시간을 많이 쓰고 있으니 고3 학생이 수험공부를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또는 전세 계약 기간이 끝나가는데 전세 매물이 없어서 받을 수 있는 대출을 최대한 받아 겨우 자가를 구한 사람에게, ‘너는 집을 좋아하는구나?’라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즉, 하고 싶은 일은 시간과 돈 대신 어떤 일을 할 때 생기는 ‘기분 좋음’이나 ‘즐거움’이 있어야 한다. 이 정성적인 수치는 완전히 개인적인 부분이다. 이렇게 어떤 일에 푹 빠져 즐거움을 느끼는 사람들은 그 일이 자신에게 금전적 이익이나 자기 계발에 도움이 되지 않더라도 시간과 돈을 많이 쓴다.
이 즐거운 일은 두 종류로 나눌 수 있다. 즉각적인 쾌락과 건설적인 쾌락. 즉각적인 쾌락은 마약, 술, 담배, 도박, 식욕, 성욕, 수면욕 등이 있을 것이다. 건설적인 쾌락은 어떤 일을 해냈을 때 성취감으로 말할 수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살면서 어떤 일을 해내고 성취하는 기쁨을 느낀다. 작게는 운동 경기를 하거나 게임을 깨거나 혹은 책 한 권을 다 읽었을 때 성취감을 느낀다. 크게는 원하는 대학이나 회사에 합격했을 때. 또는 큰 프로젝트를 성공했을 때 이런 느낌을 얻을 것이다. 우리는 이 성취감이 즉각적인 쾌락과는 비교할 수 없이 엄청난 기쁨을 준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큰 기쁨은 그에 맞는 오랜 시간과 노력이 요구된다.
그래서 건설적인 쾌락보다는 시간이 적게 들고 좀 더 손쉽게 얻을 수 있는 즉각적인 쾌락을 좇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시간이 적게 들고 손쉽게 얻을 수 있다고 해서, 이 즉각적인 쾌락의 크기가 건설적인 쾌락의 크기보다 월등히 작은가?라고 묻는다면 나는 확실히 답하지 못할 것이다. 잠깐만 생각해봐도 마약, 술, 담배, 도박, 식욕, 성욕, 수면욕 같은 쾌락도 내게 큰 기쁨을 주기 때문이다. 가끔 오는 큰 기쁨과 매일 만날 수 있는 작은 기쁨. 이 작은 기쁨들이 계속 쌓인다면 그것을 작다고 말할 수 있을까?
4. 인생은 도박
흔히 인생을 도박에 비유한다. 인생을 마약, 술, 담배에 비유하진 않는다. 도박은 다른 즉각적인 쾌락에 비해 특별한 구석이 있다. 능동적이면서 수동적이라는 것이다. 식욕, 성욕, 수면욕은 인간의 기본 욕구이므로 차치하고 마약, 술, 담배를 생각해보자. 3가지 다 본인이 직접 주사기를 꽂거나 흡입하거나 마시거나 피지만, 그 안에 있는 성분이 몸 안에서 작용하여 쾌락을 느끼게 된다. 이 작용은 내가 만드는 것이 아니다. 술을 마실 때, 취하지 않으려 해도 어느 순간 취해있듯 말이다. 이에 반해 도박은 내가 직접 행위한다. 지금 판돈을 더 올릴지, 죽을지 혹은 블러핑을 할지 말지 등. 주인공처럼 스포츠 도박을 하는 사람들의 경우, 베팅할 팀의 최근 경기력에 대한 조사뿐만 아니라, 선수들의 최근 개인사까지 조사하여 자신의 베팅 확률을 높이려 한다. 이 능동적인 선택과 노력은 도박에 대한 경험 증가와 기량 향상으로 이어진다.
하지만 결국 도박은 운이 크게 작용한다. 내가 블러핑을 아무리 잘해도 받은 패가 좋지 않으면 진다. 베팅할 팀 선수와 감독의 모든 것을 조사했어도 상대 팀이 미치게 잘해서 경기에 지거나, 베팅한 선수의 갑작스러운 컨디션 난조로 내가 원하는 기량을 펼치지 못할 수도 있다. 이런 개인의 능동적인 행위와 별개로 운이라는 수동적인 요소가 도박에서 절대적인 영향을 발휘한다. 이 도박의 운은 인생의 운명과 닮아있다. 인생도 나 스스로의 선택과 노력으로 살아왔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어느 순간 돌아보면, 도박에서 우연히 손에 들어온 카드 패처럼, 정해진 운명을 따라온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도박과 인생의 이 우연성으로 인해, 도박은 문학, 영화 분야에서 자주 인생으로 비유된다. 영화로 비교해보자면 마약, 술, 담배에 관한 영화 보다, 도박에 대한 영화 숫자가 훨씬 많다. 그리고 이 도박 영화들이 높은 작품성을 가진 이유 또한 도박이 인생과 닮아있기 때문일 것이다.
5. 이상하지 않은 사람
“그래 나는 이상한 사람이야, 하지만 이상하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어?”
- 안톤 체호프 ‘세 자매’ 中
맞다. 세상에 이상하지 않은 사람은 없다. 영화 속에서는 도박 중독인 하워드에게 포커스가 집중됐지만, <언컷젬스> 속 주요 인물들은 모두 어떤 것에든 중독된 이상한 사람들이다. 동료의 다리가 부려졌는데 그 혼란한 틈을 타 오팔을 몰래 캐냈던 두 광부. 좋은 농구 성적을 위해 반짝이는 돌에 불과한 오팔을 비싸게 사는 케빈 가넷. 자기 존재의 의미를 남자들에게서 찾으려 하는 줄리아. 더 큰돈에 대한 욕심 때문에 하워드를 의심하지만 계속 기회를 주는 사채업자 아르노까지. 모두 이상한 사람들일 것이다.
<언컷젬스>는 영화의 주제를 위해, 형식적인 부분이 잘 받쳐주고 있다. 이 이상한 중독이라는 내용을 더 선명하게 나타내기 위해 쓰인 영화적 기법들은, 마치 관객을 영화에 중독되게 만든다. 예를 들어. 첫 번째, 영화 내내 계속되는 시끄러운 소음. 이 소음은 주인공이 말을 할 때조차 줄어들지 않는다. 오히려 대화 내내 주변 소음이 점점 커지는 느낌마저 들었다. 이렇다 보니 주인공과 인물들이 대화할 때, 내용을 놓치지 않기 위해 영화에 더욱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두 번째, 핸드헬드 기법. 화면이 끊임없이 흔들린다. 하워드가 다른 곳으로 이동하기 위해 움직이는 장면이 굉장히 많다. 이런 장면들에서 카메라가 쉴 새 없이 흔들리다 보니 주인공의 불안한 심리를 파악하는 것을 넘어서, 관객인 내 마음까지 불안하게 만든다. 세 번째, 주인공 눈높이 화면. 하워드가 장소 이동을 위해 걷는 장면이 유독 많았다. 걸을 때 주인공의 등을 걸고, 주인공 정면을 보여주는 샷이 많았다. 하워드가 걸으면서 보고 듣고 말하는 것을 비슷한 눈높이에서 지켜보다 보니 인물에 더 이입할 수 있었다.
영화 속 중독된 이상한 사람들을 보고, 영화 기법들의 의해 주인공인 하워드에 감정이입을 하다 보니, 자연스레 영화 밖 나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나도 이상한 사람이다. 나도 여기서 말할 수 없는 것에 중독되어 있다. 한 인물에게 공감한다는 것은, 그 인물이 가진 모습이 내 안에도 있기 때문일 테니. 나도 미신에 기댈 때도 있고, 타인으로부터 내 존재감을 찾기도 하고, 무엇인가에 중독되어 나도 모르게 나를 망가뜨릴 때도 있다.
6. 권태와 허무
영화 내내 하워드는 계속 도박을 한다. 스포츠 베팅뿐 아니라 모든 사람을 대할 때, 말과 행동으로 자신만의 도박을 한다. 혼자 하는 도박. 이 도박이 잘못되면 코피가 나고, 분수대에 처박히기도 하고, 창문 밖으로 거꾸로 매달리게 된다. 하지만 주인공은 이렇게 자신의 도박이 실패하더라도 전혀 죄책감을 느끼지 않고 자기 연민에 빠지지도 않는다. 그저 다시 도박에 도전한다. 이쯤 되자 나는 주인공의 도박에 대한 의지가 징글징글하기도 하고, 한편으론 대단해 보였다.
이와 비슷한 내용의 영화가 있었다. 영화 ‘세븐’. 이 세븐에서 연쇄살인마는 자신이 생각한 살인 방식의 실현과 원하는 살인 현장을 만들기 위해. 집을 렌트하고, 피해자를 침대에 묶어놓고, 피해자에게 마취제를 주사하는 작업을 수개월간 진행한다. 왜 저렇게 까지 할까? 영화지만 한 사람을 죽이기 위해 엄청난 공을 들이는 모습이 의아했다. 하지만 그 연쇄살인마에게 사람을 죽이는 것은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었다. 이 수단을 통해 세상에 자신의 메시지를 보여주는 것이 목적이었다.
맨 처음에 말했던 두 가지 의문 중 첫 번째 의문을 떠올렸다. 왜 도박일까? 영화들 속 주인공이 어떤 것에 중독되고 그것에 집착하다 파멸하는 내용의 영화는 많다. 그렇다면 수단이 중요하다. 왜 감독은 도박이라는 수단을 썼을까? 아마도 주인공이 중독에 빠지는 이유. 즉, 감독이 보여주고자 한 목적은 한 인간의 권태와 허무를 보여주기 위함이라고 생각된다.
주인공은 좋은 집, 좋은 차, 아름다운 아내, 예쁜 아이들, 뉴욕에 본인 소유의 보석가게, 그리고 유대인으로 종교생활도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꿈꾸는 삶을 살고 있다. 그리고 그는 돈에 대해서도 큰 의미를 두지 않는 듯 보인다. 겨우겨우 오팔을 팔아 큰돈을 받자마자, 그는 그 돈을 다시 스포츠 베팅에 모두 걸어버린다. 또 주인공을 유대인으로 설정한 것도 돈의 무의미함에 대한 상징이라고 생각된다. 유대인들이 귀금속류 사업을 오랫동안 해왔다. 그리고 그들은 어려서부터 경제교육을 많이 받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유대인들이 가진 부는 매우 크다. 예로 그들의 인구는 세계적으로 약 1500만 명으로 전체 인구의 0.2%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들은 포브스 선정 세계 400대 부자 목록의 30%를 차지하고 있다. 이런 유대인이면서 성공한 사업가인 주인공에게 돈이란 의미 없는 것처럼 보인다.
모든 걸 가진 것으로 보이지만, 평소 주인공의 얼굴은 어둡다. 그의 얼굴에 생기가 돌 때는 도박을 할 때 뿐이다. 그는 도박을 하면서 스스로에게 엄청난 스트레스를 주면서도 행복해한다. 도박은 권태롭지도 허무하지도 않다. 아마 그래서 그는 도박에 더 심취하게 되지 않았을까. 도박은 매번 새로운 판이니까.
7. 심오한 놀이
도박이라고 하면 바로 떠오르는 것은, 패가망신, 타짜, 손목, 빚 등 나쁜 인상들 뿐이다. 하지만 이 <언컷젬스>는 도박이라는 소재를 영화에서 예술적인 의미를 부여했다고 생각한다. 도박에는 분명 사람을 흥분시키는 요소들이 있다. 즉각적인 보상, 우연에 자신을 맡기고 싶은 마음, 자기파괴적 본능, 도박이 성공했을 때의 희열까지. 이것들은 분명히 존재한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 옛날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도박은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다. 영화 속 이 도박에 중독된 인물을 통해 인간 마음에 오묘한 부분을 잘 나타냈다고 생각한다.
도박을 예술적으로 표현한 이 영화를 보면서 '인생이란 무엇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도박과 예술과 인생은 다 같은 것 아닐까? 사르트르가 '직업'을 '심오한 놀이'라고 얘기했듯이, 도박과 예술과 인생까지 모두 다 심오한 놀이라는 생각이 든다. 예술은 기존의 것에서 새로움을 발견하고자 하는 놀이다. 도박도 결국 돈을 따는 놀이일 것이다. 인생은 어떤가? 인생을 나 스스로는 엄청 심각하게 살아왔다고 생각하지만, 뒤돌아보면 그저 심오한 역할놀이였을 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8. 중독과 덕업일치
생각해보면 하워드는 덕업일치의 전형이다. 도박을 좋아한다. 직업은 보석상이다. 보석을 팔 때 고객과 금액적인 부분에 대해 흥정을 해야 한다. 말이 흥정이지 실상은 도박이다. 주인공의 직업이 곧 도박인 것이다. 그리고 영화 상에서 그의 수완은 매우 뛰어난 것으로 나온다. 이렇게 보면 그가 사채업자에게 총까지 맞게 되는 것은, 그가 너무 도박을, 아니 덕업일치를 너무나 잘했기 때문이다. 만약 그가 도박 말고 예술에 중독되었다면, 예술가로서 좋은 작품을 남기지 않았을까?
다시 두 번째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내가 좋아하고 잘하는 일을 할 때, 죄의식을 느낀다면 나는 그것을 하지 말아야 하나?’ 영화의 마지막, 주인공이 사채업자 아르노 패거리를 가둬놓고 함께 농구 경기를 보는 장면. 여기서 주인공은 내 눈에 정말로 행복해 보였다. 그가 원하던 방식을 통해 원하던 도박을 했고 아주 크게 이겼다. 물론 도박 중독을 긍정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중독이 주는 이 '몰입성'에 대해서는 긍정하고 싶다.
세상 모든 사람들은 정도에 차이만 있을 뿐, 다 무엇인가에 중독되어 있다. 거꾸로 말하자면 '인간은 어떤 것에라도 중독되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이다. 영화 상에서는 좋아하는 도박 때문에 주인공이 폭력을 당하기도 하고, 총을 맞기도 하고 부정적으로 표현됐다. 하지만 나는 그래도 하고 싶은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9. 확실한 행복
내가 좋아하고 잘하는 일을 죄의식이 든다는 이유로 포기한다는 것은 손해가 너무 크다. 좋아했던 일이 시간이 지나면 다른 일로 바뀔 수도 있다. 그리고 이 일을 할 때마다 죄의식을 갖게 만들던 사회의 시선도, 시간이 지나면 자기가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내게 죄의식을 일으키던 바로 그 일을 모든 사람에게 권유하고 있을 수도 있다. 이렇게 내일 무슨 일이 생길지 알 수 없는, 우연으로 가득한 인생에서. 불확실한 것들에 신경 쓰는 것은 시간낭비라고 생각된다.
확실한 것을 믿는 게 이득이다. 어떤 일을 할 때, 진짜로 행복감을 느끼고 좋았다면 그 순간의 감정은 확실한 내 것이다. 그리고 조금 양보해서, 자신이 좋아하는 것은 잘 모를 수 있다. 하지만 잘하는 것은 모르기 어렵다. 이것도 확실하다. 또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 그 일을 하지 않은 걸 후회한들 시간을 되돌릴 순 없다. "인간사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것은 후회"라고 주성치도 얘기하지 않았나. 인간사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후회 vs 타인과 사회로부터 오는 죄의식. 이 둘 중에 고르라면 나는 당연히 불확실한 후자를 택하겠다. 죄의식 느끼면서 하고 싶은 일을 하겠다.
중독과 몰입이야 말로 심오한 놀이인 인생의 의미이자, 인생의 전부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내가 좋아하고 하고 싶은 일 대신, 어쩔 수 없이 해야하는 일이 많아지다 보니 나도 자꾸 까먹는데. 하고 싶지 않은 일보다, 하고 싶은 일을 할 때, 확실히 더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