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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름물고기 Aug 02. 2024

동상의 추억

아, 이런 이.... 알프스 산악인이신가?

2024년 6월 1일 토요일 아침

나는 태양을 따라 베른에서 고르너그라트로 출발했다. 소요시간은 3시간 8분이고, Visp에서 환승 후 체르마트(Zermatt)에서 내려 Zermatt GGB에서 고르너그라트(Gornergrat)로 이동했다.

고르너그라트(독일어: Gornergrat, 고르너 능선, 3,135m)는 스위스 체르마트의 남동쪽 고르너 빙하가 내려다보이는 페나인 알프스의 바위 능선이다. 체르마트에서 유럽에서 가장 높은 노천 철도인 고르너그라트 랙 철도(GGB)로 갈 수 있다. 고르너그라트역(3,090m)과 정상 사이에는 쿨름호텔 (3,120m)이 있다. 1960년대 후반에 고르너그라트 쿨름 호텔의 두 개의 타워에 두 개의 천문대가 설치되었다. 프로젝트 “스텔라리움 고르너그라트”는 고르너그라트 남쪽 천문대에서 주최하고 있다. <출처;위키백과>
bern-visp-zermatt, zermatt ggb-gormergrat
아름답고 청정하며 아기자기한 멋이 느껴지는 거리
파란 하늘, 빨간 깃발, 기차와 여행객
쾌적하고 깔끔한 스위스 산악열차
시선집중
구름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다
구름위를 걷다
만년설로 뒤덮인 하얀 산, 파란 하늘, 거대한 구름

나는 고르너그라트 전망대에 올라갔다.

쿠폰으로 공짜 신라면을 삶은 계란까지 곁들여 야무지게 먹었다.

알프스의 만년설에 감동하며 마테호른을 앞에 두고 구름이 걷히기를 기다리며 레스토랑에서 담요를 덮고 따뜻한 커피를 마셨다.

마터호른 산(Matterhorn)
마터호른산 혹은 마테호른산, 몬테체르비노산, 몽세르뱅산은 알프스산맥에 있는 산이다. 스위스의 체르마트 마을 남쪽 10km, 스위스와 이탈리아의 국경에 놓여 있다. 산은 네 방향의 경사면으로 이루어져 있다. 남벽과 북벽이 만나 짧은 동서 방향의 능선을 이루고 있다. <위키백과>
높이: 4,478m
융기: 1,040m

나는 고르너그라트에서 한정거장을 타고 마테호른 반영이 아름다운 리펠제를 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로텐보덴역에서 내렸다. 역에 내리자 사람들이 저마다 사진을 찍었고, 나는 한국인 모녀의 부탁으로 사진을 찍어주고, 트래킹을 하지 않을 거냐고 물었다. 그들은 눈이 녹지 않아서 사진만 찍고 갈 거라고 했다. 그때 나도 그들처럼 사진만 찍고 기차를 탔어야 했다.

3대가 덕을 쌓아야 온전한 마테호른을 볼 수 있다는 말이 있는데, 산이 높아 구름이 걸리면 걷히는데 시간이 걸리고, 변화무쌍하기에 실시간 웹캠을 보고 이동하는게 좋다.
#리펠제(Riffelsee) 트레킹
고르너그라트(3083m)~ 로텐보덴(Rotenboden, 2815m) ~ 리펠제~ 리펠베르그(Riffelberg, 2585m)

나는 이따금 엉뚱하고, 도전적이며, 낙천적이다.

그 눈길엔 사람들의 발자국이 있었으며, 들어가지 말라는 표식이 없었다. 나는 아무 장비도 없이 눈길을 걸었다. 내가 따라간 발자국은 오늘의 것이 아니었고, 걸어도 걸어도 세상은 하얗고 사람은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오롯이 나와 산만이 존재할 뿐이었다. 되돌아가기엔 멀리 와버렸고, 리펠제 호수는 보이지 않았다. ‘아! 아름답다. 길을 잃었어도, 아무도 없어도... 이 만년설에 뒤덮인 설원을 걷고 있는 이 순간의 나는 행복하다, 멋지다.‘ 이런 생각이 들었다.

여기가 어딘지 구글맵을 열어도 가늠이 되지 않았다. 나는 높은 곳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흰 눈에 반사된 강렬한 햇빛이 선글라스를 뚫고 내 눈을 긁는다. 무방비 상태의 내 신발과 양말과 바짓단은 쌓인 눈에 차갑게 젖어갔다.

조난중인데
그 와중에도 왜 이렇게 풍경은 멋진지...
가도가도 끝이 안보이네

가장 높은 곳으로 올라가 내려다보니 멀리 역사가 보이고 철로가 보였다. 나는 너무 반가워 걸음에 박차를 가했다. 조금만 더 가면 되는 거야~ 기쁜 마음에 성큼성큼 리듬을 타며 걷는데 갑자기 오른쪽 무릎이 눈밭에 푹! 빠져버렸다. 순간 나는 고민했다.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야 하나, 구조요청을 해야 하나... "Help me!! Help me!!" 개미만큼 작게 보이는 사람들은 나의 외침을 듣지 못한다. 아, 이런 이....

다음역 발견! 살아서 도착쓰

가지고 있던 셀카봉으로 눈을 파헤쳤다. 삼각대 다리 두 개가 부러지고 나는 맨 손으로 눈을 파기 시작했다. 몇 분이 흘렀을까... 가까스로 다리를 빼낸 기쁨도 잠시, 신발이 눈 속에 박혀있구나! 아, 이런 신발... 아무리 빼내려고 잡아당겨도 꼼짝을 하지 않는다. 눈길을 맨발로 걸어갈 수도 없기에 나는 또 눈을 파내기 시작했다. 눈 속에 똬리를 틀고 박혀 있던 신발이 빠지는 순간 나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나의 열손가락은 감각이 없다. 이것은 누구의 손인가. 나는 얼음같은 신발 한 짝을 고쳐 신고 리펠베르그역으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언다리가 속도를 제대로 내지는 못하였으나 정차해 있던 산악열차를 잡아탔다. 의자에 앉아 젖은 양말을 벗었다. 체르마트에 도착해서 아웃도어 상점에 들어갔다. 양말 한 켤레에 3만 원... 나는 뒤돌아서 나왔다. 그리고 coop에 들어가 빵을 사고 과일을 담는 비닐 두 장을 떼어왔다. 집으로 가는 기차에 올라타고 나는 그 비닐 두 장을 양말 삼아 신었다. 젖은 신발에 언 발을 그냥 넣고 있을 수 없어 따뜻한 기차의 온기를 빌렸다. 집에서 기다리고 있을 친구에게 사진을 보냈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라고 썼다.

베른행 기차의 온기를 빌리다

이리하여 나는 난생처음 만년설을 나 홀로 원 없이 한 시간 반동안 밟아보았으며 전문산악인이 걸린다던 동상에 걸렸다. 베른에 있는 약국에 두 번 가서 연고를 받아 바르고, 루체른 호텔에 간 김에 인근 병원에 다녀왔다. 동상의 후유증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나의 무모함의 결과는 고스란히 나의 몫이다. 인생은 그런 거다. 공짜는 없다. 내가 인생에서 잊지 못할 멋진 추억을 얻은 대신 나이테 같은 상처를 얻었다.

여행 내내 나는 손의 자유를 잃었다. 양손가락이 부었으며 손이 욱신거리기도 했다. 손톱이 얼었으며 변색이 되었다. 매일 연고를 바르고 장갑을 끼고 다녀야 했고 매일 저녁 씻을 때마다 비닐장갑을 끼고 노란 고무줄로 물이 새어 들어오지 못하게 여몄다. 손가락과 손톱이 아파 머리를 감지 못한 날도 있었다. 나는 연고를 발라 끈적한 손으로 혹은 장갑을 낀 채로 글을 쓸 수 없었다.

날이 갈수록 심각해지는 손의 변화 때문에 여행 후반기에는 이러다가 그림을 못 그리게 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들었다.(누가 보면 화가인 줄 알겠어! 저는 취미로 민화를 그리고 있어용) 여행이 즐겁지 않았고 한번 꽂힌 불안은 출구가 필요했다. 스위스의 비싼 진료비와 긴 대기시간을 감수해서라도 의사의 ‘괜찮아, 문제없어.’라는 한마디를 들어야 했다. 병원방문기는 따로 써도 될 것 같다. 6월 20일, 루체른의 젊은 여의사는 고르너그라트에 갔다가 동상에 걸렸다는 내게 “exciting!"이라고 외쳤다.

동상(frostbite, 凍傷)
심한 추위에 노출된 후 피부조직이 얼어버려서 국소적으로 혈액공급이 없어진 상태
진료과 응급의학과, 피부과
관련 신체기관 피부
관련 질병 저체온증
정의
영하 2~10 정도의 심한 추위에 노출되면 피부의 연조직이 얼어버리고 그 부위에 혈액공급이 없어지게 된다. 이러한 상태를 동상이라고 한다. 귀, 코, 뺨, 손가락, 발가락 등이 자주 발생하는 부위이다.
원인
피부가 영하 2~10 정도의 심한 추위에 직접적으로 노출되는 것이 원인이다.
증상
얼어버린 부위는 창백하고 부드러우며 광택이 있을 수 있다. 통증 등의 자각증상은 없으나 일단 따뜻하게 해 주면 조직손상의 정도에 따라 증상과 피부병변이 나타난다. 손상받는 정도는 노출된 추위의 온도와 얼어 있던 시간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다. 피부가 붉어지고 통증이나 저림 등의 불쾌감이 생길 수 있지만 손상 정도가 심하지 않다면 수 시간 내 정상으로 회복된다. 심한 경우에는 조직이 죽으면서 물집이 발생할 수 있다. <출처;서울대학교병원 의학정보>

(나는 뉴스에 났을 수도 있었다. 스위스 한인 신문이랄지... 비산악인이 알프스산에 묻히다... 뭐 이런?)

혹시 알프스산에 오르시려거든 겨울옷을 챙기시라, 장갑도 챙기고 두툼한 양말도 신으시라, 방수되는 신발을 신으시라. 스카프나 목도리도 챙기시라.

6월 1일에도 눈이 녹지 않으니 웬만하면 보기만 하고 트래킹은 하지 마시라.-동상인으로서 한 말씀드립니다.


내가 보고 싶었던 건 그냥 리펠제! 였다구요...

(다음에 스위스에 가면 꼭 가봐야지!)

출처:구글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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