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교의 무대에서 내려오는 연습

파도가 너무 거세면, 굳이 배를 띄우지 않는다

by 이말리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너무 컸던 시절이 있었다. 그 마음은 곧 비교로 이어졌고, 나보다 잘하는 사람을 보면 잠을 못 잘 만큼 괴로웠다. 시골에서는 어느 정도 통했지만, 고등학교를 가고 대학교를 가니 벽을 만났다. 천재를 만나고 나서야 알았다. 이건 노력만으로 단번에 넘어설 수 있는 종류의 싸움이 아니었다. 살리에르의 고통이 어떤 건지, 그때 이해했다.


그런데 내가 택한 길은 ‘이겨먹기’가 아니었다. 모짜르트를 미워하는 대신, 가까이에서 보고 배우고 닮아가기로 했다. 이상하게도 그때부터 마음이 덜 흔들렸다. 감정은 억지로 눌러 없애려 하면 더 커진다. 저항하면 증폭된다. 그래서 나는 질투를 없애는 대신, 인정하고 바라보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하지만 문제는 늘 같은 지점에서 터졌다. 자존감이 바닥으로 꺼져 있거나 자격지심이 유독 크게 올라오는 날에는, “내가 지금 질투하고 있구나”라는 자각 자체가 잘 되지 않았다. 이미 감정 속에 잠겨 있는데, 생각으로 빠져나오는 건 쉽지 않았다.


그때 필요한 건 논리가 아니라, 감정과 나 사이에 거리를 만드는 작은 기술이었다. 나는 그걸 ‘무대에서 내려오는 연습’이라고 부른다.


비교는 순식간에 조명을 켠다. 누가 더 빛나는지, 누가 더 박수를 받는지, 나는 어디쯤인지. 그 조명 아래에 오래 서 있을수록 마음은 더 뜨거워지고, 결국 나는 나를 심문하기 시작한다. 왜 나는 저만큼 못하지. 내가 가진 건 뭐지. 그러다 보면 감정은 사실이 되어버린다.


그래서 나는 먼저 내려온다. 비교가 시작되는 자리에서 한 발 물러서는 것. 내 의지가 약해서가 아니라, 내 마음을 지키기 위해서다. 비록 그 뒷모습이 도망치는 것일지라도 상관없다. 파도가 너무 거세면, 굳이 배를 띄우지 않아도 된다. 풍랑 속에 나가서 방향을 잡으려 하면, 애초에 똑바로 서 있기도 힘들다. 그럴 땐 출항을 미루는 게 가장 현실적인 선택이다.


나에게 그 ‘출항을 미루는 행동’은 대체로 아주 작다. SNS를 닫는다. 비교를 부추기는 계정을 끊는다. 누군가의 성취가 자꾸 내 얼굴을 들이받는 날엔, 아예 화면을 뒤집어 엎는다. 세상과 연결을 끊는 게 아니라, 잠깐 항구로 돌아오는 것이다. 항구에 들어온 배는 패배한 게 아니다. 다음 항해를 위해 수리를 하는 중이다.


무대에서 내려온 다음, 나는 마음속으로 내가 한 행동을 가만히 되뇌여본다.


“비교하다 내려왔어, 이제 괜찮아질거야. ”


이 문장이 감정을 즉시 없애주진 않는다. 하지만 감정에 이름을 붙이는 순간부터, 나는 감정 ‘안’에만 있는 사람이 아니라 감정을 ‘바라볼’ 자리도 함께 가진 사람이 된다. 아주 잠깐이라도 내면에 관찰자가 생기면, 끌려가는 속도가 느려진다.


여기서 예전의 나는 곧장 해결로 뛰어들었다. “왜 나는 못하지?” “어떻게든 이겨내야 해.” 그런데 질투는 생각을 먹고 자란다. 질문을 붙잡는 순간, 뇌는 증거를 찾기 시작하고 감정은 더 단단해진다. 그래서 나는 생각을 해결하려고 애쓰는 대신, 생각이 올라오는 걸 알아차리는 쪽을 택했다.


‘아, 또 그 생각을 하고 있네.’


여기서 멈춘다. 결론을 내지 않는다. 반박도 하지 않는다. 그냥 지나가게 둔다. 파도가 치는 바다에서 조타를 억지로 꺾는 대신, 잠깐 닻을 내리는 느낌으로. 닻은 파도를 없애지 못하지만, 떠밀려 가는 속도를 늦춰준다.


그게 오늘 내게는 충분하다.


그리고 그 다음은 몸을 쓴다. 좋아하는 일이면 더 좋다. 나는 주로 나무 가지치기를 하거나 풀을 뽑는다. 설거지, 손빨래, 옷장 정리처럼 손이 바빠지는 일을 하는 것도 권한다. 요란한 다짐이 아니라, 단순한 동작으로 나를 다시 현재로 데려오는 것이다. 어느새 불타오르던 질투의 마음은 온데간데 없이 식어버리고, 대신 거울 앞에서 옷장에서 꺼낸 옷들을 입어보느라 바쁠지도.


그럼에도 자각도 안 되고, 생각을 놓는 것도 안 될 만큼 감정에 잠식될 때가 있다. 그럴 땐 마음을 설득하려 하지 말고, 몸부터 풀어야 한다.


코로 3, 4초 들이마시고, '하—' 하고 6, 8초로 두 배 길게 내쉰다. 내쉰 뒤에는 1초만 가만히. 이걸 다섯 번 정도 반복한다. 되도록 가슴이 아니라 배 쪽이 조금 더 편안해지는 느낌이면 충분하다. 잡생각이 들어도 실패가 아니다. 잠깐 숨이 새거나 흐트러져도, 다시 ‘내쉬기’로 돌아오면 된다. 핵심은 깊게가 아니라 천천히, 특히 내쉬기에 있다. 하다보면 어깨와 가슴이 내려앉고 몸이 이완되는 것을 느낄수 있다.


결국 목표는 질투를 없애는 게 아니다. 휘둘리지 않는 것이다.

무대에서 내려와 숨을 고르고, 감정에 이름을 붙이고, 생각에 에너지를 주지 않는 것. 그리고 다시, 경쟁이 아니라 성장을 택하는 것. 모짜르트를 미워하지 않고 가까이에서 배우는 쪽으로.


그 순간 질투는 적이 아니라 신호가 된다. 내가 무엇을 갈망하는지, 어디로 가고 싶은지 알려주는 신호. 질투와 결핍조차, 다루기만 하면 힘이 된다.


오늘도 비슷한 마음이 올라온다면, 우리 이렇게 해보자. 파도가 잦아들 때까지는 굳이 배를 띄우지 말기. 항구로 돌아와 숨부터 고르기. 그리고 다시 나갈 때는, 남의 항로가 아니라 내 방향으로.








아무리 기다려도 파도가 잦아들지 않는 날이 있습니다. 그런 날엔 마음이 자꾸 바깥으로 나가서, 남의 속도와 남의 박수와 남의 항로를 헤아리게 됩니다. 예전의 저는 그때마다 출항을 강행했었습니다. 더 세게 노를 젓고, 더 빨리 따라잡고, 더 완벽해지면 이 불안이 사라질 거라고 믿었어요. 하지만 바다는 내 의지와 상관없이 거칠었고, 나는 자주 온몸이 젖은 채로 만신창이가 되어 돌아왔습니다.


어떤 날은 나가서 이기는 것보다, 들어와서 살리는 게 먼저라는 생각이 듭니다. 항구에 머무는 선택은 포기가 아니라 회복이기 때문입니다. 마음이 무너지는 날까지 버티는 건 용기가 아니라, 때로는 무모함에 가깝다는 것을 몸이 상하고 나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비교의 무대에서 내려오는 연습을 계속합니다. 내려와서 숨을 고르고, 스스로에게 다정한 말을 건네고, 오늘의 파도를 인정합니다. “지금 나로도 충분해.” 이 문장은 저라는 사람을 대단하게 만들진 않지만, 나를 버리지 않게 해줍니다. 그게 지금 제게는 가장 중요한 능력입니다.


파도는 늘 밀려옵니다. 다만 매번 배를 띄울 필요는 없습니다. 잔잔해질 때까지 기다릴 줄 알면, 더 멀리 갈 수도 있습니다. 제가 가고자 하는 항해는 남을 이기기 위한 항해가 아니라, 나를 잃지 않기 위한 항해니까.


오늘도 어떤 비교의 무대위에서 뜨거운 조명아래에서 달궈지고 있다면, 저는 애써 그 자리를 도망쳐 커튼 뒤로 물러날 것입니다. 그리고 언제든 다시 돌아올 것이다. 더 조용한 마음으로, 더 내 편인 얼굴로.
그렇게 천천히, 저는 저를 믿는 쪽으로 갈겁니다.


오늘은 증명하는 날이 아니라, 지키는 날을 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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