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유휴 공간을 예술 공간으로
커버 이미지: 조동균_Absence of Lines 21-1(f100). 162x130.3cm. mixed media 2021
반복은 차이를 만든다.
이를 통해서 차이는 다름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있음을 알 수 있다.
-작업 노트에서
유휴공간을 이용한 공동작업장
유휴공간을 지역 미술가의 공동 작업실로 활용하는 방안은 많은 미술가들에 의해서 제안되는 정책이지만, 현실에서는 여러 이유로 시행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도시의 유휴공간에 대한 문제의식에 일찍부터 눈떴던 유럽의 미술가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도시의 유휴공간을 예술 공간으로 활용하는 운동을 시도하였으며, 때로는 강제 점거라는 과격한 방식의 접근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프랑스 파리의 공동 작업실 ‘59 리볼리(59 Rivoli)’는 파리 한복판을 가로지르는 번화한 리볼리 가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파리시가 8년간 방치하고 있던 이 건물을 3명의 미술가가 무단으로 점거해서 작업을 시작하고, 며칠 뒤에 다시 10명의 미술가가 합류하여 관객을 맞으면서, 이후 파리의 문화명소로 거듭나게 됩니다. 법원에서 퇴거 명령을 내리기도 했지만, 참여한 미술가들 간에 큰 잡음 없이 많은 관객의 호응을 불러일으키는 긍정적인 효과를 지켜본 파리시 당국은 입주 예술가들과 협약을 체결하여 건물에 예술가들이 합법적으로 머물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게 됩니다. 지금은 30여 명의 예술가들이 이곳에서 작업을 하고, 토요일이나 일요일에는 콘서트가 열리기도 합니다. 1층 갤러리에서 입주하고 있는 미술가들뿐만 아니라 외부 미술가들까지 참여하는 단체전이 일 년 내내 전시됩니다. 1919년 ‘59 리볼리’는 연간 8만여 명의 관객이 찾는 파리 현대미술의 중요한 거점이 됩니다.
주변을 둘러보면, 여러 이유로 오랜 기간 동안 도시의 흉물로 남아 있는 유휴공간을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왜 이런 좋은 공간이 빈 채로 방치되고 있는지 의문을 품는 경우가 많습니다. 한국도 본격적인 인구감소 국가로 접어들면서 빈집과 기타 건축물 등 유휴공간이 급격히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5년마다 발표되는 통계청의 전국 빈집 수 조사 자료에 따르면 2010년에서 2015년 사이에 전국의 빈집 개수는 26% 증가하였습니다. 이러한 유휴공간의 증가는 도시를 슬럼화하고, 유휴공간이 범죄에 이용되기도 하며, 근처에 거주하는 시민들의 삶을 불안정하게 만듭니다.
이러한 유휴공간을 문화적 재생을 통해서 미술가들의 창작공간이나 문화 커뮤니티 시설로 사용하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고민해야 합니다.
부산시 금정구 금사공단에는 유휴 공단 부지를 활용하여 재개발된 ‘예술지구 P’가 있습니다. 이곳은 예술 공단 개념으로 지역을 기반으로 한 예술문화 창작활동을 지원하고, 전시, 공연, 레지던시 및 교육프로그램을 운영합니다.
(서양화가 / 조동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