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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동균 Jun 27. 2024

내 그림으로 세금을 낼 수 있을까

상속세를 미술품으로 낼 수 있는 제도

커버 이미지: 조동균_Whispering Lines 22-6(f100). 162x130.3cm. mixed media 2022


선線은 경계를 상징한다.

‘있음’과 ‘없음’의 경계.

‘안’과 ‘밖’의 경계

이런 점에서 선線은 성스러울 수밖에 없다.

-작업 노트에서




미술품 물납제     

문화강국이라 불리는 영국, 프랑스 등의 국가에서는 ‘미술품 물납제’가 일반화되어 있습니다. 1896년 처음 ‘미술품 물납제’를 시행한 영국에서는 미술품과 문화재뿐만 아니라 책, 과학발명품 등 국가적으로 보존 가치가 있다고 판단되는 다양한 물품을 그 대상으로 하고 있습니다.

특히 프랑스 국립 피카소미술관은 ‘미술품 물납제’가 적용된 대표적 사례라 할 수 있습니다. 피카소가 사망 후 유족은 상속세 대신 미술품 200여 점을 정부에 납부했고, 이를 바탕으로 국립 피카소미술관을 설립할 수 있었습니다.

 

프랑스가 ‘미술품 물납제’를 도입하게 된 계기는 피카소의 미술품이 해외로 반출되는 것을 막기 위한 방편이었습니다. 1966년 당시 프랑스 문화상이었던 앙드레 말로(André Malraux)는 그랑팔레에서 열린 피카소 회고전을 관람하게 됩니다. 당시 피카소의 나이는 85세였는데 피카소 사후에 이 작품들이 해외로 흩어지는 것을 걱정한 그는 이를 해결할 방법을 고민하게 됩니다. 이에 ‘미술품 물납제’를 도입하는 법안을 제출하고, 이는 성공적인 정책이 됩니다. 

     

‘미술품 물납제’란 상속세 등 세금을 미술품으로 낼 수 있게 하는 제도입니다. 

기존에 우리나라는 유가증권과 부동산만을 물납 대상으로 인정하고 있었습니다. 지난 10여 년간 미술계의 숙원사업처럼 여겨졌던 ‘미술품 물납제’는 2021년 기획재정위원회가 ‘상속세 및 증여세법 개정안’을 공포하면서 현실화하였습니다. 해당 법은 73조 2항을 신설해 상속세를 문화재나 미술품으로 대신 낼 수 있는 물납 특례를 마련했습니다.

이 법은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서 2023년 상속세 개시 분부터 적용이 가능하게 되었는데, 이를 제도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해서 물납 미술품을 평가 심의할 ‘물납 심의위원회’를 신설하고 ‘문화재위원회’급의 권위와 전문성을 갖춘 기구로 운영할 예정이라고 문체부는 밝히고 있습니다.

물납절차는 납세의무자가 관할 세무서에 상속세 물납 의사를 밝히면 해당 세무서는 문체부에 물납을 신청합니다. 이후 ‘물납 심의위원회’가 해당 미술품에 대한 역사적, 학술적, 예술적 가치가 있다고 인정하면 문체부 장관의 재가를 거쳐 관할세무서로 인계하여 최종적으로 결정하도록 합니다. 


‘미술품 물납제’는 미술품 상속에 의해서 발생하는 세액에만 미술품으로 대납이 가능합니다. 그리고 상속세 납부세액이 2,000만 원 이상이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요청하는 경우에만 절차가 진행됩니다. 2023년 1월 1일 상속 개시 분부터 법이 적용되기 때문에 지난해 ‘이건희 컬렉션’을 상속받는 삼성가는 이 제도의 대상이 되지 못했습니다.

      

아직 ‘미술품 물납제’의 시작 단계이다 보니 제도가 가지고 있는 가능성과 문제점에 대한 사례들이 정리되지 않은 상태입니다. 일반적으로 미술계에서는 이 제도의 도입에 대하여 찬성하는 분위기입니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갤러리나 사립 미술관, 박물관이 설립자에서 2세대로 대물림되는 상황에 놓여 있습니다. 이런 경우에 소유하고 있는 미술품에 대한 상속이 문제가 될 수 있는데, ‘미술품 물납제’는 적절한 대안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2020년 5월 간송미술관이 재정난 속에서 상속세를 납부하기 위하여 금동여래입상(보물 제284호)과 금동보살입상(보물 제285호)을 경매에 내놓아서 화제가 되었습니다. 국가적 보물이 경매 물품으로 나왔고, 그 이유가 상속세를 해결하기 위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미술품 물납제’가 사회적 화두로 떠올랐습니다. 


(서양화가 / 조동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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