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친구와 여행

<엄마가 딸에게 보내는 연서 5>

by 세아들TV

<딸에게 보내는 연서 5>

2003년 12월11일

영아 !

동안 잘 지냈니? 저번엔 긴 장문의 편지를 썼었는데 다음 편지판이 바뀌어서 다 지워져 버려 너무 속이 상했었단다. 엄만 오늘 마지막 시험 쳤다. 내년에 다시 다닐지는 모르지만 마무리했다는 편안함이 있구나. 그동안 김장도 했고 조금 바쁘긴 했지만 시험마무리는 그런대로 한 것 같다.

중선이는 오늘이 학교 가는 마지막 날이라더구나 오늘은 삼척관내 문화 탐방을 간대나 보더라.

내일은 원서를 써야 하는데 대전 대학교나 목원대 쪽으로 생각을 굳혔는데 넌 어떻게 생각하니?

3.4군데 일단은 원서를 넣어볼 계획이란다.


다음 주는 알바를 위해서 김포 이모네로 간다는구나.

남자니까 학교 갈 때까지 가서 용돈이나마 벌려고 한다기에 그러라고 했다.

중선이 나가고 나면 엄마가 너무 허전할 것 같은데 글쎄다 중근이가 그 자리를 대신할 수 있으려는지.... 어쨌거나 엄마둥지를 벗어나는 너희들이 대견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서운한 감정은 어쩔 수가 없구나.


영아 그리고 이틀 전 네 남자 친구한테서 편지가 왔더구나.

우리 식구 모두는 당황했단다. 너랑 여행을 하게 되어 편지를 하게 되었다더구나.

아직 네게 자세한 여행 계획을 못 들은 터라 어떤 상황인지는 모르지만 부모의 마음이란

이유 없이 가슴이 철렁 내려앉으며 불안할 때가 있다는 걸 너는 아는지 모르겠구나.


엄마가 네게 거는 기대가 너무 큰 건지는 몰라도 엄마는 아직 내게 가지고 있는 자부심이나 자신 같은걸 너는 깨뜨리지 말았으면 하는 바람이란다. 엄마가 불안해하니까 중선이가 엄마는 누나의 눈높이가 있는데 아무나 사귀겠느냐며 엄마를 위로 하더라만 엄마는 엄마잖니


이젠 너도 성인이니 엄마가 네 인생을 살아 줄수도 없지만 헛똑똑이는 되지 말라는 뜻이다.

영아 이제 방학했으니 전처럼 자주 메일을 보내지 못하겠지만 너는 자주 소식 좀 넣어 놓아라

그리고 네 남자 친구와의 대화는 좀 더 생각해 보고 하고 싶구나 네 감정을 정확히 모르니까.

연락 좀 하구 내일 만나자.

안녕 엄 마 가......




<어학연수 더 할래?>


중국 교환학생 1년이 끝나가고 2월엔 귀국을 해야 했다. 더 남아서 어학연수를 하는 친구들도 있고 한국으로 돌아가는 두 부류로 나뉘었다. 남자친구가 하얼빈에서 어학연수를 해보니 같이 공부하는 커플이 많다했다. 나도 어학연수를 할 생각이 없냐고 물어보았다. 바로 아래 남동생이 대입을 앞두고 있었고, 엄마도 대학생이 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기였다. 그래서 학교를 휴학하고 어학연수를 하고 싶었지만, 부모님께 말씀드리지 못했다.


남자친구는 굉장히 아쉬워했다. 또 떨어져 있어야 하는 게 힘든 것 같았다. 그래서 조심스럽게 제안을 했다. 상하이와 항조우 쑤쪼우에 같이 여행을 가자고 말이다. 마침 학교 선배가 항조우에서 유학을 하고 있었기에 얼굴도 보고 숙소도 언니네 집에서 지내면 되는 상황이었다. 그 선배언니도 언니네 집에 머물라고 했었다. 여름에 친구들과 베이징과 상하이, 항조우, 쑤쪼우에 이미 다녀와서 내 반응은 뜨뜻미지근했다.



<여행 허락 편지>


겨울에 춘절(중국의 구정) 기간과 겹치면 기차표도 구하기 힘들고 고생할 것이 뻔했기 때문에 내키지 않았다.

또 모태솔로로 살다가 처음으로 남자친구를 사귀었는데, 같이 여행을 간다는 건 보수적인 내 연애관에 크게 어긋나는 일이었다.

그런데 남자친구가 계속 설득을 했다. 꼭 같이 여행을 가고 싶다고 말이다. 그럼 생각해 보자고 했는데, 부모님을 안심시켜 드릴 생각으로 한국에 있는 우리 집에 편지를 보낸 모양이었다. 부모님은 크게 걱정하셨다. 중국에 유학 가서 연애하는 사내놈이 같이 여행을 가려고 하니 허락해 달라고 편지를 보냈으니......



<하얼빈 빈등축제>


우선 같이 유학하던 교환학생들과 하얼빈 빙등축제를 보려고 하얼빈으로 갔다. 어학연수용 유학생 숙소에 같이 며칠 있으면서 하얼빈 시내도 구경하고 빙등축제도 구경을 했다. 나는 다른 친구들과 같이 다니는 것이 재미있었다. 그런데 남자친구가 자꾸 따로 불러내서 서점 구경도 하고 시내 구경도 했다. 장거리 연애를 해서 서로 마주 보고 얘기를 하거나 손을 잡아 본 적도 별로 없어서 굉장히 어색했다. 얼음이 너무 미끄러워 넘어질 뻔할 때 손을 잡아주었는데 그 후로 한 참을 손을 잡고 있었던 것 같다.



<상하이, 항주, 소주>

같이 여행하던 친구들을 다 보내고 나는 남자친구와 단둘이 항주에 있는 선배언니네 집으로 출발했다. 항주에 바로 가는 침대칸 기차가 없어서 상하이에 들렀다가 항주로 가는 기차로 갈아탔야 했다. 기차 시간이 맞지 않아 바로 환승을 못하고 하룻밤을 꼬박 기차역에서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나오는 상황이라 나는 끝까지 기차역에서 밤을 새우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남자친구는 난감해하며 걱정 말라고 계속 설득했고 새벽에 너무 춥고 졸려서 침대가 두 개 있는 방을 구해서 잠시 눈을 붙였다. 남자친구에겐 기회였을까 결국 거기서 처음으로 안아보고 뽀뽀를 했다.



<아쉬운 발걸음>

항주에 있는 선배언니와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표도 잘 구해서 연길로 돌아와서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남자친구는 같이 어학연수를 더 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여전히 남아 있는 듯했다. 며칠이라도 더 같이 있고 싶은 게 느껴졌다. 솔직히 나는 두 마음이었다. 남자친구가 좋기도 했지만, 1년 동안 떠나 있던 한국으로 돌아간다고 생각하니 기대가 되었다. 셀레이고 빨리 부모님과 친구들을 만나고 싶었다. 아무래도 중국보다는 한국의 환경이 훨씬 좋기 때문이기도 했다.


여행할 동안 엄마의 편지 덕분에 계속 조심했다. 남자친구도 엄마에게 따로 답장을 받은 듯했다. 엄마의 편지 덕분에 남자친구와 선을 넘지 않고 건전하게 관광을 학고 무사하게 여행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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