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살의 모험

단 하나의 상처

by Hanna park

‘신밧드의 모험’은 아빠가 어린 나와 내 동생이 잠들기 전에 매일밤 들려주었던 엉뚱하고도 이상한 신비한 이야기였다. 원래 신밧드의 모험은 아라비안 나이트 중에 나오는 어떤 연작의 이야기로 신밧드라는 사람이 여러가지 모험을 하면서 신비한 섬으로 찾아가는 이야기라고 한다. 특별한 작가도 없이 구전으로 내려오는 설화라고 하는데 이런 성격과 어울리게 우리 아빠는 매일 밤 신밧드를 이상한 장소와 말도 안되는 상황으로 데려가 모험을 겪게 하는 이야기를 만들어서는 우리에게 굉장히 재미있게 들려주었다. 나와 내동생은 매일 밤 아빠의 팔 배게를 하고는 눈을 똥그랗게 뜨고 재미있게 듣다가 자연스럽게 신밧드가 있는 꿈나라로 가곤 했다. 굉장히 신비하고 엉뚱하지만 완성도가 높은 아빠의 신밧드의 모험 이야기를 들었던 날에는 나는 어김없이 꿈에서 신밧드와 함께 이상한 나라를 여행했다.

이런 나는, 유치원 다니던 6살 무렵이였던 것 같다. 정말로 신비한 여행(?)을 했다.

어느 선선한 가을, 앙상한 나무의 갈색 낙엽이 생각나니까… 가을이 맞다. 그날은 부모님과 시간과 동선이 굉장히 엊갈렸던 어느 일요일이였다. 보통 나는 일요일 아침에 교회 9시 주일학교를 아빠와 가야했고, 성가대였던 엄마는 우리보다 조금 늦게 교회에 나섰다. 나는 유치부라 늘 일찍 끝나므로 소년부, 5-6학년 아이들 반 선생님이였던 아빠를 기다렸다가 같이 집에 가야하는데, 그날따라 나는 마음 맞는 친구가 생겼던 것 같다. 그 친구와 교회 버스를 타고 집으로 아빠없이 혼자 가기로 했던 거다. 어렸지만, 나는 그때도 똑똑한, 혹은 똑똑한 척하는 또래보다 일찍 유치원에 다니는 6살 아이여서, 어떤 교회 버스를 타야하고 어디에서 내려야 집에 갈 수 있는지를 너무 잘 알고있었다. 그리고 친구랑 같이 집으로 도착했는데 엄마는 그날따라 조금 더 일찍 교회를 갔고, 그 덕에 당연히 집 문은 잠겨 있었다. 한참을 그 친구와 집 마당에서 놀다가 – 재미있는 건, 그날 친구랑 놀다가 ‘스카이 콩콩’타는 법을 터득하게 되었다.- 조금 힘들어지기도 하고 아빠가 찾을 것도 같고 해서 교회로 다시 가려고 교회 버스를 탔다. 그리고 교회에 도착하니 아직 어른 예배는 끝나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엄마, 아빠를 기다리지 않고, 또 다시 친구랑 이번에는 교회 버스가 아니라 걸어서 집으로 가기로 결심했다. 딴에는 버스를 많이 타고 다녀서 대충의 가는 길을 아는 것 같았으니 도전해 보기로 했다. 꼭 아빠가 어릴적 매일 해주던 이야기 속 주인공 신밧드가 된 것 처럼 말이다. 쌀쌀한 바람부는 제주도의 가을 오후를 한참을 걸어서 집으로 갔다. 가는 길은 당연히 나에게는 엄청나게 재미있는 놀이터였다. 다리 위에서 난간을 타며 놀기도 하고, 잠시 친구 집에도 들리고,낙엽을 줍기도 하고, 달리기도 하며 굉장히 즐겁고 신나게 하루의 모험을 즐겼다. 그러다 결국 해질녘이 되어 버렸고, 기온은 조금 더 쌀쌀해 지고, 엄마한테 혼날 것 같기도 하고 해서, 부랴부랴 걸어서 무사히 집에 도착했다. 도착하니 5시-6시 이미 어둑해진 쌀쌀한 가을 저녁이 되었다. 어린 나의 머릿속에도 여섯 살 어린이가 아침 일찍 외출해서 저녁때 들어갔으니 크게 혼날 것을 직감했다. 그리고 도착해서 아무 일도 없었던 듯이 눈치를 보며 “엄마, 나왔어.” 하는데 엄마가 아무렇지도 않게, 전혀 이상하지도 않고 궁금하지도 않은 듯이 “응, 왔니?” 하고 대답한다. 그리고 어떤 것도 묻지 않고, 나도역시 혼날 까봐 더는 말하지 않고, 평상시와 똑같이 저녁을 먹었다.

그날은 그냥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지나갔다. 그런데 그날 이후 나는 아무것도 묻지 않고 혼내지 않는 엄마가 너무 이상했다. 그리고 그 날의 엄마의 반응이 스물 네살 그 이야기를 다시 꺼내기 전까지 내 마음 한 켠에 상처로 자리잡고 있었다. 그 때부터 나는 내내 “ 왜 엄마가 나를 찾지 않았을까? 나한테 관심이 없었던 걸까? 엄마는 내가 없어도 되나? 날 사랑하지 않는걸까?” 이런 생각들로 가끔 6살때의 모험이 떠올려 질 때 늘 상처처럼 마음속에 답답함이 있었다. 내가 그 일을 다시 물었을 때 엄마가 전혀 기억하지 못할 까봐, 엄마에게는 어린 아이의 늦은 귀가가, 일시적인 사라짐이 혹시라고 아무것도 아닌 것일까봐 두려워서 나는 다시 용기내서 묻지 못했다. 나는 너무나 좋은 부모님과 가정에서 사랑을 많이 받고 부족함 없이 자란 사람인데딱 한가지 내 마음의 상처는 6살의 모험이였다. 그러던 중 스물 네살 어느 날 우연히 그날의 모험을 엄마한테 말한 적이 있고, 그 때 비로소 엄마가 “그래, 너 그때 어디 갔다 왔었니? 엄마가 엄청 걱정 했었어. 경찰서에 연락 하려고 하는데 니가 들어왔어.” 하는 거다. 그 순간, 나의 마음 안에 돌덩이 같이 무겁고 딱딱하던 무언가가 탁 하고 내려오며풀리는 것 같더니, 나의 늘 긴장했던 마음이 확 풀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엄마가 날 찾았었어! 날 걱정 했었어!” 이런 마음이 들면서,나의 20년간 품었던 혹독했던 의심이 한순간 훅~ 하고 날아가 버렸다. 왜 망설이고 묻지 않고, 20년 동안이나 그런 응어리를 간직하고 살았을까? 참 미련하다는 생각도 했지만, 한 편으로는 내가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는 것은 어쩌면 ‘나의 배려’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엄마가 그때, 나의 6살 모험의 날, 나를 혼내지 않았던 것은 너무나 다행이여서 였다고 했다. 엄마는 너무 걱정해서 무사히 모험에서 돌아온 나를 혼도 못내고, 그저 기쁨의 최선의 표현 방법은 그냥 일상처럼 나를 맞아주는 거였던 거다. 엄마의 마음이 지금은 너무나 이해 된다. 그런데 어쩌면 상대에 따라서는 어느정도 마음을 표현해 준다면, 조금 덜 상처주는 것일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엄마가 엄마의 걱정을 그 때 나에게 표현 했더라면…….나는 어땠을까? 엄마가 걱정했었다는 것을 알고 나 이후로 나는 내 마음을 표현 하는 사람이 되려고 노력했다. 걱정을 하면, 걱정한다고, 보고싶으면 보고 싶다고 표현 하는 것이 상대를더 배려 하는 것일 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다. 그게 비록 지나치다고 생각될 지라도말이다. 물론 답은 없다. 그런데 가끔은 표현하지 않는 배려가 상대에게는 “사랑받고 있지 않다” 고 느껴질 수 있다. 나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