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사가 김윤식
나는 그를 '한국문학의 대통령'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고 지금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그는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저서를 남겼다.단독 저서 151권, 공저 13권, 편저 28권, 번역서 6권 등 200여권에 육박한다. 세계적으로 이런 예가 없다. 물론 저서의 질도 우수하다. 한국 근현대문학에 대한 논문을 쓰면서 그의 저서를 한 줄이라도 인용하지 않는 자 있으면 나와보라. 없다. 그는 60년 평생 읽고, 쓰고, 가르치기만 했다. 쉼 없이 매일 200자 원고지 20장을 썼다고 한다. 문학사가(생전 본인은 이렇게 불려지기를 원했다) 김윤식. 오늘,그의 7주기다. 향년 82세.
시간이란 놈은 정말 피도 눈물도 없다. 거침이 없다. 천하무적이다. 모두를 무너뜨린다. 한국문학의 거두도 시간 앞에선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 역시 죽음을 피해 갈 수 없었다. 이제 많은 이들의 기억 속에서 그 이름 석자는 사라졌을 것이고, 그의 저서는 서재 어느 구석에서 분명,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을 것이다.
내 방 책꽂이 맨 위 구석에 그가 쓴 책들이 늙은 병사처럼 맥없이 움츠리고 있다. 세어보니 대충 스무 권쯤 된다. 그중 한 권을 꺼낸다. '한국근대문예비평사연구'. 일지사에서 출간한 1976년 개정신판 초판이다. '한국근대문학연구의 바이블'이라 불리던 기념비적인 저서다. 굉장한 책이 분명한데 문득, 그가 자신의 일생을 한 줄로 명쾌하게 요약한, 이런 말이 떠오른다.
“책이라는 것은, 아무리 굉장한 책이라도 시쳅니다, 시체. 어떤 죽은 사람이 쓴 시체입니다. 말하자면 서재라는 것은 공동묘지입니다. 거기다가 내가 몸을 빌려줬을 때에 거기에 피가 돌고 그게 살아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나는 결국 평생을 시체지기로 살았습니다.”
내방은 공동묘지다. '한국근대문예비평사연구'라는 시체를 꺼내 이리저리 어루만진다. 사연이 있는 책이어서 뭉클하다. 오늘 하루만이라도 나는 이 시체에 묻어있는 먼지를 깨끗이 털어내며 그를 기억할 생각이다.
내가 살던 동네에 작은 서점이 몇 개 있었다. 여기서 '작다'는 것은 지금같은 대형서점에 비해 그렇다는 것이지 그때만 해도 열댓 평 규모면 왠만한 책은 다 있었다. 그중 한 서점을 주로 다녔다. 주인과 친해졌다. 주인이 급한 일이 생겨 외출하려 할 때면 한 시간 정도는 서점도 봐주는 사이가 됐다. 손님이 뜸한 눈 내리는 겨울엔, 난로에 고구마를 구워 같이 먹기도 했다.
어느 날 주인이 "다음 주에 서점 리모델링을 하려는데 좀 도와줄 수 있겠나"라고 말했다.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싫은척 하며 꾸물거리니까 주인은 "일당은 줌세"라며 웃었다. 나는 "일당을 안 주셔도 되는데 저 위에 있는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는 저 책들 정가에 제게 주신다면... 하하"라고 하자 주인은 흔쾌히 동의했다.
나는 알고 있었다. 책꽂이 꼭대기에서 먼지를 흠뻑 쓰고 있는 책들은 모두 초판들이다. 정가도 출간 당시 가격. 그 서점은 일지사 총판이기도 했다. 나중에 주인이 서점을 접으며 내게 말한 적이 있었다. "남들에게 파는 거보다 자네가 가져가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들었어. 그 책들이 자네 손에 잡힌 게 얼마나 좋았는지 몰라."
거기서 '한국근대문예비평사연구'를 발견했다. 그 외에도 김윤식의 많은 책들이 쏟아져 나왔다. 대충 2500원 전후. 900원으로 기억되는 1971년 초판 이청준의 '별을 보여드립니다'는 너무 낡았다며 그냥 덤으로 주었다. 조지훈 전집 7권이 14000원. 그런 책들이 서점의 서가 맨 꼭대기에서 오랜 시간 주인을 기다리며 시체처럼 누워 있었던 것이다. 나는 그 시체를 거두는 시체지기인 셈이었다.
그때 나는 카프(KAPF 조선프로레타리아예술가동맹)에 푹 빠져 있었다. 그리하여 김윤식이 좋아했던 게오르크 루카치의 '소설의 이론'을 성경처럼 들고 다니며 그 유명한 서문을 주기도문처럼 입에 달고 다니기도 했다.
'별이 빛나는 창공을 보고 갈 수가 있고 또 가야만 하는 길의 지도를 읽을 수 있던 시대는 얼마나 행복했던가. 그리고 별빛이 그 길을 훤히 밝혀주던 시대는 얼마나 행복했던가.'
당시 정치적으로 민감한 KAPF를 김윤식은 깊이 다루었다. 그러니 관심은 임화와 백철이었고, 연구는 이광수와 김동인 염상섭으로 확장하며 큰 족적을 남겼다. 여기서 멈춘 게 아니다. 김윤식의 미덕이라면 엄청난 독서량일 것이다. 그는 문학사가 이면서 문학연구가였지만 문예지에 나오는 거의 모든 작품을 탐독하면서 정기적으로 비평을 남겼다. 문학평론가로서도 탁월했다. 김현이 떠나고 그 역시 사라지면서 한국문학은 지금 이 지경이 됐다. 그게 아쉬운 것이다.
2001년 정년퇴임을 맞은 김윤식은 9월 11일 동료교수 제자 가족들을 상대로 고별강의를 가졌다. 강연 제목은 '갈수 있고,가야 할 길,가버린 길 - 어느 저능아의 심경고백'이었다. 강의 마지막에 이런 말을 남겼다. 지금 다시봐도 가슴이 뜨꺼워진다.
'인간으로 태어나서 다행이었고,문학을 했기에 그나마 다행이었습니다.예언자가 없더라도 이제는 고유한 죽음을 죽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사족: 국문학자 김윤식과 불문학자 김현은 함께 '한국문학사'를 썼다. 논란도 있었지만 '실존적 정신분석'(김현)과 '실증주의 정신'(김윤식)의 만남에 나는 열광했다. 둘 사이의 신뢰는 두터웠다. 김윤식은 "여기 한 불세출의 비평가가 있다"로 시작되는 '어떤 4.19세대의 내면 풍경'이라는 김현에 대한 멋진 글을 쓰기도 했다. 김현에 대한 확고한 믿음, 애정, 기대가 넘치는 글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둘 사이가 소원해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나는 그들과 지근거리에 있던 적도 없고, 모두 망자가 되어 둘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른다. 그냥 두 사람을 모두 흠모하는 충실한 독자로서 안타까웠다. 가령, '행복한 책 읽기'를 보면 김윤식에 대한 김현의 평은 거의 독설에 가깝다. 그것이 나를 슬프게 했다. 지금 그 내용을 일일이 거론하는 것은 김윤식과 김현에 대한 예의가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분명한 건 매의 눈으로 무리 문학을 지켜주던 두 사람이 떠난 후 한국문학이 정체됐다는 것이다. 아니 후퇴했다.
지금 내 심정은 두 사람이 저 하늘나라에서 완전히 화해했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