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야 하는 이유 사절 (죽음에서 돌아서다)
독실한 크리스천으로 알려진 유명한 연예인이 자살한 기사가 인터넷에 크게 올라왔다.
사람들은 수군대며 말했다. “하나님을 믿는데 그러면 지옥 갈 텐데 그걸 알면서도 자살을 하다니.
애초에 믿음이 없었던 거 아냐? 지옥에 가도 상관없다는 건가?”
왜 그랬을까 하는 의문은 항상 결론이 나지 않았고 나는 이유가 뭐였는지 알고 싶어 했다.
그러다 의문이 풀리던 날이 나한테도 왔다.
나는 죽는 것보다 지옥을 더 두려워했었다.
“자살하면 지옥가”
오랜 종교생활은 그 말을 굳게 믿게 했고 그곳의 두려움을 강하게 심어놓았다.
그래서 지옥 갈까 무서워서 자살은 언감생심 꿈도 꾸지 않았는데, 살고 싶지도 않고 살아야 할 이유도 찾지 못한 그 시간들은 나를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것, 지옥이라는 사선 앞에 데려다 놓았다.
“난 여기를 떠날 거야. 그러면 지옥 간다고? 그게 뭐? 이제 난 지옥도 두렵지 않아!”
그곳이 무서워서 스스로 목숨을 내려놓지 못했던 내가, 생명에서 떠나기로 마음먹은 그 순간,
나는 지옥의 두려움이 사라지는 것을 확실히 느꼈다.
그 찰나의 사선에서 나는 삶으로 돌아섰다, 아니 죽음을 포기했다.
‘지옥이 무섭지 않네. 이제 언제 죽어도 죽을 수 있겠다. 그러고 싶어질 때까지 그럼 살아봐야겠다’
그날 이후로 사는 것이 대단히 행복하고 충만하고 다시 태어난 것 같은 그런 건 아니었다.
사망의 갈림길에서는 벗어났지만 삶의 문제는 변함없이 존재하고 여전히 살아야 하는 이유를 나는 아직 찾지 못하고 있다.
당시에는 죽고 싶었던 것이 아니라 일상이 지속되는 것이 싫어서 손을 뻗었던 것이 내가 사멸하는 것이었다.
더 이상 세상에서 존재하고 싶지 않아서 생을 마치는 것을 생각하며, 생명을 멈추고 싶었던 것이다.
결국 내가 사망으로 향하지 않은 건 살고 싶은 이유가 생겼던 것이었을까?
그것은 아니다.
삶의 의미, 살아야 하는 이유, 목적이 꼭 있어야 되나?
옷이 필요해서 살 때도 있지만 그냥 사기도 하잖아.
사는 것도 그렇게 살면 어때서.
의미 같은 거 그만 부여했으면, 가치? 그만 좀 찾았으면. 제발 만들지 말라고 목적 같은 거.
나는 사는 목적이 없어도 그냥 살아. 옷을 사듯이.
먹고 싶은 거 많아서 살고 놀고 싶어서 살고, 그냥 산다고.
목적 없는 채로 살고, 이유 없이 삶을 포기하면 안 되는 뭐라도 있는 건지
사람들은 항상 묻는다. ‘그 사람 왜 죽었대?’ ‘너는 왜 살아?’
“몰라, 나도 몰라."
나는 생을 포기하는 생각을 하는 날들을 지나왔다.
하루를 어떻게 살아야 할지 슬픔과 고독에 휩싸였을 때 날마다 느끼는 아픔의 크기가 너무 커서
이제 그만 느끼고 싶어서, 기쁜 날이 올 기대도 웃을 날이 올 희망도 보이지 않아서 삶을 놔버리려 했던
날들을 보냈다.
지금은 웃는 날들이 기쁜 날들이 돌아왔냐고? 꼭 그렇지는 않다.
슬픔의 날들도 여전히 존재하고 멈추기 힘들 정도로 웃는 시간도 있지만 그저 그냥 그런 날들도 많다.
아직도 가끔은 외로움이 찾아오지만 이제 그 외로움을 즐기는 것도 가능해졌다.
깊이를 알 수 없는 고독을 느낄 때도 ‘여기서 더 오래 머무르면 위험해’하고 그 깊은 심연의 고독을 잠시 만끽하며 빠져나와 쓴웃음으로 끝날 때가 있다.
누군가 나에게 삶의 가치, 삶의 의미, 살아야 할 이유를 대라고 한다면 나는 그 질문을 사절하겠다.
'거창한 목적 따위 생의 가치 같은 거 없지만 나는 나한테 잘해주려고 살고 나 챙겨주려고 살고 어떤 이유 없이도 살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