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회는 미리 할 수 없기에 나를 위한 지금의 선택을 하자
‘후회’ [後후 : 뒤 후, 悔회: 스스로를 꾸짖다, 뉘우칠 회)
나를 위한 선택을 한다는 것, 나를 위해 산다는 것은 ‘나만을 위해’ 사는 건 아닌데
“자신” 아니면 “타인” 두 가지 선택지만 있는 흑백논리처럼 사람들은 자신을 위하는 사람은 악인으로 남을
위하는 사람은 선인(의인)으로 구분 지어 놓곤 한다.
그런 논리와 시선에 물들어 나는 오랫동안 나를 위해 살지 못하는 삶을 살아왔다.
그리고 또 내가 남을 돌보면 하늘에서 나를 돌봐줄 거라고 믿었다.
그렇게 다른 사람을 돌아보고 나를 챙기지 못한 날들은 결국 부메랑이 되어 하늘의 돌보심도 받지 못하고
나 자신에게조차 버려진 사람이 되어 어느새 나는 외톨이, 마치 고아와 같은 신세가 되어버렸다.
지인언니와 오랜만에 통화를 했다.
언니의 형제들은 다 가정을 이루고 있었고 결혼적령기를 훨씬 넘긴 싱글인 언니가 엄마를 모시는 걸 당연히 여기면서 결혼도, 독립도 하지 못한 언니가 오히려 엄마의 도움을 받는 거라고 생각하기까지 했다.
나보다 몇 살 나이가 많은 언니는 취업의 어려움에 오랫동안 일자리를 갖지 못했고 금전적인 곤란을 계속
겪으면서도 모아둔 돈으로 생활비를 지출하며 아픈 어머니와 병원을 오가며 끝을 알 수 없는 무한굴레에
빠진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내가 말했다.
“언니, 왜 언니만 엄마를 챙겨? 다른 가족들은 뭐 하고? 왜 돈도 안 준대?“
“엄마 병원비는 달라고 하면 줘” “달라고 해야 준다고? 그럼 생활비는? 언니도 일 못하고 있고 엄마도 모아둔 돈이 있는 게 아니잖아. 언니 엄마는 왜 주택연금 그런 거 안 해? 집 담보로 매달 돈 받는 거 있잖아”
죽을 때 아들에게 남겨준다고 현재의 고통받는 언니를 보고도 그 어머니는 해줄 수 있는 걸 해주지 않았다.
혼기를 한참 넘긴 아직 싱글인 언니를 보며 그 어머니는 “우리 딸은 정말 괜찮고 좋은 앤 데
왜 안 데려가는지 모르겠다”라고 하신다지만 내가 보기엔 말뿐이었다.
나는 그런 사람들을 많이 만나왔다.
그들의 선택에 필요한 것을 채워야 하는 건 나였고 그들은 늘 나에게 무언가를 해줄 수 없는 이유도 대지 않은 채 그저 자기가 먼저이기 때문에 상대에게 해줘야 할 것을, 할 수 있는 것을 하지 않았다.
그 언니의 엄마도 그랬다. 딸의 행복을 바라는 모습을 보이지만 그건 딸을 결혼시키지 못했다는 주변의 좋지 않은 평가를 듣기 싫어서였을 뿐 본인 옆에 있기를 바라고 있다는 것을 제삼자인 내가 봐도 알 수 있었다.
“언니, 언니는 언제쯤 언니를 위해서 살 수 있어?”
“나도 나만 생각하고 싶을 때가 없는 건 아니야. 그런데 지금 엄마를 돌보지 않으면 벌 받을 거 같고 욕먹을 거 같고 나중에 후회할 거 같아”
그 말을 듣고 나는 한숨이 나와 버렸다.
“언니, 엄마 안 돌보면 후회할 거 같지? 그런데 자기를 위해 살지 않은 것도 나중에 엄청 후회돼.
그것도 크게, 생각보다 많이 많이 후회돼”
그랬다.
나를 포기하고 돌아보지 않은 채 남을 돌보던 세월들은 나에게 후회를 가져왔다.
남을 돌봐서가 아니다. 나를 모른척한 채 남만 돌아봐서이다.
나를 아끼지 않고 사랑하지 않은 날들이 내 앞으로 와서 나에게 말했다.
“왜 나 자신과 타인 중에 누가 먼저 인가에 대한 선택에서 상대방을 우선하는 것을 선택했냐고”
“내가 그 사람보다 소중하지 않냐고, 왜 나를 버려둔 채 그들의 풍요를 채웠냐고”
지난날 내가 남을 돌보는 일에 충만한 느낌은 분명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나를 버리며 타인을 돌아보는 내게 씌우는 최면 같은 거였다.
지금 내가 나 자신을 돌보며 나를 사랑하며 나에게 집중하는 시간들의 충만함은 아니었다.
나에게 집중하는 삶을 사는 나에게 지금의 이 선택이 다시 후회가 되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왜 주변을 좀 더 돌보지 않고 나를 위해 살았냐고 말이다.
어떤 게 더 후회가 될지는 나도 모른다.
지인 언니와의 통화는 계속되었다.
“엄마를 돌보지 않을 수는 없고... 당당하게 집에서 나갈 수 있는 방법은 좋은 사람 만나서 결혼하는 건데
(그게 언제가 될는지 모르니까) 그랬으면 좋으련만“
언니는 백마 탄 기사가 나타나 자신의 상황을 바꿔주기를 바라고 있었다.
그래서 (정당하게, 자기를 위한다는 욕을 먹지 않고, 엄마를 버렸다는 비난을 받지 않고) 축복받으면서 자신이 행복해지는 상황이 오기를 바라는 것이다.
남편이 없는 채 그저 독립을 하는 것조차 불효자처럼 느껴져 자신을 위한 선택을 하지 못하는 언니를 보며
나는 예전의 나를 보았다.
오랜 세월 친언니네 집에서 얹혀 살았던 나는 결혼해서 축복받으면서 그 집에서 개선장군처럼 나오기를 희망했고 그 소원은 하늘에 계신 신이 이뤄주실 줄 강력히 믿고 또 믿었었다.
우리는 좋은 사람이 되려, 욕을 먹지 않으려고 때론 선택을 하지 못하고 결정을 미룬다.
그리고 그저 행운이, 하늘의 돌보심으로, 고통스러운 현재가 내가 꿈꾸는 방향으로 격변하기를 바란다.
선택, 어떤 것을 선택했을 때 후회가 덜 하고 더 만족할까?
두 가지를 절충하며 살아야 하는 거 같다.
한 가지를 선택하면 남은 한 가지에 대한 후회가 있기에 두 가지를 병행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그 언니가 자신을 위해 사는 것이 엄마를 버리는 선택을 한 것도 아니다.
엄마랑 같이 살지 않아도, 가족도 돌아보면서 나를 위해서도 사는 시간과 에너지를 쓸 수 있다.
어떤 선택을 해도 우리는 크고 작은 후회를 하게 된다.
선택은 후회와 공존하는 거 같다.
그러나 후회는 미리 할 수 없기에 “후회”이다.
세월이 지나면 어떤 것을 어떤 마음으로 후회하게 될지 누구도 알 수 없다.
그러니 미리 할 수 없는 후회 때문에 나를 뒤로 하는 선택은 하지 말자.
외부의 상황이 변해 저절로 욕먹지 않고 원하는 결과가 오기를 바라지도 말자.
후회를 덜하기 위해, 손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무언가를 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으로서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는 선 안에서 내 마음이 흐르는 대로 선택하며 살아가자.
나중에 하게 되는 후회를 하지 않기 위해 현재와 미래를 다 아쉬움 속에 가두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