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마치지 못한 창세기 공부

아무 말도 하지않는 비겁한 중립

by 티나부

나는 내가 믿는 하느님에 대해 더 알고 싶은 마음에 올해 초부터 성당에서 하는 창세기 성서 공부 모임에 나가 공부를 했습니다.

성서에 기록되어 있는 하느님께 더 가까이 다가가고 싶었다.


하지만 난 그 공부를 중단했다.


모임을 주도하는 60대 봉사자가 자신의 근황을 이야기하던 중에 타 성당 신부님의 강론을 정치적이라고 신랄하게 비판을 했다.

타 성당 신부님께서 미사 강론 때 "지난 대선 때 윤을 지지하신 분들은 반성하시라"라고 했다고 몹시 분노하며 이야기를 했다.

그녀는 "신부는 정치적인 발언을 하면 안 된다."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하지만 그 모임의 누구도 그 말에 동감도 반대도 표현하지 않았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녀는 마치 동의를 구하듯 다음 모임 때도, 그다음 모임 때도 계속 같은 주장을 반복했지만 모임원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당신의 생각과 다르다'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아집에 빠져있는 그녀와 논쟁하고 싶지 않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그 모임에 더 이상 나가지 않았다.


나는 우리 성당 신부님의 정치적 발언을 들어본 적이 없다.


지난 2022년 대선 당시 보수 개신교 지도자들과 불교 지도자들 등 대단한 단체들이 대대적으로 윤을 지지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나는 그 단체들이 윤정권의 탄생에 일조했다고 생각한다.

내란 사태 이후에도 일부 개신교 단체에서 여전히 윤어게인을 외치며 태극기를 흔들고 있다.


가톨릭은 정치적 중립을 미덕처럼 지켰고 오직 정의구현 사제단 만이 내란 당시에 비판 성명과 시국 미사를 했다.

비록 가톨릭 단체는 정치적 중립을 지켜 윤정권 탄생의 부채는 없을지 모르지만 정치적 침묵은 해석하기에 따라서 지지 또는 반대로 이해될 수도 있다. 또한 내란이란 국가폭력에 대해서도 중립적인 입장을 보였다.


기성 공중파 방송과 언론들이 국가 폭력에 정치를 덧씌워 중립이라며 계엄을 반대하는 대다수 국민을 1의 비중으로 계엄을 찬성하는 소수의 국민을 똑같은 1의 비중으로 보도하고 있다. 마치 내란이란 국가폭력에 정당성을 부여하고 싶은 것처럼...

그들은 국가적 폭력 사태를 중립이라는 가면을 씌우고 그들의 비겁을 중립으로 포장한다. 종교 단체들도 다르지 않았다. 국가 폭력에 중립이 있을 수 있는지 묻고 싶다.


기독교 종교 지도자는 양 떼를 이끄는 목자다. 신자들이 양들이다. 양들이 잘못된 길을 간다면 그곳이 아니라고 크게 말했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다 알아들을 수 있도록 크게..

그 말을 듣기 싫은 시끄러운 양들의 눈치를 볼 것이 아니라 '그것은 잘못된 것이다'라고 모든 양들이 다 알아들을 수 있도록 크게 말했어야 한다.

좋은 목자라면 말이다.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면 그가 좋은 목자라고 말할 수 있을까?


예수님은 용기 있는 진보개혁가였다. 그래서 권력자인 제사장들과 유대 지도자들은 예수님의 존재를 위협으로 느꼈고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매달아 죽였다.


그때도 제자들은 누구 하나 용기 내어 예수님의 편에서 말하지 않았다. '그것은 잘못된 것이다'라고 말하지 않았다. 그때도 지금도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마치 그들의 관습을 따르는 것처럼...

오히려 소신 발언을 하는 목자를 양이 물어뜯는 어이없는 상황을 성당에서 나는 목격했다.


그 양은 말했다. '나는 모태 신앙인으로 신앙심이 매우 깊은 사람이고 이렇게 봉사하게 되어 감사하다'라고...


로마교황청 유흥식 추기경님께서는 용기 있게 말씀하셨다.

고통에는 중립이 없습니다.



나는 미결로 남은 나의 창세기 공부가 언젠가는 완결되는 때가 올 것을 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