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장. 용서, 용서 명상

by 티나부

용서

용서, 말이 쉽지 나에게 고통을 준 사람을 용서하는 것은 쉽지 않다.


용서;

원망도 미워하는 마음도 내가 만든 것이니 내려놓는다. 내려놓는 것도 내가 내려놓아야 한다.

* 내 인생이 정말 소중하다는 것을 안다면 지난 과거보다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해야 한다. 미워하는 마음은 내 삶에 도움이 되지 않음을 알고 더 소중한 지금의 내 삶에 집중해야 한다. 사람은 각자 자신의 업습대로 자신의 방식대로 살아가니 내가 관여할 바가 아니다. 누군가를 미워하는 마음은 무거운 바위를 끌어안고 사는 것과 같다. 그러니 늘 깨어있는 마음으로 그것을 내려놓는다.


용서 명상;

들숨에 평화, 날숨에 미소를 속으로 생각하며 호흡을 편안하게 한다.

1. 먼저 나의 말과 행동으로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준 일은 없는지 떠올려 본다.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심정으로 그 사람의 감정을 느껴본다. "당신에게 용서를 구합니다. 저를 용서해 주세요."

2. 나 스스로에게 준 상처는 없는지 떠올려 본다. 그리고 "나는 나를 용서합니다."

3. 나에게 상처를 준 이를 떠올려 본다. "나에게 고통을 준 당신을 용서합니다."

* 하지만 도저히 용서하는 마음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억지로 할 필요는 없다. 나 자신을 사랑하며 소중한 나에게 집중한다. 모든 사람이 업습이 다 다름을 알고 나를 용서하는 것과 같이 남도 용서한다. 인생에는 정답이 없다. 인간은 각자의 정답으로 살아가니 그것을 너그러운 마음으로 인정하고 내려놓는다.


왕따 사건;

내 아이가 초등학교 4학년 2학기 때 왕따를 당한 일이 있었다. 그것을 주도한 아이의 부모와 안면이 있던 관계로 나는 동네에서 불편한 관계를 만들기 싫었다. 어리석게도 나는 그일을 그냥 넘겨버렀다. 나는 내 아이를 다독이며 위로했다. 그 아이들이 나쁜 것이라고 말해주었다. 그들이 지은 나쁜 업은 다 그들이 도로 받게될 것이니 너무 속상해하지 말라고 했다

그리고 그 문제를 덮어버렸다.


그러다 아이가 6학년 때 그 왕따를 주도한 아이와 같이 반이 되어 버렸고 그 아이가 내 아이의 1년을 망처 버리게 둘 수 없었다. 그래서 왕따를 주도했던 아이의 엄마에게 2년 전 일을 말했다. 그리고 나의 걱정도 함께 전했다. 나는 당연히 아이를 단속하겠다는 말과 사과를 예상했지만 결과는 달랐다. 그 아이의 엄마는 자신의 아이가 왕따를 주도했다는 증거가 있냐고 나에게 되려 물었다. 나는 너무나 속상한 마음에 내 아이를 왕따를 시킨 다른 아이의 엄마들에게 지난 이야기를 했다. 다들 큰일이 아니라는 듯이 가볍게 여기며 아이에게 사과하게 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1년이 지나도록 어느 누구에게도 내 아이에게 사과를 하지 않았다. 나는 동네 학부모 커뮤니티와 단절했다. 어떤 가치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 아이들의 부모들의 얼굴을 마주하기 싫었다.


그리고 2년 뒤, 아파트 복도에서 그 왕따를 주도했던 아이의 엄마를 마주했다. 어쩐 일이냐고 물으니 옆집으로 이사를 왔다고 했다. 알면서도 옆집으로 이사 온 그녀의 뻔뻔함과 오만함에 내 심장이 날뛰고 분노로 내 살갗이 부들거렸다. 나는 너무나 화가 나고 속상했다. 나는 미움이라는 바위를 끌어 안고서 그 바위를 들었다 놓았다 하고 있었다. 나는 바위를 안고 고통 속에 있었다.

(어쩌면 그들에 대한 미움과 원망의 마음이 그들을 옆집으로 끌어당긴 것은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이 사건도 결국 내가 만든 것이 된다.)


목탁 소리;

수행하는 도반들이 순번을 정해 2층 설법전을 청소를 하는데 이번에 내 차례가 되었다. 2층 법당과 화장실을 청소하고 법당으로 들어갔다. 이미 오전 법회는 시작되어 주지 스님께서 목탁을 치시며 기도를 하고 계셨다. 그 소리가 엄청나게 크게 느껴졌다. 그 소리의 파동에 온 몸이 진동하는 것을 느꼈다. 그 목탁 소리는 법당을 가득 울리며 채우고 사찰을 넘어 주변으로 퍼져나가는 것 같았다. 불교가 처음이라 어떤 기도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나는 기도 소리와 목탁 소리에 빠져들어 있었다.

순간,

"모두 부질없다."라는 생각이 올라왔다.

모두 부질없다.


나는 부질없는 바위를 들고 그것을 들었다 놓았다 하면서 내가 만든 고통 속에 있었다. 그들은 그들이 만든 업습대로 살아갈 뿐인데... 나는 내가 만든 고통 속에 살고 있었다.

눈물이 흘렀다.

나는 들고 있던 바위를 내려놓았다.


사십구재;

나는 바위가 된 과거의 상처들을 끌어안고 있었다가 내려놓았다가를 반복하며 미움과 원망을 품고 "나는 그들을 용서하기 싫어. 그들은 나에게 사과도 하지 않았어." 마음속 외침과 싸우고 있었다. 나는 머리로 알고 있다. 내가 용서를 하더라도 그들이 지은 과보는 그들이 받게 된다. 나는 머리로 알고 있었다. 타인을 미워하는 것은 나를 미워하는 것이고 타인을 원망하는 것은 나를 원망하는 것이다. 하여 타인을 사랑하는 것은 나를 사랑하는 것이다... 하지만 내 심장은 "모르겠다."라고 말하고 있었다.


수행을 함께 도반 중 한 분의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절에서 사십구재를 올리게 되어 참석하게 되었다. 나는 진심으로 그 도반의 아버지의 명복을 빌며 기도를 했다. 법당 안은 기도 소리와 목탁 소리로 가득 찼다.

순간,

내 심장이 울렸다. "알겠다. 타인을 위해 빌어주는 것은 나를 위해 빌어주는 것과 같고, 타인을 미워하는 것은 나를 미워하는 것과 같고, 타인을 원망하는 것은 나를 원망하는 것과 같고, 타인을 사랑하는 것은 나를 사랑하는 것과 같고, 타인에게 감사하는 것은 나에게 감사하는 것과 같다. 알겠다." 내 심장이 이젠 알겠다고 말하고 있었다.

눈물이 멈추질 않고 흘러내렸다.


나는 어쩌면 내려놓았던 바위를 다시 들어 올리고 힘들다고 할 때도 있겠지만 바로 알아차림 하고 다시 내려놓을 줄 아는 수행자가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