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길 위에서 지친 마음을 다독이는 찬송이 있다. 새찬송가 384장, ‘나의 갈 길 다 가도록’은 오랜 세월 동안 수많은 신앙인들의 입술에서 흘러나온 곡이다. 이 찬송은 단순한 멜로디를 넘어, 인간의 연약함과 하늘의 인도하심을 함께 고백하게 하는 노래이다.
‘나의 갈 길 다 가도록’은 미국의 여류 시인 패니 제인 크로스비(Fanny J. Crosby)가 작사한 찬송으로 알려져 있다. 그녀는 시각장애인이었지만, 눈으로 세상을 보지 못한 대신 마음의 눈으로 신앙의 길을 깊이 바라보았다. 그녀가 남긴 수많은 찬송 가운데에서도 이 곡은 특별한 울림을 가진다.
이 찬송의 첫 소절은 “나의 갈 길 다 가도록 예수 인도하시니”로 시작된다. 짧은 문장이지만, 그 안에는 인생의 여정을 하나님께 온전히 맡긴 이의 고백이 담겨 있다. 삶이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가더라도, 그 길 끝에는 분명한 인도하심이 있다는 믿음이 녹아 있다.
이 곡이 우리말로 번역되어 불리기 시작한 이후, 한국 교회에서도 오랫동안 사랑받고 있다. 예배 시간뿐만 아니라 장례식, 위로의 자리, 혹은 개인의 묵상 시간에도 자주 들을 수 있는 곡이다. 그만큼 이 찬송은 인간의 한계 속에서도 신의 손길을 신뢰하는 마음을 자연스럽게 일깨운다.
이 찬송의 가사는 세 절로 구성되어 있다.
“나의 갈 길 다 가도록 예수 인도하시니
내 주 안에 있는 긍휼 어찌 의심하리요
믿음으로 사는 자는 하늘 위로 받겠네
무슨 일을 만나든지 만사형통하리라”
첫 절의 가사는 믿음의 핵심을 담고 있다. 인생의 길을 걸으며 무엇을 만나든 ‘예수 인도하심’을 확신하는 것이다. 현실의 어려움 속에서도 하나님이 주시는 ‘만사형통’은 세속적인 성공이 아니라, 그분의 뜻 안에서 평안을 누리는 상태를 의미한다.
둘째 절에서는 인간의 연약함을 드러내며, 하나님께 의지하는 자세를 강조한다. “나의 갈 길 다 가도록 예수 인도하시니 / 어려운 일 당한 때도 족한 은혜 주시네”라는 구절은 신앙의 고백이라기보다 경험의 진술에 가깝다. 실제로 어려움을 겪고 난 후에야 깨닫게 되는 은혜의 무게가 이 가사에 스며 있다.
마지막 절은 천국의 소망을 노래한다. “나의 갈 길 다 가도록 예수 인도하시니 / 그의 사랑 어찌 큰지 말로 할 수 없도다.”
여기서 ‘말로 할 수 없음’은 감정의 절정이 아니라 신앙의 깊이를 상징한다. 결국 인간의 언어로 다 표현할 수 없는 사랑이기에, 침묵 속에서 감사가 피어난다.
새찬송가 384장의 악보를 보면, 그 멜로디는 단순하고 부드럽다. 높은 음역대를 오르내리지 않으며, 일정한 리듬 속에서 고백의 정서를 유지한다. 화려하지 않지만 그 담백함이 오히려 신앙의 깊이를 담아낸다.
나는 이 곡을 처음 배울 때 피아노 반주와 함께 불렀다. 단선율로 시작되는 음이 너무나 간결해서, 처음에는 다소 밋밋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러나 반복해서 부르다 보면, 그 단순함이 주는 울림이 서서히 마음속에 번져나간다. 특히 “무슨 일을 만나든지 만사형통하리라”라는 구절에서는 피아노의 화음이 잔잔히 흘러나오며, 마치 긴 하루의 끝에서 따뜻한 위로를 받는 듯한 느낌을 준다.
이 곡의 음악적 구조는 사람의 감정을 과도하게 자극하지 않는다. 오히려 차분하게 내려앉는 선율 속에서 ‘믿음의 평안’을 전달한다. 이것이 바로 오래도록 불리는 찬송의 힘이다.
찬송은 단지 부르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들을 때마다 마음이 다르게 반응하고, 그때의 상황에 따라 새롭게 다가온다. ‘나의 갈 길 다 가도록’을 들을 때면, 나는 늘 과거의 어느 시점으로 돌아가곤 한다.
한때는 불확실한 미래 앞에서 두려움에 떨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 이 찬송이 흘러나오던 예배당 안에서, 가사 한 줄이 내 마음을 붙잡았다. “어려운 일 당한 때도 족한 은혜 주시네.” 그 문장을 따라가다 보니, 내가 겪고 있던 고난이 더 이상 절망으로만 보이지 않았다. 결국 그 시기를 지나며, ‘족한 은혜’라는 말의 의미를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
이 찬송을 반복해서 들을수록, 그것은 단순한 음악이 아니라 신앙의 언어로 다가온다. 피아노나 오르간의 선율이 아닌, 삶의 소리로 들린다. 찬송의 목적은 단지 감동을 주는 데 있지 않다. 그것은 마음을 하나님께 향하게 하는 하나의 통로이다.
세상은 점점 더 빠르게 변하고, 불안은 일상이 되었다. 그런 시대 속에서 이 찬송은 오히려 더 깊은 울림을 준다. “나의 갈 길 다 가도록”이라는 말은 신앙이 있든 없든,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문장이다. 결국 우리는 모두 각자의 길을 걸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삶의 방향을 잃은 순간, 이 찬송의 고백은 다시금 중심을 잡게 해준다. 믿음이란 모든 것을 해결하는 힘이 아니라, 그 길 위에서 흔들리지 않게 붙잡아주는 손길이다.
오늘도 나는 이 찬송을 들으며 하루를 정돈한다. 내일의 길이 어떠하든, 그 길 끝에서 ‘예수 인도하시니’라는 말이 여전히 진실하기를 바란다. 노래가 끝난 뒤에도 그 여운은 오래도록 마음속에 남는다. 그것이 바로 찬송의 힘이며, 신앙의 위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