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하필 준비물이 습햄?

어느 가정주부의 심각한 고민

by 글임자
2023. 7. 18. #실과예습 #습햄간장달걀밥 #성공적

< 사진 임자 = 글임자 >


"학교에서 만들기 전에 집에서 미리 만들어 보는 건 어때?"

"그럴까?"

열두 살 요리 솜씨 여든까지 간다고 했던가?

목요일에 있을 실과 요리 시간에 대비하여 단기 특강을 할 요량으로 슬쩍 흘려 본 말이었다.

뱉어 놓고 괜히 일거리만 만드는 거 아닌가 싶기도 했다, 솔직히는.


"엄마, 실과 시간에 우리 요리 만들기로 했어. 우리 모둠은 습햄 간장 달걀밥이랑 불닭 팽이버섯볶음이야."

지난주에 딸이 호들갑을 떨며 방학 마지막 주의 학사 일정을 내게 알렸다.

"학교에서 그걸 만든다고? 어떻게?"

또 30년 전의 기억을 더듬어 전혀 가능할 것 같지 않았던 나의 초등학교 시절을 소환하며 내가 의아해했다.

"재료를 다 준비해 오기로 했어. 난 습햄 두 개랑 치즈, 숟가락, 젓가락, 키친타월 챙기고 거기선 달걀 풀기 맡았어."

평소에 내가 달걀을 깨뜨리면 알끈을 제거하고 섞는 일은 딸과 아들이 종종 한다.

딸은 작년에 토달볶음을 만드는 것을 시작으로 간단한 요리를 하기 시작했다. 아니, 점점 더 욕심을 부리기 시작했다.(=내 일거리를 만들기 시작했다.)


각자 맡은 준비물을 챙겨 오고 요리 시간에 맡은 역할도 다 있다고 한다.

요리에 관심은 있으나 실습이 충분히 하지 않았던 딸은 얼마나 들떴는지 모른다.

목요일 실과 시간에 보내려고 산 재료를 가지고 한 번 시험 삼아 만들어 보는 게 어떻겠냐고 했더니 딸은 단번에, 그것도 아주 적극적으로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


습햄은 그나마 나트륨이 덜 들어 있다는 걸로 사 왔는데 딸에겐 환영받지 못했다 물론.(실전에는 그냥 습햄을 사기로 했다.)

"그건 좀 짜야 맛있는데."

이렇게 아쉬워하는 것이다.

"그래도 고기 함량이 제일 많은 걸로 샀어."

결혼 전엔 한 번도 사 먹은 적이 없고, 결혼하고 아이 둘이 태어난 후 지금까지 습햄은 이번이 세 번째 구매다.

12년 동안 딱 세 번 사 봤다.

워낙 먹는 일에 예민했고, 일단은 너무 내 입맛에 짰고, 그다지 맛있는 줄을 모르겠어서다.

왜 그렇게까지 하고 사냐고 타박하는 이들이 있지만, 내 가족 건강은 내가 챙겨야지 남들이 챙겨주는 것은 아니니까. 그 범위도 당연히 내가 할 수 있는 데까지만이다.

물론 명절에 친정에서 산적을 만들 때 햄을 사서 끼워 넣기는 한다.(그때도 한 번 데쳐서 쓴다.)

햄은 일 년에 두 번 먹으면 됐다.

가공육은 좋지 않다고 한 말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딸이 하는 걸 보고 있자니 속도가 너무 느려서(난 손이 좀 빠른 편이다.) 괜히 딸보고 실습 한 번 해보자고 했나 후회가 됐다. 가능하면 칼은 위험해서 안 주려고 했는데 자꾸 애원하는 바람에 부드러운 습햄 자르는 것만 허락했다. 끓는 물에 조각난 그것들을 얼른 데쳐냈다. 그렇게 하면 그나마 해로운 성분들을 덜 먹게 된다고 해서 말이다.

딸이 말한 건 습햄 간장 달걀밥이었지만 집에 있는 야채를 모조리 다 넣었다. 당근, 애호박, 팽이버섯, 양파를 거기에 안 넣으면 어디에 넣으랴? 즐거운 곳에서는 너희를 오라 하는데?

"엄마, 우린 야채는 안 넣기로 했는데 엄마는 다 넣었네."

"어, 집에 있으니까 그냥 넣었어. 학교에선 어차피 안 넣고 만들 거잖아. 신경 안 써도 돼."

약간은 요리의 정체성의 혼란이 왔지만, 그래도 야채는 언제든 먹어주면 좋은 거니까,라고 나만 생각했다.

반 이상은 내가 했지만 딸이 지지고 볶고 그릇에 담아내고, 딸 덕분에 저녁을 맛있게 먹은 날이다.

명절도 아닌데 가공육 구경을 다 한 날이다.


그나저나,

아침에 저 습햄을 어떻게 처리한다?

우리 가족들끼리 먹을 땐 무조건 끓는 물에 데쳐서 쓰는데, 그럼 짠맛도 좀 줄어들고 덜 기름진데, 딸 친구들이 그런 과정을 거치는 걸 싫어하면 어쩌지?

시치미 떼고 그냥 데쳐서 보내? 말아?

귀신같이 내가 비밀리에 그런 일을 했다는 걸 눈치라도 채면 어쩌지?

어떤 사람들은 그 기름진 맛으로 먹기도 한다는데.

이거 정말 고민되네.

아이들의 건강을 생각한다면 하던 대로 하는 게 좋겠지만 맛없는 걸 가져왔다고 딸이 원성을 듣지나 않을까?

뚜껑을 따자마자 그 기름진 형상을 보고도 내가 눈을 질끈 감을 수 있을까?

자신 없다.

어차피 조각내서 준비해 오라고 했으니까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준비하면 될까?

습햄을 즐겨 먹지 않는 엄마는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딸아, 하필 왜 넌 준비물이 습햄인 거라니?

아니, 왜 하필 그날 요리가 습햄 간장 달걀밥인 거라니?

게다가 200g이 양은 또 왜 그렇게 많은 거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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