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쥐의 10분, 5일장, 원주민의 횡재
누구를 위하여 5일 장에 마실 나갔나.
23. 1. 16. 대확행의 그날<사진 임자 = 글임자 >
"오늘이 5일 장이 서는 날이네. 너희 시골 장 구경 안 가봤지?"
"마트는 가 봤어요."
"고모랑 같이 시장 구경 가자. 재미있을 거야."
1일, 6일, 장이 서는 날마다 괜히 장터를 배회하며 재미있어하는 건 언제나 나였다.
백화점 구경보다도 5일장 구경이 더 설레는 원주민은 아침부터 들떠 있었다.
도시 조카들에게 시골 요모조모를 보여주면서 신세계로 초대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은 나는 절호의 기회를 얻었다고 생각했다.
지난주는 제법 따뜻해서 벌써 봄이 왔나 싶었는데 이번 주는 시작부터 너무 쌀쌀했다.
자고로 아이들은 바깥활동을 하며 마음껏 뛰어놀게 해야 한다는 신념의 소유자로서 나는 방학 때만이라도 최대한 집 밖으로 내보내고 싶었다.
그러나 겨울이라는 계절의 특성상 나와 아이들은 사방 문을 꼭꼭 닫고 온종일 집안에서 서너 발짝씩만 움직이는 겨우살이를 벌써 3주째 하고 있는 것이다.
이젠 나도 아이들도 몸이 그전처럼 회복된 것 같았고 조카들도 시골집에 내려와 있어서 넷이서 최대한 어울려 놀게 할 요량으로 치밀한 계획도 다 세워뒀다.
"너희들, 고모 말도 안 듣고 밥도 잘 안 먹으면 이제 안 올 거야. "
우리 아이들과 큰 오빠네 아이들은 죽이 잘 맞아 만나면 항상 그렇게 신나게 놀 수가 없었다.
만나면 100년 만에 서로 얼굴 본 듯 반가워하고 지칠 때까지 재미있게 놀고, 헤어질 시간이 되면 세상 가장 슬픈 얼굴로 이별을 아쉬워하는 아이들이었다.
어제가 마침 장날이니 아이들 넷을 데리고 나들이 삼아 바깥바람을 쐬면 딱 좋을 날이라고 나는 단정 지었다.
"얘들아, 도시에는 이런 장 구경 못하잖아. 봐봐. 신기한 것도 많지? 어때?"
"네, 집에서는 그냥 시장은 가 봤는데 이런 데는 처음이에요."
"고모가 너희 와서 특별히 데리고 온 거야. 구경 잘해."
솔직히 고백하자면 조카들을 위해 특별히 나온 것이라기보다는
'어떻게 하면 저 아이들과 시간을 빨리 보내버릴 수 있을까'
만 고민해 왔다.
우리 아이 둘도 활발하기로 치면 어디 가서 빠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데 또 남자 형제만 셋이 있는 큰 오빠네는 뭔가가 또 남달랐다.
고등학교에 입학하게 되는 첫째만 빠지고 둘째와 막내가 할아버지 댁에 온 것이다.
친정 부모님이 감당하기엔 너무 벅찬 손주들임에 틀림없다.
부모님 숨통도 좀 트여 줄 겸 몇십 년이라도 젊은 내가 거느려야 할 번뇌들이었다.
도시 아이들이라 시골 장 구경을 재미있어하리라는 내 생각은 나만의 착각이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간만의 나들이에 갑자기 활기가 샘솟고 신이 난 사람은 다섯 명 중에 단연 나 혼자였다.
아이들을 앞세우고 이것저것 시시콜콜 5일장 가이드를 자처했지만 도시 손님들은 반응이 시큰둥했다.
넷이서 나를 따돌리기에 이르렀다.
저희들끼리 앞서가면서 쉴 새 없이 떠들고 장난치느라 나는 안중에도 없어 보였다.
마침 설을 앞두고 대목 장이 열려서 볼거리도 많았고 사람들도 북적대서 '시골 장날이란 이런 것'이라며 문화충격을 안겨주리라 예상했던 내 바람과는 달리 그 아이들은 나들이 장소보다는 언제나 그렇듯 누구와 함께 하는지가 가장 중요해 보였다.
너무나 쌀쌀해서 그 넷 중에 한 명이라도 시름시름 앓게 되면 그 뒷감당이 너무나 끔찍해 10분 만에 장에서 벗어났다.
호한, 마마, 불법 비디오테이프가 가장 무섭다던 시절은 갔다.
바야흐로 독감이 가장 무서운 시기다.
급히 아이들을 태우고 차에서 잠깐 휴식을 취했다.
겨울이라도 햇볕은 따뜻했고 바람이 차단되니 그 꽉 찬 차 안이 그렇게 아늑하고 편안할 수가 없었다.
아이들이 '시장에 가면' 놀이를 시작했다.
장터를 돌아다니던 때보다도 얼굴이 한층 피어나며 정말 행복한 얼굴로 저희들끼리 신나게 즐겼다.
혼자 보기 아까워 짧게 동영상을 찍어 새언니에게 보냈다.
장 구경은 10분 만에 끝났지만 차 안에서 아이들끼리 이런저런 놀이를 하며 30분을 마치 1분인 것처럼 재미있게 놀았다.
나름 도시 쥐들을 생각해서 시골 쥐들과 장터 마실을 나왔는데 내가 생각했던 것만큼 호응이 없어 나는 의기소침해지고 말았다.
그러나, 장터를 나오는 길에 파장 분위기를 맞은 과일 장수 아저씨를 만나 내 얼굴에도 꽃이 피어났다.
어쩌면 나는 구경하는 내내 그 순간만을 기다려왔는지도 모른다.
엊그제 마트에 가서 500g짜리 딸기가 자그마치 8,000원인 것을 보았는데 여기서는 1KG에 6,000원이었다. 크기는 그 마트나 여기나 비슷했다.
"하나 먹어 보세요. 너희들도 먹어 봐라."
하시면서 아저씨가 우리에게 딸기를 하나씩 건네주셨다.
"씻지도 않은 걸 어떻게 여기서 바로 먹어요? 씻어 먹어야지요."
라고 말하는 대신 모두 잽싸게 딸기 한 알을 입에 넣었다.
시식을 권하지 않았어도 살 의향이 있었는데, 이렇게나 친절한 아저씨를 그냥 지나친다는 건 시골살이 40년 차의 동네 주민이 차마 할 짓은 아니었다.
여전히 세상은 살 만하며 시골 인심이 그렇게나 박하지 않다는 사실을 증명해 보일 필요도 있었다.
부모님 댁에 하나, 우리 집에 하나, 작은 오빠네도 하나, 이렇게 딸기를 세 상자나 횡재했다.
한겨울에 2만 원도 안 되는 가격에 저렇게나 실컷 딸기를 맛볼 수 있다니!
오늘 뉴스 기사를 보니 이번 명절 준비하는데 재래시장에서 마트보다 6만 원 정도 더 저렴하게 할 수 있다고 했다.
어쩌면 나는 요행을 바랐는지도 몰랐다.
조카들에게 시골장터 체험활동하게 한다는 것은 핑계고 어디선가 나를 기다리고 있을 횡재를 은근히 기대했는지도 모른다.
운수 좋은 날,
달리 더 뭐라고 이 기쁨을 표현할 수 있으랴.
아이들에게는 어쩐지 몰라도 역시, 그날의 장터 나들이는 나에게만큼은 탁월한 마실이었다.
쉽사리 끊을 수 없는 중독, 굳이 끊을 필요성도 느끼지 못하는 1일과 6일의 유혹, 그것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