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컸네

난생 처음 키워 봤다

by 글임자
2023. 7. 26.

< 사진 임자 = 글임자 >


"이게 뭐야?"

"바질이지 뭐야. 바질이라고 들어는 보셨수?"

"먹는 거야?"

"그럼 먹는 거지, 입는 걸까? 잡솨 봐."


태어나 처음으로 바질 씨앗을 심고 싹을 틔우고 분갈이까지 해봤다.

이파리를 자꾸 뜯어주면 깻잎처럼 계속 키우면서 먹을 수 있다고 했다.

언제까지 깻잎만 뜯어먹고살 것인가.

나도 이번 생애 바질 한 번 뜯어보자.


"올봄에는 나 허브 좀 심어봐야겠어. 다 큰 거 사려면 비싸고 성에 안 차니까 씨앗을 사서 심어보려고 하는데."

애초에 이런 말은 남의 편 앞에서 하는 게 아니었다.

"그런 걸 뭐 하려 해? 쓸데없이."

그래도, 이 정도까지 일 줄은 몰랐다.

아마도 이렇게 말한 남의 편 때문에 부정을 탄 게 아닌가 싶다.(고 나만 강력히 의심했다.)

하여튼 남의 편 아니랄까 봐 내가 뭐든 한다고만 하면 결사반대다.

육아휴직 때 미용 배우겠다고 했을 때도 어떻게 나오셨더라?

"또 쓸데없는 거 하려고 한다. 그런 거 뭐하러 해?"

이렇게 콧방귀를 뀌며 가소롭다는 듯(물론 내가 느끼기에만) 엉뚱한 데다 정신 팔지 말고 조신하게 살림이나 잘하라고 훈계하셨었지.


"자긴 질보다 양이잖아. 천 원이면 허브 질리게 키울 수 있을 거야. 씨앗 하나에서 이파리가 얼마나 많이 돋아난다고. 페퍼민트랑 레몬밤은 차로 끓여 먹고 바질은 스파게티에 쓰고 말려서 다른 요리에도 쓰고, 라벤더는 관상용으로 길러야겠어."

정말 무식하고 용감해서 말만 뱉으면 다 되는 줄 알았던 봄날이 있었다.

두 번의 실패의 아픔을 경험하고 세 번째는, 설마 세 번째는 반타작이라도 하겠지. 하나라도 건지겠지 하는 마음으로 경건하게 허브 씨앗을 심었다. 전날 비가 왕창 내리고 곧 또 비가 내릴 예정이라는 길일을 택해, 손 없는 날로 잡아서 막중한 임무에 최선을 다했음은 물론이다.


같이 심었던 페퍼민트와 레몬밤은 기원전 5,000년 경에 요단강을 건넌 지 오래였고 바질 하나 건졌다.

생각보다 아무렇게나 심어놔도 잘 돋고 쑥쑥 컸다.

친정집에 갈 때마다 물도 주고 말도 걸어 주고(일방적인 짝사랑이긴 했지만) 정성스레 길렀다.

오이 옆에 심은 바질 두 그루(?)는 잘 크다가 이번 지독한 장맛비에 녹아내려버려서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어느 날 친정에 갔다가 그 광경을 보고 얼마나 속이 쓰렸는지 모른다. 부추 옆에 심은 바질은 어느 정도 크면 내가 화분에 옮겨 심으려고 때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엄마가 풀인 줄 알고 다 뽑으셨다고 했다. 나는 바질을 이식할 날을 기다리고 엄마는 그걸 뽑아버릴 날만 기다리고 계셨나 보다.


첫 바질 수확을 하던 날 스파게티를 해 먹어야만 할 의무감에 사로잡힌 나는 요란스레 음식을 만들었다.

예전에 바질을 어떤 식으로 먹었을지도 모르지만 이번에 내가 기른 바질은 내가 예상한 것과 맛이 달랐다.

씹지 않고 삼켜버렸다. 맛보다는 내가 거기에 쏟은 정성과 사랑이 더 의미 있는 거니까.


화분에 분갈이한 것은 여기저기 나눠주고 친정에 두 개, 우리집에 한 개, 이렇게 원년 멤버는 현재 셋만 남아있다.

노지에 심은 것도 두그루 있는데 확실히 화분에서 키우는 것보다 더 튼튼하고 무성하게 자라서 토마토 옆 땅에 심은 건 벌써 꽃이 피고 곧 씨앗을 볼 것 같다.

우리집으로 데려 온 한 그루는 매일 아침 거실 창문을 열고 환기를 할 때 바질 화분을 창틀에 올려 둔다.

해가 지나가는 자리마다 시간 맞춰 자리도 옮겨준다.

볼 때마다 마냥 기특하고 좋다.

어쩜 물과 바람과 햇볕만으로도 이렇게 무럭무럭 잘 자라는지 신통방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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