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에게, 난 진심이야.

그런 생명도 소중한 것이지

by 글임자
23. 3. 22. 절로 지는 생명도 있던데

< 사진 임자 = 글임자 >


기어이 사달이 났다.

그곳에 갈 때마다 점점 흑갈색으로 전체 잎이 말라가는 그 커다란 고무나무를 볼 때마다 나는 속이 아려왔다.

내 것도 아닌 남의 것이지만 다 꺼져 가는 생명에 안타까웠다.

지독하고도 어찌해 볼 수 없는 몹쓸 병에 걸린 것이 틀림없어 보였다.


우리 집에 들인 이래 나의 고무나무는 지금 7년째 무럭무럭 잘 자라고 있는데, 잊을 만하면 가지 끝에서 새 순이 돋아나고 돋아나는데, 어찌하여 그것은 그렇게도 허망하게 가버렸을까.

거실 창가에 비쭉비쭉 얼굴 내미는 그 연하디 연한 연둣빛을 보며 나는 얼마나 기특해했던가.

그러나 그곳의 그것은 전혀 그렇지 못했다.

통유리 창 가까이 눈을 대면 밖에서도 훤히 보이던 그 고무나무는 차라리 처참했다.

그것을 볼 때마다 한때 나는 우리 집의 고무나무를 보듯 했었는데.


가망 없어 보였다, 고 느낀 지가 벌써 볓 달 전이다.

흉물스럽기까지 했다.

무인 반납기에 책을 반납하며 그곳을 스칠 때마다 눈여겨봤지만 상태는 점점 악화되고 있었다.

처음 그것이 시름시름 앓기 시작한 것을 눈치챘을 때 염치 불고하고

"저러다 죽겠어요. 차라리 죽기 전에 저한테 주시면 안 될까요?"

라고 간절히 애원하고 싶었다.

그래도 생명이 있는 건데, 너무 방치하는 건 아닌가 싶기도 했다.

물론 그곳 관계자분들이 나름 살려보려고 다방면으로 애를 무던히 썼을지도 모를 일이다.

어쩌다가 그 지경까지 이르렀는지 내가 다 속이 상할 정도였다.

하긴, 그곳은 도서관이지 식물원은 아니니까, 더군다나 식물 병원은 아니니까.


아슬아슬하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안개 자욱한 어느 봄날에 그것은 기어코 버림받았다.

겨우내 버티다가 봄이 오기만을 기다린 것일까.

그러나,

버려졌다.

버려지는 기분이 어떤 건지 느낄 사이도 없이 그것은 버려졌을 것이다.

정말 이미 오래전에 숨을 거둔 육신과도 같았다.

마치 미라처럼 섬뜩하기까지 했다.

물기 하나 없이 바짝 마른 그 거대한 몸은(키가 거의 나만 하거나 나보다 좀 컸었다.) 그 앞에서 차마 서 있기도 어려웠다.

또 저렇게 한 생명이 가는구나.

쉽게도...

(전혀 쉽지 않았을 지도...)

몇 조각으로 잘린 그 몸체를 보고 있노라니 내 살점이 뜯겨 나간 듯 짠해졌다.


물론 절대 쉽게 숨을 거두지는 않았을 것이다.

식물들도 나름대로 살고자 발버둥 치며 안간힘을 쓰며 살고 있다고 어디선가 들은 것 같다.

그렇지만 그것은 아마도 자연 속에서일 것이다.

제 잔뿌리 한 가닥도 어찌해 볼 수 없는 화분에 갇힌 그 고무나무는 달리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을지도 몰랐다.

두 발 달린 짐승도 아니니 제 발로 마음껏 가고 싶은 대로 가라고 놓아줄 수도 없는 노릇일 테니까 말이다.

종종 나는 자못 심각하게 생각한다, 내게 뿌리가 아닌 두 다리가 있어서 정말 다행이라고, 세상 고마운 일이라고.


고목은 사람의 손을 거쳐야만 그 목숨이란 게 붙어 있을 수 있었을 테지.

애초에 오로지 인간에게 생명을 의지해야만 하는 숙명을 타고난 것이 비극의 시작이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사람도 원인을 알 수 없는 각종 병에 걸리고 고치지 못하고 죽기도 하는 일이 다반사인데, 하물며 그 고무나무는...

그래도 그것도 생명이 있는 것인데, 그래도 한때 숨을 쉬던 것인데 그렇게 처참히 아무렇게나 내동댕이 치듯 버려진 것 같은 기분을 쉽게 떨칠 수가 없었다.

이건 너무하지 않느냐고,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내버려 둘 수 있는 거냐고 주제넘게 따질 뻔했다.

사람들 발길 흔한 곳에 이물스럽게 여기저기 흩어져있는 그 조각들을 보고 있노라니 마음이 좋지 않았던 것이다.

친정에서 농사짓다가 한순간 병들어 말라죽어가던 농작물들을 보는 마음과도 같았다고나 할까.

고무나무는 그동안 살면 얼마나 살았을까, 과연?


생명 받은 것들은 결국에 언젠가는 죽기 마련이라지만,

허망하다, 산다는 게.

쓰라리다, 그런 죽음을 보는 게.

그러면서도 매일 허덕이고, 시기 질투하고 더 갖지 못해 안달 나하고, 뺏길까 봐 꼭 쥐고, 부대끼며 고만고만하게 사는 일이, 우리 사는 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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