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보내고

내가 널 어떻게 키웠는데

by 글임자
2023. 4. 4. 너는 가고

< 사진 임자 = 글임자 >


"물만 줄 수 있는 환경이면 누구나 다 키울 수 있어. 스파트필름 키워 볼래? 한글 알지? 한글만 알면 돼."


올 초부터 벼르던 일을 드디어 실행에 옮겼다.

몇 년 전에 우리 집에서 산세베리아를 가져간 친구에게 이번엔 스파트필름을 권해보았다.

새하얀 꽃봉오리가 삐죽이 올라와 금세 활짝 피어날 것만 같은 그 모습을 사진 찍어 보내자 친구는 단번에 수락했다.


"OO한테 물도 직접 주라고 해 보고 꽃 피는 것도 같이 봐봐. 좋을 것 같아. 금방 꽃 피울 것 같으니까 지금 가져가서 보면 딱이겠다."

전에도 그녀는 키우기 쉬운 식물이 있으면 하나 받고 싶다고 했었고 그런 말을 하지 않았더라도 집에 있는 것들 중에 하나를 보내줄 생각이었다.

이번에는 가장 식구가 많은 스파트필름이 갈 차례다.

몇 년 전에는 산세베리아가 넘쳐났는데 마침 우리 집에 온 친구가 그 화분을 마음에 들어 해서 선뜻 내주었다.

스투키도 줬던 것 같은데 요단강을 건넌 지 오래라던가 어쨌다던가?

차마 그 생사를 아니 들음만 못했다.

어지간해서는 잘 죽지 않는다고 알고 있었는데 뭐가 문제였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비보를 듣고 솔직히 조금은 속이 상했다.

어쩌랴, 인연이 그것으로 다인 것을.


화분들을 보고 내가 느끼는 이 마음을 친구도 느꼈으면 해서 보내려다가 혹시라도 끝까지 잘 못 키우면 어쩌나 하는 괜한 걱정이 앞서기도 했다.

그리고 내가 주고 싶은 마음과는 별개로 받을 사람이 키울 의향이 분명히 있어야 했으므로(게다가 어떤 각오도 있어야 하므로) 무작정 가져가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왕 주기로 했으니 전달된 후의 일은 친구의 몫이니까 너무 관여하지 않기로 했다.

"근데 너무 큰 건 감당 안 돼."

그녀는 그렇잖아도 공기정화식물을 하나 살까 했었다며 반색했다.

"큰 건 너를 못 믿어서도 못 줘."

집에서 가장 큰 스파트필름은 내가 끝까지 책임져야겠다고 마음먹었으므로 별일이 없으면 그 누구한테도 갈 일은 없었다.

"역시 넌 날 너무 잘 알아."

이로써 스파트필름의 입양 절차는 순순히 진행됐다.


그런데 보내려고 하니 또 그것이 유난히 더 예뻐 보이고 잘나 보이고 내 마음이 섭섭해지려고까지 했다.

친구가 떼를 써가며 달라고 사정을 한 것도 아니고 내가 먼저 주겠다고 해놓고 이게 무슨 간사해지려는 마음이란 말인가.

그 집에 가서 잘 살 수 있을까?

친구가 잘 먹이고 잘 키워줄까?

바람도 잘 쏘이고 환기도 잘해주고 이파리에 앉은 먼지도 깔끔히 잘 털어줄까?

주책맞게도 괜한 걱정이 앞서는 것이다.

지금 내 딸을 서역 만리로 시집보내는 것도 아닌데 근심 한가득이었다.

아니지, 자꾸 이렇게 미련을 두면 못쓰지.

과감히 정을 떼야지.

하지만 7년 가까이 키워 온 것이라 그게 단칼에 끊어질 성질의 것은 아니었다.


"스파트필름 정말 예쁘다. 화분도 내 마음에 쏙 들고."

다행히 친구는 만족스러워했다.

"그래 잘 키워 봐. 꽃 금방 필 거야. 향기도 좋아."

나도 내심 뿌듯했다.

그러나 이내 생각지도 못한 비보를 듣게 되었다.

"근데... 화분 받침을 OO 아빠가 깨버렸어."

와그작, 내 마음 한편에서 금 가는 소리가 들렸다.

모든 게 무사했다면 더할 나위 없었겠지만 이미 벌어진 일이다.

그녀의 남편을 탓할 수 없다.

그도 이미 친구에게서 혹독한 응당의 대가를 치렀을 것이다.

눈으로 보지 않아도 뻔히 알 수 있는 일이 있다.

이런 표현이 지금 그 상황에 어울릴지는 모르겠지만, 액땜한 셈 치자.

줄기가 꺾였다거나 화분이 통째로 깨져버렸다거나 하는 그런 일들보다는 덜 속 쓰린 거라고.

그러면서도 속으로는 미련을 떨치지 못하고 있다.

그건 그 화분받침까지 세트인데...


그래도 다행이다.

스파트필름은 무사해서, 깨진 게 화분 받침이라서(그 받침에겐 미안하지만, 화분 받침보다는 스파트필름에 팔이 굽으니 나도 어쩔 수가 없다.)

가서 잘 살아야 한다.

반드시, 꼭꼭꼭.

언제 한 번 내가 보러 가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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