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용의자가 바로 접니다."미필적 고의에 의한 쪽지

잡았다 요놈!

by 글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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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임자 = 글임자 >


"혹시 이번 지방직 시험 일반행정직에 브런치 지역 응시하셨나요? 저는 가채점 결과 88점 나왔어요. 최종 필기 합격자 발표가 나와야 알겠지만 아무래도 '글임자님 때문에' 제가 떨어질 것 같네요."


태초에 '덕분에', 'thanks to~' 이전에 ' 때문에', 'because of ~'가 있었다.

코로나 19는 '덕분에'를 낳았고, 2009년 지방직 공무원 시험은 '때문에'를 낳았다.


나보다 점수가 안 나왔다니 듣던 중 반가운 소리지만

언제 봤다고 나 때문에 떨어질 것 같다는 거야?


시험을 끝내고 나니 홀가분하면서도 뭔가 허전한 이 느낌, 시험을 치른 사람들은 다들 한 번쯤은 느껴봤을 테지.

도착해야 할 지점이 있고 등수와는 상관없이 그곳에 이르렀을 때, 마침내 그 목표를 달성했다거나 목표를 잃어버렸다거나 더 이상 내가 무엇을 위해 달려야 할지 몰라 어리둥절해져 버린 경험 같은 거 말이다.


아직 필기 합격자 발표까지는 시간이 한 달 정도 남았고 달리 할 일도 없었으며 딱히 만날 사람도 없던 서른 살의 미(혼)녀는 부모님 집에 들어가 무료하게 도돌이표 인생을 살게 되었다.

하루 종일 하는 일이라곤 집안일 좀 거들고 필요하면 밭으로 순찰도 나가고 새참이나 한 번씩 나르고 '구꿈사'카페를 들락날락하고 그 와중에 가장 중요한 그 일, 평소 몸무게보다 8kg이나 늘어나고야 말았으니 살을 빼야 할 의무가 있었다.

'합격하면 낫는 병'이라고 무작정 먹어대서 부풀었던 몸을 이제는 축소시켜야 할 시점이었다.


원래 내 소유였던 것은 없다.

저 살은 본디 내 것이 아니다.

세상에 잠시 왔다 스치는 인연일 뿐,

그 8kg도 원래 내 것은 아니었다.

어쩌다가 이번 생에 8kg의 인연으로 한때 만난 것뿐이다.

그 무게에 집착하지 않겠다.

원래대로 돌아가라.

8kg아, 우리의 인연은 시험날까지 만이다.

모든 것이 공(空)하도다.

논둑길을 하염없이 매일같이 걸었다.


아,

공부하는 것 말고도 하루를 이렇게 많은 시간 동안 많은 것들을 하면서 보낼 수도 있구나 새삼 느끼며 그나마 사람답게 서른 살의 늦봄을 보내던 중, 운명의 쪽지는 도착했다.


과연 운명이라 부를 수 있는가?

그저 내가 선택한 어떤 우연이 운명이 돼 버린 것 같기도 하다.

그게 운명이었는지 우연이었는지, 차라리 악연이라 부를까?

아직도 뭐라 정의할 수는 없지만 내 인생을 바꿔놓은 것만큼은 분명하다.


나처럼 눈치 보며 자신이 지원한 지역의 커트라인을 운운하며 본인의 가채점 결과를 말하고는 나의 지원 지역이 혹시 본인의 그곳과 같은 지역이 아니냐며 집요하게 쪽지를 보내왔던 낯선 이가 있었다.

그 쪽지를 열어보지 말았어야 했는지도 모른다.

아니지, 발송한 성의를 생각해서 읽어보는 것까지만 했어야 했는지도 몰라.

굳이 답장을 보내는 과잉친절까지는 베풀 필요가 없었어.

친절은 민원인의 것이야.

공무원이 되고 나서 민원인에게 베푸는 거야.

함부로 아무한테나 친절하게 대하는 거 아니야.

우리 엄마가 옛날부터 모르는 사람하고 말하지 말랬는데.

그 쪽지에 답장하지 않았더라면?


드디어 경쟁자가 실체를 드러내는구나.

요리조리 내 수사망을 피해서 정체를 숨기고 그동안 잘도 숨어 있었군.

나는 그 해에 국가직 시험에서는 누가 알까 봐 무서울 만큼 형편없는 점수를 받았고(당시 국가직(특히 일행)은 경쟁률도, 커트라인도 한가락했다. 그래서 커트라인과 2점 이상 차이가 나면 정말 형편없는 점수라고 혼자서만 단정 지었다.) 매달릴 데라고는 지방직 시험뿐이었다.

미친 척 응시한 시험에 '어쩌면?', '설마 그럴 리가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가느다란 희망의 동아줄을 붙들었다.

낡았어도 괜찮다.

썩은 동아줄만 아니면 된다.

뭐라도 단단히 붙들어야 했던 절박함에 몸부림칠 때 마침 도착한 그 쪽지는 판도라의 상자를 열게 만들었다.


간절히도 지방직에 희망을 품고 있던 차였고, 만약 또 시험에 떨어지면 내 나이 서른에 이제 어딜 가서 무슨 일을 하며 살아야 할지, 딱히 재주도 없이 장기근속으로 해 본 일이라곤 '공무원 시험 장수생 체험활동' 뿐인데 날 오라는 데가 있기나 할까, 유령 신랑감이라도 없긴 하지만 왜 우리 집에선 '시집이라도 가라.'라고 말조차 꺼내지 않는 거지? 오만가지 생각들로 머릿속이 실타래처럼 꼬여있었다.

단순하기만 했던 수험생활의 끝은 세상 번뇌의 수용소에 감금되는 것이었다.


한참만에 정체를 밝힌 그 용의자는 지방직 시험에서는 '나 때문에' 떨어진 것 같으나 국가직은 나름 성적이 잘 나와서(국가직을 먼저 시험 보긴 했지만 워낙에 응시생이 많은 관계로 필기 합격자 발표는 한참이나 멀었다.) 좋은 결과를 기다리고 있는 중이라며 내가 묻지도 않았을 뿐만 아니라 관심도 없는 국가직 얘기를 늘어놓았다.

본인은 커트라인 안정권이라는 몹쓸 말도 했다.

말로는 나보다 점수가 낮다고 했지만 그게 정말인지 아닌지 내가 알게 뭐람?

워낙에 흉흉한 세상이니까 그 말이 곧이 들리지 않았다.

지금 나 놀리는 거야 뭐야?


뭐라더라?

저런 태도를 보일 때 쓰는 전문용어가 있다고 하던데?

나는 좀처럼 써먹을 기회가 없었지만 그때 그 상황에 제격인 표현이 있었다.

고급 전문용어로 '재수 없다'라고 한다지 아마?

듣겠다는 사람도 없는데 어디서 지금 자랑질이람?

그 국가직 점수가 내 점수였으면 하고 잠시 마음이 흔들렸다가 이미 물 건너간 국가직 앞에서 제 발 저린 도둑은 굉장히 눈꼴셨다, 솔직히.

웬일이니 웬일이니, 별 꼴이야 정말.


국가직 필기 합격은 기원전 3,000년 전에 이미 물 건너간 사람에게, 지방직 시험에서도 '일반행정직렬 1명'이라는 변수가 어떻게 작용할지 모르는 마당에 지금 그게 내게 할 소리인가?

자신만만해하면서 거들먹거리던 그 오만함 좀 보라지.

(나에게만 느껴지는)'잘난 체'로 골고루 앞, 뒤 코팅되어 쪽지는 내게 도착했다.


처음엔 경계하는 마음에 바로 답장하지 않고 잠자코 있었다.

적의 동태는 파악했으니까 급할 게 없었다.

미필적 고의에 의한 쪽지는 수시로 도착했으며 마침 따분하기도 했던지라

'그래. 심심한 독거 수험생 말벗이나 해 주자.'

라는 마음으로 나이만 먹고 철없는 나도 답장을 하기에 이른다.

중학교 시절 철딱서니 없는 소녀들의 펜팔 편지 주고받듯 수험 생활을 끝낸 후 무료하기만 한 일상에 봄날 새순 돋듯 솔솔 쪽지 주고받는 재미가 쏠쏠하더라니.


그런데 가만,

우리 엄마가 모르는 사람하고 말하지 말랬는데,

자고로 엄마 말을 안 듣는 못된 송아지 엉덩이에 뿔나는 법이다.

엄마 말이 맞았어.

모르는 사람 하곤 말하는 게 아니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