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 '권했던' 사회, 응답하라 2002
월드컵이 있었다, 그리고.
22. 9. 16. < 사진 임자 = 글임자 >
"뭐니 뭐니 해도 공무원이 제일이다. 내가 해봐서 안다. 공무원 하면서 공무원 만나서 결혼하는 것이 제일이다. 이만한 직장 어디 또 없다. 잘 생각해 봐라."
종종 공무원을 한 것도, 공무원 배우자를 만난 것도 '제일'은 아니란 생각이 들기도 했다.
2002년 대학 4학년 때의 일이다.
빈둥대던 조카에게 그분께서 '공무원만이 살 길'이라며 강력히 추천하셨다.
나는 어릴 때부터 책 보는 것을 좋아하고, 초등학교 6학년 때 김소월의 시 '진달래꽃'을 읊으며 중학교에 가서 시를 쓰겠노라, 소설을 쓰겠노라 야무진 꿈을 꾸었다.
'왜 아직도 우리나라에선 노벨 문학상을 한 번도 받지 못했는가.'
하며 안타까워하던 사람이었다.
황순원의 '소나기'가 노벨 문학상 후보에 오르긴 했으나 수상하지는 못했었다는 얘기를 학창 시절에 듣고 누구보다도 가슴 아파했던 문학소녀였다.(고 나의 소녀시절을 아련히 회상한다.)
젊은 날의 '황순원' 소설가가 '이연걸'을 닮았다.(고 감탄하던 유치했던 감수성은 덤이다.)
이연걸이 누군지 요즘 젊은이들이 알랑가 몰라.
당시 군청 공무원으로 재직 중이셨던 친척 분은 말씀하셨다.
"요즘같이 어려운 때는 그나마 공무원이 정년 보장해 주니까 최고야."
돌이켜 보니 많은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장점만 얘기하셨다. 어느 일에나 장, 단점은 있기 마련인데 이제야
"그럼 공무원의 단점은 없나요?"
라고 한 마디 묻지 못한 것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그만큼 건성이었고 별 관심도 없었다.
어차피 당시 나는 졸업하고 실컷 글을 써보겠다고 허무맹랑하기 짝이 없는 야망에 휩싸여 그분 말씀이 하나도 귀에 안 들어온 것도 사실이다.
왼쪽 귀에 발을 들인 말씀을 오른쪽 귀가 모르게 하라.
달음박질쳐 빠져나가게 하라.
99학번인 내게는 대학 다닐 때부터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행정학과 친구 한 명이 있었다.
IMF를 겪고 정말 미친 듯이 공무원의 인기가 상승하고 세상에 직업은 다 멸망하고 공무원만 살아있는 것처럼 너도 나도 공무원을 외치던 때였지만, 내 주변에서는 그 친구 말고는 공무원 하겠다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나중에 카페에 가서 실컷 봤다.
그 카페에 들어가면 온통 공시생들 천지였다.
공알못인 내게는 신천지, 신세계로의 초대였다.
'9꿈사'라고 아직도 있나 모르겠네 하고 찾아보니 여전히 살아 있었다.
나중에 한참 뒤에 이렇게 상명하복에 충실하고 지시받으면 착실히 맡은 일만 수행하는 공무원이 되려고 그랬던지 그때도 잠자코 듣기만 하고 내 생각이나 의견이라곤 없이 그저
"알겠습니다"
이 대답 한 마디로 은근슬쩍 공무원 세계로 진입하던 날이었다.
그 친척분은
"군대 제대하고 공무원 시험 있길래 그냥 봤는데 합격했다."
하시면서 그렇게 공직생활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공개하셨다.
그러나,
2002년은 그로부터 30년도 더 흐른 후였고, (조금 과장하자면) 이미 군대 가기 전부터, 군대 가서도, 제대하고도 밤낮없이 공무원 수험공부에 매달리는 공시생만이 합격을 기쁨을 누릴 만큼 경쟁률이 치솟던 때다.
농사는 짓기 싫고 특별히 국민에 대한 사명감이 있어서도 아니고, 그냥
"산이 거기 있었으므로 산에 오르노라."
무심코 말하듯
"공무원 시험 일정이 있었으므로 그저 응시했노라."
였다.
훗날 그분은 거의 40년 가까이 공직생활을 하시고 면장님도 하시고, 군청 과장님도 하시고 퇴직하셨다.
최종 합격자 발표가 있은 후, 하루는 우리 집에 오셔서 부모님과 내게 차를 주시면서,
"내 뒤를 네가 이은 것 같아서 정말 기쁘다."
라고까지 말씀하셨다
졸지에 대가 끊길 뻔한 손 귀한 삼대독자 집안에 시집간 며느리 신세가 된 것 같았다.
그때의 자랑스러워하시는 진심의 눈빛이라니.
우리 부모님도 그보다 더 기뻐하지 않으셨던 것 같은데 말이다.
그러고 보니 공무원을 권유받은 지 20주년이다.
2002년 월드컵이 있었다.
공무원 권하는 사회가 있었다.
그러나,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지금 강산이 두 번 바뀌면서 그 세계도 뭔가 변화의 움직임이 끊임없이 일어나는 것 같다.
정말 가깝게 지내는 친척이었고, 얼굴도 자주 보았고, 나에게 도움도 정말 많이 주신 고마운 분이시다.
하지만 임용되던 날부터 의원면직 때까지 그것이 굴레가 될 줄이야......
그토록 다정했던 그 사람,
그 굴레,
진정 난 몰랐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