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9. 16. 부추꽃< 사진 임자 = 글임자 >
바퀴벌레의 특성이 '질주성'이라고 합니다.
공무원 공부가 이렇게 재미있을 수도 있나요?
(아니 수험생이 저렇게도 철없을 수가 있을까요?)
대학 졸업 후 이런저런 파란만장한 각종 알바를 거치고 맨 처음 도전한 직렬은 남들에게도 뜻밖이었던 보건직이었다.
감히, 붙을 수 있을 것 같다는 무모함 그 자체가 내게 손을 내밀었고 나는 그 손을 덥석 잡았다.
간호사 출신도 아니고 보건 관련 학과를 나온 것도 아니었다.
그냥 국어국문학과 출신이다.
이는 훗날 '공무원 국어 경시 대회' 참가의 굴레를 뒤집어쓰게 되는 비극을 불렀다.
국문학을 전공하는 대학생, 아침에 일어나 제일 먼저 하는 일은 20년 넘게 EBS 라디오를 켜고 그저 영어 방송을 듣고 공부하는 국문학도일뿐이었다.
많은 친구들은 모두 내가 영문과에 간 줄 안다.
당시 친할머니가 살아 계셨는데 보건직 공무원이 되어 할머니께 좋은(?) 약을 드리고 싶었다. 얼마나 우습기 짝이 없는 발상이었는지 어처구니가 없을 정도다.
공보의라면 또 몰라.
아니, 공보의도 전혀 상관없는 건가?
보건직 공무원은 의사도, 약사도 아닌데 말이다.
그 시험에 도전하기 전에 차라리 의대나 약대에 진학했어야 옳았으리라(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하지만 이론적으로 따지자면). 저 얼토당토않은 기대를 충족시키려는 '의지'라는 게 있었다면 말이다.
보건직은 관련 과를 졸업한 사람에게 가산점을 주었다.
당시 2점인지 3점인지 가물가물 하지만,
'그거 문제 몇 개만 더 맞히면 되겠네'
이런 당돌한 생각으로 일을 저질렀던 것이다.
부모님도 뜨악했었고, 주변에서도 다들
"느닷없이 웬 보건직이야?"
이런 반응뿐이었다.
그런 직렬이 있는지도 모르는 사람이 태반이었던 시절이다.
그 직렬을 권한 사람이 한 명 있었다.
당시 남자 친구의 강력한 권유로 아궁이에 불은 활활 지펴졌고 굴뚝에서 매운 연기가 피어올랐다.
그가 아니었더라면 내가 어떻게 알고 시작했겠는가.
공무원은 그냥 다 같은 공무원인 줄로만 알았지.
지금 이 어려운 시국에 굉장히 고생하시는 공무원들 중에 보건직이 많겠지. 시기가 시기인 만큼 다른 직렬도, 꼭 공무원이 아니더라도 누구나 엄청 힘든 시기를 겪고 있을 테지만 말이다.
처음엔 생소한 분야라 꽤나 재미있더라.
그만큼 철이 없었던 게지.
아직도 잊히지 않은 게 '바퀴벌레의 특징은 질주성'이란다.
세상에 만상에, 공무원 시험공부도 이렇게 재미있게 할 수 있구나.
새로운 걸 배우면 처음에 꽤나 재미있어하는 성격이라 시험이고 뭐고 초반에는 그저 몰랐던 분야에 대한 재미에 빠져 홀린 듯 공부했었다. 인강도 보고 책을 사 나르며 의지를 불태웠다.
공시생 시절을 거친 사람 중에 일관되게 한 직렬만 팠던 사람은 아마 드물 것이다. 대부분 우선은 합격이 목표니까 어느 직렬이 됐든 최대한 많이 다양하게 응시해 보는 것이다.
유치원생의 체험활동도 아니고, 대학 졸업까지 한 성인이
'보건직 공시생 체험활동'을 하기엔 적절하지 않았다는 판단이 그땐 바로 서지 않았다.
공시생 초보 시절에 내가 크게 간과한 것이 있었으니, 공무원의 꽃은 일반행정직이요(수도 많고, 다른 직렬에 비해 다양한 분야에 걸쳐 경력을 쌓을 수도 있다고 강사는 늘 강조했었다.), 기타 직렬은 우선 뽑는 인원 자체가 많지 않다는 것이다.
아무래도 많이 뽑는 쪽이 유리하고 적게 뽑는 쪽이 불리하지 않을까.
단순하게는 그렇다.
그러나 꼭 그런 것만도 아니다.
시험 성적이 잘 나오면 1명을 뽑든 100명을 뽑든 점수가 높으면 붙을 사람은 붙는 게 공무원 시험이다.
일행이 채용인원도 제일 많고 시험 과목에 특별한 것이 들어가는 것도 아니며, 특정 과를 졸업해야만 자격이 주어지는 것이 아니어서 다들 일행(일단 한번 행동으로 옮겨보라고 해서 '일행'인가 보다)부터 시작한다는데 대체 나는 그 당시 뭘 믿고 그랬는지 모른다.
어리석었기 때문이라고 밖에, 무슨 말이 더 필요하랴.
대부분의 사람들이 전공과 상관없이 일행을 준비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는데 말이다.
공무원 시험 준비해 본 사람은 누구나 알 것이다. 내가 가볍게 봤던 그 가산점, 1,2점이 당락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것을 말이다. 지금도 국가유공자 가산점이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당시에는 존재했었는데 그 가산점을 가진 것만으로도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는 훨씬 유리한 위치에서 시작했던 시기다.
0.5점 차이로도 떨어진 사람이 수두룩한데 난 당최 어떤 정신상태였는지 지금도 불가사의다.
그리하여,
무모했던 나의 보건직 도전은,
여러분의 기대대로,
한 치의 어긋남도 없이 떨어지고 또 떨어졌다.
나는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사람이다.
오히려 타인의 기대에 부응하는 사람에 더 가깝다.
아마도 지구 반대편 어디에선가 나의 불합격을 기원하는 백일기도를 드리고 108배 절을 하는 사람이, 새벽기도를 하는 사람이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절박함도 없었고, '사무자동화' 가산점 외에는 어디서 더 보탤 가산점이 아무것도 없으면서, 정말 죽기 살기로 공부하는 그런 수험생도 아니었다.
불합격의 백일기도와 108배와 새벽기도는 모두 내가 지극정성으로 한 셈이다.
1~2년 정도 그렇게 보건직에 도전하는 사이 슬슬 사태 파악을 하기 시작했다, 기특하게도.
생각만큼 보건직은 쉽지 않았고(쉬울 리가 결코 없지), 가산점의 장벽은 너무 높고 두꺼운 데다가 단단하기까지 했으며, 나는 그것을 허물어트릴만한 힘이 없었다.
그래, 정확하게는 실력이 모자랐다.
그걸 꼭 경험해 봐야 알 일이었을까.
정신이 들고 깨달았다.
이건 아니야.
현실을 직시해야 해.
뭔가 수정이 필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