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직, '우리 헤어져.' 일행이 좋아졌어.

잘못된 만남은 이제 그만~

by 글임자
22. 9. 20. 거역할 수 없는 운명의 '3'의 민족


< 사진 임자 = 글임자 >


공무원 시험은 보통 국가직이 먼저 봄 언저리에 있고, 바로 뒤에 지방직이 있다.

그리고 하반기에 서울시 시험이 있었던 것 같다.

그 셋 중에 어느 하나만 붙으면 나머지 둘이 무척이나 서운해할까 봐 나는 공평하게 셋 다 떨어졌다.

난 평화주의자니까, 분란을 일으키고 싶지 않았다.


일단 가벼운 마음으로 준비운동 삼아 고난의 가시밭길, 그 둘레길을 한 번씩 다 걸었다.

1년이 지났다.

한 번만에 끝내긴 아쉽다.

우리는 '정'의 민족이다.

한 번만 떨어지면 정 없다.

그럼 못쓰지. 아무렴 그렇고 말고.

공무원 시험을 단번에 붙을 실력은 없었으나 '정'이라도 있어야겠기에.

다시 한번 그 둘레길을 걸었다.

2년이 지났다.

'가위바위보'도 '삼 세 번'이라고 했다.

한국인의 삼 세 번 사랑에 나 또한 충실함으로써 자랑스러운 단군의 자손임을 입증했다.

3년이 지났다.

(공부만 한 게 아니고 여기저기 오지랖 펼치느라고 긴 시간 동안 수험 생활했던 과거가 새삼 부끄럽다.)

보건직 시험을 봤던 내내 커트라인 근처에도 못 가보고 내내 떨어졌으니 이제 '불합격에 여한이 없다.'

그 가산점이라는 장벽, 넘을 수 있을 거라는 착각과 헤어질 결심을 해야 했다.

보건직에도 다른 직렬과 공통 과목이 있었기에 직렬을 바꾸어야겠다고, 터무니없는 시험 점수를 여러 차례 받고서야 깨달았다.

그래, '공무원의 꽃' 그 일행직으로 꽃구경을 가자.


처음에 일행으로 바꾸고 공부를 시작할 때 겁이 덜컥 났다.

국어, 영어, 국사, 여기까지는 어떻게 감당되는데 문제는 행정법과 행정학이었다.

막 행정법이 시험과목으로 들어왔던 시기였던 것 같기도 하다.

정확히 기억은 안 나는데 기존에는 행정법이 없다가 생겼던가?

법이 들어간다니까 덜컥 겁부터 났던 것이다.


'9꿈사'라는 카페에 가입하고 회원들이 올린 글을 읽는데, 분명히 한글인데 도통 무슨 소릴 하는 건지, 집채만 한 절망감이 거세게 밀려들었다.

한글을 다시 번역해서 읽어야 할 것 같은 분위기다.

어느 정도 실력이 있는(나는 완전 초보였으므로 그들은 실력자로 보였다.) 회원들은 문제를 주고받고 토론까지 벌이고 있었다.

마치 외국인들의 대화를 보는 느낌이었다.

그건 마치 카페 안에서 '외국어 듣기 능력 시험'을 보고 있는 느낌이었다.

전혀 알아들을 수 없었다.


아니 도대체 어떻게, 얼마나 공부를 해야 카페에 저런 글을 쓸 정도가 되는 거지? 나도 저런 이야기를 카페에 쓸 정도가 되는 순간이 오긴 하는 걸까.


누구나 처음은 어렵고 낯설다.

유독 나는 당시 그것을 더 힘들게 받아들였던 건지 행정학을 술술 논하고, 법을 적용하고, 남의 질문에 거침없이 답하는 대단해 보이는 사람들의 활동에 '아차' 싶었다.

공부를 아주 잘했던 것도 아니었고, 고등학교 교육과정까지 무난히 마친 사람이면 도전해 볼 만한 시험이라고, 이만큼 공평한 기회는 없다고 누군가에게서 많이 들었는데 해 본 사람은 알겠지만 어설프게 공부하고 만만히 봤다가는 큰코다치는 게 공무원 시험 아니던가. 쉽게 봤다가 순식간에 공시생이 직업이 되어버린 사람들도 많고 끝이 안 보이는 지루하고 힘든 나와의 싸움에 폐인 되는 건 순식간인 시절이 분명 있었다.


공시생 체험활동은 그만할 때도 되지 않았나?

현실은 가혹했고 내 처지는 충분히 처참했다.

혼자 공부하는 것이 편했다.

집이 편했다.

고로 '홀로 공시생' 생활을 하기 시작했다.


남들은 노량진을 간다, 하다못해 근처 더 큰 도시에 가서 학원이라도 다니며 고시원 생활도 하곤 했는데 그 시절의 무모한 나는 어리석었던 까닭에 집에서 자유분방하게 인강을 듣고 수험 교재를 사서 공부했다.

그러나 지나친 자유는 화를 불러오기 마련, 구속당함만도 못할 때가 있는 법이다.

낯선 교재의 그 두께에 압도당하며 무슨 말인지도 모르겠는 행정학, 행정법을 공부하는 동안 좌절도 수 없이 했었다.


그나마 재미있는 국어, 평소 꾸준히 관심 가졌던 영어, 국사, 이 세 과목이 있어서 버틸 수 있었던 것 같다. 처음엔 행정학과 행정법 때문에 포기를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하다가도 나머지 세 과목으로 '어떻게든 더 해보자'는 마음으로 공부를 해 나갔다. 지나고 보면, 알고 보면, 행정학도 행정법도 어느 정도 공부하고 난 후에는 아주 못 봐주게 어려운 과목도 아닌 것을 지레 겁을 먹었던 것이다.

고대 산스크리트어로 문제를 출제하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다행히 문제는 한글로 나온다.

한국인에게 매우 유리한 시험이다.


지금처럼 별의별 다양한 주제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그런 시절도 아니라서(아니면 내가 몰랐던지), 게다가 나는 단순하고 무식하게 인강과 교재만으로 공부를 시작했으니 처음 얼마간은 말도 안 되게 창피한 점수 차이로 불합격했다. 일행으로 바꾸고 처음엔 시험이 어떻게 나오나 보자, 염탐 차원에서 시험을 봤는데 커트라인과 10점 이상도 차이가 났었다는 사실은 납골당까지 품고 가리라.

자그마치 '10'이라니, 저런 어마어마한 숫자는 차라리 당시 은행 금리였어야 옳았다.


아무리 첫 시험이라도 그 많은 점수 차이로 (당연히) 불합격했다는 사실도 놀라웠지만, 그 절망스러운 상황에서도 바로 포기하지 않고 다음 시험을 준비했다는 사실(어쩌면 무모함) 또한 놀라웠다. 시험이 끝나면 카페에선 0.5점 차이로도 아깝게 불합격했다는 (사실 확인 불가능한) 사람들이 실컷 뒤풀이를 했다.

나는 그저 구경꾼이었다.

카페에는 합격자들과 0.5점 차이로 불합격한 사람들만 존재했다.

그 어느 누구도 나처럼 10점 이상 차이나는 점수로 떨어졌다는 글은 올리지 않았다.

감히 내 점수를 입력할 용기조차 없었다.

0.5점의 사람들은 아까워 탄식했고, 10점 차이의 누군가는

그 심정을 전혀 공감할 수 없어했다.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내가 시험 본 초기엔 시험지도 다 제출했던 것 같은데, 그래서 시험 끝나면 확실치 않은 문제를 복원하며 카페에서 서로 이게 맞네 틀리네 시끄러웠던 적도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내가 합격한 2009년에는 시험지를 집에 가져와서 카페에 학원가가 제출한 정답(?) 가지고 채점했던 기억이 있다. 정확하긴 않고 어디까지나 어렴풋한 내 기억에 의존하자면 말이다.

요즘은 그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겠다.


여러분은 지금, 잘못된, 몹쓸 공시생의 예를 보고 계십니다.


*전혀 슬기롭지 못했던 공시생의 원급, 1부를 마치며

더 몹쓸 예(비교급)를 조만간 회상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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