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9. 24. < 사진 임자 = 글임자 >
"엄마랑 아빠 계 모임 가니까 와서 소 밥 좀 줘라."
하루는 아침 일찍 전화가 왔다.
'와 줄래?'가 아니었다.
'와서 줘라.'였다.
엄마는 아직도 내가 학창 시절처럼 반짝 벼락치기로 공무원 시험공부하는 학생인 줄 착각하신 게 틀림없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나에게 이렇게?
고백하자면 어느 정도는 맞는 말이라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 더 슬펐다.
어떤 말로 설명을 해야 할까.
이 시험은 잠시 소홀히 한다고 해서 단지 점수만 들쑥날쑥하고 마는 그런 시험이 아니라, 공부하던 습관이 틀어지면 치명적인 악영향을 줄 수 있는 그건 것이다.
그러나 엄마는 그런 것보다는 소들이 한 끼를 거르게 될까 봐 그게 가장 걱정이었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엄마, 지금 소 밥 주는 게 중요해? 공부하고 있는 사람한테까지 전화해서 소 밥 주러 오라고? 앞으로 내 직업이 될 수도 있는 중요하고도 굉장히 겁나게 힘든 시험이라고!"
라고 말하고 싶었으나 나는 벌써 집에 가는 군내버스 시간표를 떠올리고 있었다.
그것도 가장 빨리 갈 수 있는 시간으로.
그때는 만물의 영장인 한' 인간'의 수험 공부보다 서른 마리에 달하는 뿔난 '동물들'의 끼니를 거르지 않게 해 주는 일이 부모님께는 더 중요해 보였다.
받아들여야 한다.
돌이켜 보면 안일하게 공부했던 나나 공무원 시험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부모님이나 그땐 왜 그리 태평했는지 모르겠다.
어차피 내 인생이고 내가 알아서 할 일인데 엉뚱한 부모님께 서운해하며 당시는 부모님이 그저 비협조적이라고만 생각됐던 것이다.
벌어 놓은 것이 없으니 그럭저럭 부모님과 같이 살면서 공부를 하고 시험을 보고, 떨어지면 농번기에 농사일을 돕다가 생각나면 시험 일정 둘러보고, 발등에 불 떨어져야 급히 공부하고 그렇게 나의 수험 생활 돌림노래는 이어지고 있었다.
학창 시절에 벼락치기하며 근근이 살아가던 나의 유구한 역사와 문화의 전통을 여태 버리지 못했다.
그만큼 세상 물정을 몰랐던 것일까 아니면 절박함 같은 것이 없었던 것일까.
아마도 '둘 다'였겠지, 확실히.
그 따위 공부 방식으로는 절대 합격은 있을 수 없다.
당연하다.
공평하다.
불합격해야 마땅하다.
하루 종일 초집중해서 공부만 하는 사람이 허다한데 빈둥대며 슬렁슬렁 공부하는 불량하기까지 한 게으름뱅이가 합격하는 일은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된다.
슬슬 집에서 벗어나 뭐라도 해야겠다 싶어 면 소재지(집에서 차로 20분 정도)로 나갔다.
마침 동네 아주머니가 하시는 자취방이 있었다.
학연, 혈연, 지연에서 절대 자유로울 수 없는 시골 수험생은 부모님 시야에서도 벗어날 수 없었다.
난 그 어렵다는 공무원 시험(2009년 합격하기 전까지)을 준비하는 사람인데 할머니가 병원 가시는 길에 반찬 챙겨서 들르셨다가 나랑 회포 풀고, 내가 끓인 조기찌개가 엄마가 해 준 것보다 더 맛있다며 며칠 묵어가시기도 했다.
생전에 '템플 스테이'는 못 해보신 할머니지만 슬슬 장수생이 되어 갈 조짐이 보이는 공시생 손녀딸 방에서 '자취생 스테이'를 그것도 종종, 장기간 하곤 하셨다.
연로한 어르신들에겐 말동무가 필요한 법이니까.
자취방에 들렀다 가신지 며칠 안돼 금세 엄마랑 사이가 틀어져 또 오시고, 아빠가 볼 일 보러 나오셔서 군내버스 시간이 어중간해 내게 들르시면 인강이고 뭐고 일시 정지하고 부랴부랴 점심상을 차린다, 면담을 한다, 부산을 떨어야 했다.
급기야 한창 바쁠 땐 농사일 거들어 달라는 호출까지 있었다.
'내가 지금 수험생이란 걸 부모님이 모르고 계신 건가?'
하는 강한 의구심이 들기에 이르는데......
사회활동이 활발하셨던 아빠가 어느 날 부부 동반으로 면 소재지로 모임을 가게 되시면서 사달이 난 것이다.
엄마 말이 맞긴 하다.
말 못 하는 짐승 밥은 제 때 줘야지.
밥 줄 사람이 없으면 아무라도 소 밥을 줘야 하는 것이다.
당시 우리 집엔 말 못 하는 짐승이 서른 마리 가까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엄마가 과감히 공시생을 호출할 만한 숫자이다.
나 또한 그 짐승들에게 유감은 없었으므로.
유감은커녕 잠깐 부러워했었다.
너희가 무슨 걱정이 있냐, 공부를 하냐, 시험을 보냐, 5일 근무를 하냐, 노후 대책을 세워야 되냐.
나도 참.
너무 수험 생활에 취해 내가 어떻게 돼 버린 건 아닐까?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우리 집은 하루에 버스가 몇 대 안 다니는 곳이다. 그나마도 30분은 걸어 내려와서 버스를 타던 것이 중학교 다닐 때 형편이 조금 펴서 10분 정도만 내려오면 버스를 탈 수 있게 되었다.
수험생이라면 누구나 느꼈을 법한 당연한 그 기분, 공부하다가 갑자기 흐름이 끊기면 아주 치명적이다. 난 소 밥을 챙겨주기 위해 하루를 썼지만 앞 뒤 며칠은 또 뒤숭숭해지고 바깥의 번뇌를 자취방까지 달고 들어와 다시 공부에 집중하기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안다.
의지박약자의 나약한 변명일 뿐이다.
할 사람은 다 한다.
내가 자꾸 떨어지니까 집에서도 아예 기대도 않고 틈만 나면 나를 부르는 걸까?
왜 내가 수험생이란 걸 전혀 신경 안 써주지?
남들은 노량진도 보내주고 아무 걱정 없이 공부만 하라고 경제적인 부분에서 다 뒷받침해 준다는데 우리 집은 왜 이러지?
못난 딸의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원망이었다.
실제로 내 친구 중에는 부모님이 공부에만 신경 쓰라고 천만 원, 이천 천만 원 지원해 줘서 고시원에 들어가고, 교재며 인강이며 원하는 대로 다 누리고 1년 안에 바로 합격했다는 얘기를 그녀의 결혼식장에서 들었다.
시험을 잘 봤으니까 붙었겠지.(부모님이 지원해 줘서가 다는 아니겠지, 그래도 어느 정도는 영향이 있겠지.) 중요한 건 나와 그 친구는 환경이 다르다는 건데,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내 힘으로 바꿀 수 없는) 각자 다른 환경인 점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나는 내 환경에 맞게 공부를 했어야 옳았는데 그땐 부모님을 원망하는 마음이 컸던 건 사실이다.
공부를 하는 사람도 나고, 시험을 보는 사람도 나다.
누군가를 원망하고 부러워한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내가 다르게 생각하고, 현실을 직시하고 뭔가 행동을 하지 않으면 변화는 일어나지 않는 것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제가 뉴스에서 들었던 내용이 불현듯 떠오르는 건 어쩔 수 없다.
사람들은 기회의 균등을 공평하다고 하지만, 그 기회를 가진 사람들의 배경은 공평하지가 않다. 똑같이 수능 시험을 치른다고 해도 학원, 과외 다 거치고 공부만 하는 학생과 당장 생계도 빠듯해서 일하면서 학업까지 겸해야 하는 학생을 두고 볼 때 과연 그 기회가 공평한 것인가.
핑곗거리만 찾고 싶었던가 보다.
남을 보지 말고 나를 보자.
언제가 봤던 책의 글귀를 되뇌며 다시 정신을 차린다.
사람들은 자신과 남을 비교하는데, 남과 나를 비교할 것이 아니라 나의 어제와 오늘을 비교해야 한다.
그리하여 부모님의 부부동반 계모임 날에, 그 말 못 하는 짐승들은 '밥 챙겨준 예쁜 주인집 (장수생의 길에 들어선) 딸 덕분에 포만감을 느낄 수 있었다고 한다.
* 전혀 슬기롭지 못했던 공시생의 비교급, 2부를 마치며
안타깝게도 가장 몹쓸 예(최상급)가 또 있었음을 조용히 공지하는 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