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급 공무원 불합격하기가 가장 쉬웠어요.
< 사진 임자 = 글임자 >
* 간절히 공무원 합격을 바라는 수험생들의 주의를 요합니다.
<문제 >
다음 중에서 공시생으로서 하기 적절하지 않은 행동을 고르시오.
1."결혼을 한다고? 그럼 내가 가야지."
2."새로 사귄 남자 친구랑 이번에 집에 같이 내려온다고? 그럼 당연히 얼굴 한 번 봐야지."
3."공부만 하기 아까운 날씨야. 기분 전환도 필요하니까 바람이라도 쐬고 오면 머리가 더 맑아져서 공부가 더 잘 될 거야. 아무리 공시생이라지만 골방에 갇혀서 공부만 하고 살 수는 없잖아."
4. "곧 제산데 엄마 혼자 준비하기 힘드니까 내가 가서 도와드려야지."
정답은 '모두 다' 해당한다.
가끔 문제를 풀다 보면 맞는 것으로 '해당되는 것을 모두 고르라.'라고 했을 때 보기 모두 다 해당되어 정말 이게 답이 맞나 싶으면서 황당할 때처럼, 정답인 것 같으면서도 극도의 불안감을 느낄 때처럼, 공시생 신분으로서는 차마 하지 말아야 할 그 모든 행동을 나는 다 하고야 말았다.
남의 결혼식에 굳이 공시생이 친절하지 않은 몰골로 참석할 필요까지는 없을지도 몰랐다.
(입고 갈 드레스도 없는 마당에, 축의금은 더더욱 없는 가난한 살림에 어쩌자는 거야.)
친구의 남자 친구는 친구의 부모님께 인사드리러 온 것이지 공시생의 안부가 궁금해 내려온 게 아니었다.
(내가 눈에 들어오기나 하겠어?)
공부만 하기에도 모자란 시간이다.
(남의 시간을 사 오기라도 해야 할 판이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날씨가 아무리 반짝반짝 빛을 내뿜어도 공시생은 기상 변화에 민감해하지 말았어야 했다. 공시생에겐 두 가지 종류의 날씨만 존재할 뿐이었다. '합격이라는 맑은 날'과 '불합격이라는 폭우가 쏟아지는 날' 말이다.
전환할 기분이란 것은 애초에 없었다.
(공시생은 기분에 쉽게 휘둘려서는 아니 된다.)
괜히 바람 쐬고 들어오면 바람만 들어서 돌아오기 십상이다.
머리가 맑아지는 게 아니라 깨끗하게 비워져 버릴지도 모를 일이다. 싱숭생숭해지기만 할 것이었다.
'공시생'이니까(그것도 이젠 어엿한 장수생) 골방에 갇혀서 공부만 해야 했다.
적어도 양심이란 게 있었다면 말이다.
공시생에게는 '세상 바깥으로의 접근 금지 의무'가 은연중에 있다는 것을 미처 깨닫기도 전이었다.
여러 차례 밝힌 바 있지만 나는 성실하지 못한 공무원 수험생이었다.
'공무원' 하면 왠지 '성실함'이 먼저 떠오르던 나였는데, 어느 경로로 들어온 선입견(?)인지 모를 일이다.
어쨌든, 철없는 여유로움으로 나의 수험 생활은 길어졌다.
날씨가 눈부시게 화창하면 집에만 있기 아까운 날씨라며 바람 쐬러 나가고, 고등학교 때 친구가 결혼하다고 연락 오면 지역이 어디든 찾아가 축하해 주고(그녀들은 나를 안쓰러워하고 결혼식의 분위기는 침울해지고), 집안 제사며 명절, 행사가 있을 때면 당연하게 참석하는 등의 만행을 이루 다 헤아릴 수 없다.
적어도 수험생이라면 그러지 말았어야지. 진정으로 원하는 목표가 있다면 그를 위해서는 주변을 어느 정도 정리하고 단절도 하고 어느 누가 불러도 눈 질끈 감는 과감함도 보여줬어야 했다.
합격했다고 필요 서류 내라고 할 때만, 그 부름에만 응하면 될 일이었다.
일 년 중 풍경이 아름다운 때는 또 생겨나고, 내가 그 자리에 굳이 끼지 않아도 천재지변이 일어난다거나 그 일이 잘못된다거나 인류 평화가 깨진다거나 하는 일은 결코 발생하지 않는다.
나 자신이 소용없어서가 절대 아니라 '내가 나서야 할 것 같은 분위기'는 오로지 혼자만의 생각이다.
마치 지금의 상황처럼 내가 빠져나온 조직이 더 잘 굴러가듯이 말이다.
우선은 공무원 시험이라는 대상을 제대로 파악 못하고 내 분수도 모르고 엉뚱한 자신감으로 '보건직' 시험을 준비했던 것이 내 첫 번째 잘못된 행동이었다.
두 번 째는 끈기 부족으로 시험 언저리 때만 그나마 수험생 흉내나 내면서 모질지 못하게 공부했던 것이고, 마지막은 진심으로 '절박한 마음'으로 내가 결정한 길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과거 그분으로부터 공무원을 해 보라는 제안을 받았을 때는 그냥 막연히
'공무원은 겸직도 안되고 한 번 시작하면 정년퇴직할 때까지 공무원으로 살아야 하는데 다양한 일도 좀 해보고 싶다.'
라는 마음이 조금 더 컸을 때라, 언제 될지도 모르는 공무원을 하기 전에 여러 가지 일을 해봐야지 하는 마음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틀렸어, 틀렸어, 그때 내 생각이 틀렸어.
세상에 영원한 건 없었어.
대학 산학기관에서 '볍씨 발아기 공장'에 들어가 납땜하는 일도 해 봤고(뜻밖에도 숨겨진 내 재능을 발견하는 쾌거를 이루었다), 대학 때 교생실습 나갔던 경험으로 학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도 해봤다.(아이들아, 그땐 미안했다.)
지금 하기엔 엉뚱한 얘기일지 모르지만 선생님은 정말 진실한 마음으로 아이들을 대할 수 있는 사람이 됐으면 좋겠다. 사실 교사가 될 깜냥도 안된다는 것을 나 자신이 제일 잘 알고, 교사 임용은 애초에 안중에 없었지만 그저 바람이다.
단순한 생각에는 교사라면 기존 지식을 퇴직할 때까지 우려먹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 항상 공부를 하는 사람이어야 하고, 기본적으로 아이들에게 애정도 있어야 한다고 굳게 믿었으므로 나랑은 완전 반대니까 양심상 그쪽으로는 눈길도 안 줬다.
좋은 선생님 한 분이 한 명의 학생에게 얼마나 커다란 영향을 미치고, 어떻게 그의 인생을 바꾸어 놓을 수 있는지를 수도 없이 보아왔다.
물론 반듯하고 정직한 공무원도 어떤 민원인에겐 중대한 영향을 줄 수도 있는 일일 것이다.
아이가 온라인 수업을 하는 걸 지켜보면서 '교사도 정말 극한 직업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나도 하루 종일 민원 상대하고 나면 퇴근 때 입이 다 썼다. 어느 직업이나 쉬운 게 없다.
교사인 친척과 친구가 여럿 있는데 그들이 늘 하는 말도 그랬고, 갑자기 선생님들에 대한 존경심마저 든다.
집에서는 내 아이들이라도 '사람' 만들어서(노력해서) 그들이 이 사회에 무언가를 하면 그것도 좋은 일이다.
그럭저럭 일거리 찾아서 하고 미련 없이 살다가 마지막엔 공무원 하면 되지 하는 오만방자한 생각의 대가는 연이은 시험 불합격뿐이었다.
역시 불합격하고자 하는 나의 노력은 배신하지 않았다.
* 전혀 슬기롭지 못했던 공시생의 최상급, 3부를 끝으로 '이렇게만 하면 공무원 불합격할 수 있다.'
다소 부끄러운 과거지만 잠깐 데리고 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