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 10. 4. < 사진 임자 = 글임자 >
'면접은 잘 봤어요?'
'어땠어요?'
'그래도 한 명만 뽑았으니까 붙을 거예요.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면접을 마치자마자 문자가 왔다.
'때문에 씨'였다.
그 당시 나와 가장 활발하게 온라인상으로, 비대면으로 교류하고 있는 유일한 만물의 영장이었다.
어떻게 내 면접일을 기억하고 있었는지, 어쩜 면접이 막 끝난 것까지 알았는지 때마침 안부 문자를 보내왔다.
좀 세심한걸?
아니 철두철미한 건가?
...설마 나를 스토킹 하고 있는 거야?
누군가 내 일에 관심을 가지고 챙겨준다는 느낌을 받았다.
찰나였다.
아니야 아니야, 감성에 젖어서는 안 돼. 그냥 문자 한 번 보내 본 것일 뿐일 거야.
관심이 아니야, 그는 내 일에 간섭을 하고 있는 거야.
챙겨 주는 게 아니야, 광개토 대왕이 영토확장을 해 나가듯 오지랖의 영역을 확장해 가는 것뿐이야...
냉정해야 해.
필기시험을 합격하고 1명 뽑는데 1명만 합격했으니 달리 면접 준비할 것도 없겠다 싶어 남들처럼 면접 스터디를 한다거나 카페를 찾아 정보를 주고받고 한다거나 하는 그런 활동은 전혀 안 했다.
그래도 그렇지 지금 생각하면 면접관에 대한 예의도 없었던 것 같다. 면접도 중요한 시험인데 말이야.
나 한 명만 뽑았으니까 천지개벽이 일어나지 않는 한 날 탈락시킬 일은 없지 않겠어? 이렇게 안일한 생각으로 면접 준비도 긴장감 없이 슬렁슬렁 면접 준비 시늉만 내고 양심도 없이 면접에 임했다.
최소한 응시 지역에 대한 기본은 알고 가야겠다 싶어 나름 예상 질문으로 생각되는 몇 가지만 간추려 면접 준비를 했다.
남들이 면접 스터디를 하는 이유가 다 있을 터인데.
혼자 정보의 바다에서 몇 개의 월척을 거둬들이고 나보다 더 잘난 답변들을 고심한 끝에 추리고 추렸다.
으리으리까지는 아니어도 한참이나 고개를 꺾어 올려다봐야 하는 도 청사가 주는 위압감에 그렇잖아도 준비가 부족했던 나는 지레 주눅 들어버렸다.
면접 다운 면접은 내 생에 그게 아마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일인데 좀 더 많은 것을 준비해야 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그러나
어쩜, 면접 질문이 내가 예상했던 그대로다.
면접관님도 나와 같은 바다에서 낚시를 하셨나 보다.
실수로라도 비켜가지 않았다.
충분히 예상했던 질문이 나왔지만 미리 공부한 대로 답변이 나오지는 않았다는 게 안타깝기만 했다.
도대체 나 그동안 뭘 준비한 거라니?
크게 어려운 건 없었지만 횡설수설하며 엉뚱한 말만 아무렇게나 하고 나온 느낌이었다. 끝나고 나서야
'이렇게 성의를 안 보이는 면접자는 만에 하나, 이례적으로 떨어뜨려 버리는 거 아닐까'
그제야 정신이 번쩍 드는 것이었다.
후회해 봤자 이미 끝난 일이고 물도 다 엎질러 엉망진창 흙탕물로 만들어버린 느낌이랄까.
한 번쯤은 나도 면접 스터디란 걸 경험해 봤더라면 좋았을 텐데 아쉬움이 많이 남았다.
특별히 어려운 주제에 대한 질문도 아니었는데 너무 바보 같은 대답만 하고 나온 것 같아 스스로도 부끄러울 지경이었다. 옆에 누가 없었기에 망정이지. 앞뒤가 안 맞는 것 같은 부족한 답변은 그 면접관과 나만 들을 수 있었다는 게 참으로 다행스러웠다. 공부도 많이 하고 준비도 많이 하고 질문에도 또박또박 자신감 있게 말 한마디라도 하고 왔었더라면 좋았을 것을.
그래도 어찌어찌 면접까지 끝냈고 이제야 진짜 뭔가 해낸 것 같은 기분이었다.
한참 이 생각 저 생각에 마음이 요동치고 있던 바로 그때,
'오늘 면접인데 이제 다 끝났겠네요?'
하면서 슬슬 문자로 접근해 오던 그 남자.
나에 대한 분리불안 증세가 있다고 여겨졌던 그 남자.
한동안 내 기억 속에서 밀려났던 '때문에 씨'로부터 온 문자.
이 절묘한 타이밍 좀 보게나.
내가 얼마나 바보 같은 행동을 하고 어리석은 대답만 잔뜩 하고 나왔는지에 대해 느닷없이 푸념부터 늘어놓았다.
'어차피 이젠 다 끝났잖아요. 별일 없으면 붙을 거니까 신경 쓰지 마세요.'
남의 일이라고 이렇게 쉽게 말해도 되는 거야?
참 낙천적이기도 하셔라.
아니지, 너무 공감 능력이 없는 거 아냐?
사회성이 좀 부족한 것 같기도 하고.
내가 면접을 못 봐놓고 애먼 사람을 탓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어떡해요? 그렇게 준비도 않고 대강 면접을 봤으니 떨어질 만도 하겠네요. 다시 시험 준비해야 되는 거 아니에요?'
라고 설사 저렇게 반응해 줬다한들 내 기분이 나아졌으려나?
이러나저러나 나는 못마땅해했을 것이다.
그러나 노처녀 히스테리는 절대, 결코 아니라고 밝히는 바이다.
차차리 그냥 장수생 히스테리 정도라고 해야 위안이 된다.
'자주 보아야 보인다.
자꾸 보아야 있는 줄 안다.
너도 그렇다.'
그렇다.
그는 언제나 있는 듯 없는 듯 '보호색'같은 사람이었다.
관심인지 오지랖인지 가끔은 헷갈리게 어느새 내 일상에 스며들어 그와 나의 경계가 흐릿했다.
신경 쓰지 않고 나대로 살고 있으면 어느 순간 내 일상에 들어와 있는 것이었다.
어찌 됐건 필기와 면접은 모두 내 손을 떠났고, '때문에 씨'는 여전히 남아 있었다.
해야 할 숙제를 다 마친 나는 다시 한번 무료한 일상으로 돌아가야 할 때였다.
이제 뭘 한담?
마땅히 해야 할 일이 사라져 버린 뒤의 허무함이 반갑게 인사를 건네 왔다.
그와 인사를 마치자마자 '새날'이 조급하게 뒤쫓아왔다.
'정말 새날을 맞이하게 될 거야.'
미소를 지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