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이상형은 아니지만 '오늘부터 1일'

남녀 교제의 잘못된 예, 너무 공시생의 연애

by 글임자
22. 10. 8. 사실은 이상형도 아니었는데

< 사진 임자 = 글임자 >


"전 임자 씨가 마음에 드는데... 어때요? 우리 사귀어 보는 게?"

"마약 하세요?"

"아니오."

"그럼 혹시 도박은요?"

"그런 건 안 해요."

"그럼 사귀죠 뭐."

기본적으로 '소학', '논어', '맹자' 이런 것들은 섭렵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눈 질끈 감아 줄 수 있다.

그러나, ' 마취 작용을 하며 습관성이 있어서 장복하면 중독 증상을 나타내는 물질을 통틀어 이르는 말'에 해당되는 것을 가까이한다거나 '돈이나 재물 따위를 걸고 주사위, 골패, 마작, 화투, 트럼프 따위를 써서 서로 내기를 하는 일'에 심취한 사람은 가까이하고 싶지 않았다.

그런 사람은 굳이 나와 연관되지 않아도 되었다.


맹세코 처음 방문한 그의 고시원에 이바지 음식으로 싸들고 간 그날의 삼계탕에는 아무 짓도 하지 않았다.

내가 그에게 한 짓이라고는 새끼손가락 두 개에 봉숭아 물을 들여 준 것뿐.

신규자 교육 때 그는 항상 손을 꼬옥 쥐고 있었다고 했다.


내가 만들어 간 음식만 먹으면 그는 훌륭하고도 냉철한 판단력의 소유자로 변신하는 게 분명했다.

극악무도한 '외모지상주의자'의 간택을 받은 나는 어리둥절할 뿐이었다.

"아니, 이 동생이 더위를 잡쉈나? 넌 내 스타일이 전혀 아니야. 어지간해야 말이지. 완전 아니야. 이럴 수는 없어. 전생에도 아니었고 현생도 아니고 내생에서도 아닐 거야.'

처음부터 둘이 어째 보자고 만난 것은 아니었으나 솔직히 이웃사촌도 보기에 흐뭇한 외모면 더욱 반갑듯이(지극히 개인적인 10년 전 의견이므로 넓은 마음으로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냥 아는 사이일지라도 이왕이면 내 스타일이기를 바랐다.

내 주위의 모든 사람들이 한결같이 말했다.

내 이상형 같은 사람은 이 세상에 없다고.

있더라도 이 세상 사람은 아닐 것이라 하였다.

과연 그러했다.

나의 이상형은 세종대왕님이었으니 말이다.

30년을 세종대왕님이 부활하시기만을 바랐으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남자 전용 고시원을 들어가는 여자 사람을 보고도 애써 외면하며 유리창 안의 총무는 고개를 의식적으로 돌렸다.

남자 전용이라면서, 이런 식으로 여자 사람들이 많이 들락날락 하나 보지? 가만, 이 사람도 상습범 아냐 혹시? 한 때 고시원 총무 감투를 쓴 적이 있다더니 그때 진 신세를 이제야 서로 갚는 건가?

의심이 고개를 쳐들려고 할 때쯤 홀아비 냄새 풀풀 나는 너무나 비좁은 독거인의 방에 입성하고 말았다.

외간 남자에게서 홀아비 냄새가 났다.

태어나서 한 번도 고시원이란 곳을 가 본 기억이 없는 나로서는 문화충격이었다.

그렇게 숨 막히는 곳에서 공부하고 먹고 자고 했다니 남의 동생이지만 또 주책맞게 안쓰럽다는 마음이 들었다.

버스 정류장에서 나를 타박하던 그 모습을 보고 절대로 내 음식 보따리는 풀지 않으리라, 집에 돌아가는 길에 무거워 양쪽 어깨가 떨어져 나가면 나갔지 녹두알 하나라도 내어주고 싶은 마음이 싹 사라질 땐 언제고 짠한 마음에 이성을 잃고서, 챙겨 간 음식들부터 1인용 밥상 위에 죄다 늘어놓았다.


감격에 겨워 내가 한 그릇 떠 준 삼계탕에 그는 곧 눈물이라도 흘릴 기세였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당시 엄마의 10인용 압력솥을 통째로 횡령하여 버스를 3번이나 갈아타고 그에게 당도한 것이다. 그것도 한여름 땡볕도 마다하지 않고(마다 할 것을 그랬다. 사양하는 것도 미덕인데) 자그마치 농촌에서 도시로 경계선을 넘었다.

그도 선을 넘었다.

"라면 먹고 갈래?"

도 아니고

"식빵 먹고 갈래요?"

한 마디가 나를 붙들었다.

선을 넘는 방법도 가지가지로구나.


눈물 젖은 빵보다 더한 것이 냉장고 안에서 석고화 되어 죽어가는 식빵이었다.

진짜 빵이 아니라 모조품 인지도 모르겠다고 잠시 생각했다.

대접할 거라고는 그것뿐이라며 민망해하는 그에게

"케첩이라도 있으면 좀 줘 봐요."

손님 행세를 다 했다.

씨간장보다도 오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조상 대대로 내려오는 씨 케첩인지 잼에 가까운 그것은 석고 식빵과 천생연분이었다.

케첩을 뿌려 심폐소생술을 시도해 봤으나 회생의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그날 밤 나는 배탈이 났던가?

이미 한낮 무더위에 진이 다 빠진 채 방문한 그 고시원 방에서 나는 배고픔을 느끼지 않았지만 방 주인의 형식적인 성의에 식빵 한 장을 다 먹어 치웠다. 내가 먹이를 다 먹고 나자 대뜸 한다는 말이

"전 임자 씨가 마음에 드는데 우리 한 번 사귀어 봐요."

였다.


그때는 이성을 집에 놓고 그에게로 간 게 틀림없다.

가뜩이나 양손에 짐이 많아 무거운데 '이성'씩이나 데리고 가기엔 힘에 부쳤다.

'이 사람이 나를 무슨 밥차 누나 정도로 생각하는 거야 뭐야? 음식 잘 먹고 엉뚱한 소리만 하네?'

라고 머리로만 생각했다.

그래서 나도 한다는 말이

"마약 하세요? 도박은요?"

였던 것이다.

하필이면 마약도 않고 도박도 안 하는 바람에 그만......


거듭 밝히지만 그날 삼계탕에는 그 어떤 환각물질 비슷한 것도 섞지 않았건만 지난번 김밥 사건과 같은 불상사가 또 생기고야 말았다.

대답하기에 앞서 "때문에 씨'의 식빵과 케첩의 첨가물 성분 분석이 먼저 시행됐어야 했다고 뒤늦게서야 탄식했다.

겨우 두 번 만난 남자 앞에서 하지 말아야 할 소리를 한 것은 지금 생각해 보니 비단 무더위 때문만은 아니었던 듯싶다

독거인들이여,

상대방이 대접하는 음식을 조심하시라.


마약도 않고, 도박도 안 하는 남자는 그 남자 말고도 세상천지에 넘쳐나더라.

꼭 그 남자였어야 할 이유는 없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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