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그냥 궁금해서, 우리 딸이 도대체 누구랑 통화하길래 그렇게 재미있어 하나 엄마가 궁금해서."
나이 한 살 더 먹었다고 이젠 엄마가 묻는 말에 순순히 자백하지 않고 자꾸 요리조리 대답을 피하는 것 같았다.(고 나는 느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합격아, 어쩌고 저쩌고 그렇고 저랬어?"
라고 내가 물으면,
"응, 엄마. 그건 요렇고 조렇고 이렇고 그랬어."
라고 친절히도 대답해 주더니 이제 더 이상은 아니다.(라고 슬슬 느끼고 있는 중이다)
이게 바로 말로만 듣던 그 흉흉한 소문의 실체, '사춘기'란 말인가?
하긴 6학년이면 이상할 것도 없다.
초등 교사인 친구 말이 요즘은 3학년이나 4학년부터 시작한다고 했다.
"합격이는 늦었네. 요즘 애들은 진작에 사춘기 와. 지금 그런다고 해도 이상할 거 하나도 없어."
라고 간증을 해 주었으므로, 나도 언젠가는 (아마도, 반드시 그렇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호환, 마마, 호랑이, 불법 비디오테이프보다 더 무서울 예정인 딸의 사춘기에 대비해 마음을 단단히 먹고 있었으므로 딸의 시큰둥한 반응이 많이 놀랍지는 않았다.
바야흐로 초등학교 6학년, 뭔가 슬슬 시작할 나이도 되었다고 막연하게 생각해 오던 터였다.
이제 내 딸도 더 컸고 감정의 변화가 죽 끓듯 할 수도 있을 테고 엄마와 거리를 좀 두고 싶어 할지도 모를 일이라고 기원전 2,000년 경부터 예상해 왔지만 당장 딸에게 저런 대답을 들으니 처음엔 좀 당황스러운 건 사실이었다.
그러나 나에겐 자랑스러운 스파이가 있다.
스파이를 파견했다.
"우리 아들, 누나가 지금 뭘 하고 있을까? 진작 방에 들어갔는데 아직도 안 나오네. 막 누나 방 문 열고 들어가지 말고 가만히 들어 봐. 누구랑 얘기하는 것 같기도 하고 공부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거든. 우리 아들이 한 번 갔다 와 볼래?"
"응, 알았어, 엄마. 내가 조용히 갔다 와서 알려 줄게요."
신실한 엄마의 사랑의 메신저인 아들이 당장 출동했다.
그동안 거실에서 공부하던 딸은 어느 순간부터 제 방에 들어가서 공부를 하겠다고 들어가서는 한참 동안 나오지 않기도 했었다. 대개는 공부를 하고 있었지만 소일거리를 하고 있었던 적도 있었고, 문을 열고 들어가 보지 않는 이상 문 밖에서는 도대체 안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모르겠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엄마, 누나가 누구랑 얘기하는 것 같은데? 근데 잘은 안 들려서 뭐라고 하는지 모르겠어."
아들이 충실히 임무를 수행하고 내게 결과 보고를 했다.
"그래? 우리 아들, 고마워. 이따가 곧 나오겠지 뭐."
들릴 듯 말 듯, 마치 화상영어라도 하듯이 딸은 분명히 누군가와 대화 중인 것 같았다.
문까지 닫고 저렇게 오랫동안 도대체 누구랑?
혹시?
설마?
남, 자, 친, 구?
난 아직 딸의 남자친구를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
물론 설사 정말 남자친구가 생겼다 하더라도 내가 무슨 마음의 준비를 한단 말인가. 내 남자 친구도 아니고 딸의 남자친구인데.
벌써 남자친구를 사귄 건가?
뭐가 저리 좋아서 히히 하하 호호지?
만약 남자친구가 생기면 꼭 엄마한테 알려 달라고 한 오백 년 전부터 그렇게 당부를 해왔는데, 엄마 몰래?
물론 딸의 사생활을 간섭하려는 의도에서는 아니다.
최소한 딸이 어떤 친구를 사귀고 만나는지는 알고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 싶어서 그런 것일 뿐이다.(라고 구차하게 변명부터 생각한다)
엄마는 주책맞게 또 삼류 소설을 써나갔다.
아니 왜 얘가 그동안 입도 뻥끗 안 한 게지?
슬쩍 힌트라도 줬어야 하는 거 아닌가?
과거 나의 전과를 들춰보자면(여기서 잠깐, 라테 한 잔 마셔 주고) 물론 나는 딸 나이만 할 때 남자친구의 'ㄴ'도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맹세코. 그게 꼭 잘했다기보다 아무튼 굳이 말하자면 그렇다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