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고부 수다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임자 Mar 13. 2024

1화. 어머님 무릎만 아니었다면

이게 다 무릎 때문이었다

2024. 2. 10.

< 사진 임자 = 글임자 >


"어머님 무릎 상처는 좀 어떠세요?"

"이게 오래돼서 그런지 잘 안 낫는다."

"병원 다니시면서 소독도 하고 약도 드시고 그러세요. 저번에 보니까 심하던데요."

"그래, 알았다. 시간이 가면 낫겠지."

"귀찮아도 좀 신경 써서 관리하셔야 나중에 무릎 수술도 받으시죠. 그리고 감염 안되게 조심하시고요."

"그래, 그럴란다."


처음에 시작은 미미했다.

단순했다.

누가 시킨 사람도 없고 바란 사람도 없었지만 정말 걱정이 돼서 말이다.


그러니까 내가 매일 시가에 전화를 하게 된 건 순전히 어머님 무릎 때문이었다.

때는 바야흐로 작년 설 무렵이었다. 설을 쇠려고 갔는데 어머님이 계속 무릎이 안 좋다고(사실 그전부터 많이 안 좋긴 했다) 상처도 조금(절대 조금이 아니었다) 있다고 하시면서 바지를 걷어 올리셨는데 난 그만 깜짝 놀랐다. 무릎 주변에 심한 상처가 여럿 있었다.

"어머님, 여기 왜 이래요?"

"으응, 그게 뜸을 뜬다고 뜬 것이 그렇게 됐다."

"어디서 하셨길래 이래요? 피부가 많이 상했는데요?"

"저기 누가 소개해 줘서..."

"어떤 사람인지도 모르는데 그렇게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사람한테 하신 거예요?"

"우리 동네 사람이 잘한다고 하면서 자기도 하고 효과 봤다고 그래서 그랬다."

"그래도 어머님, 그런 사람들은 못 믿어요. 자격증이나 있겠어요?"

"하도 사람들이 잘한다고 하길래 나도 너무 무릎이 아파서 그랬지."

"그냥 병원을 다니시지. 뜸도 잘못하면 안 되는데."

"이제는 안 할란다. 나도 이거하고 고생 많이 했다."

"어머님, 앞으론 절대 하지 마세요. 그런 사람들은 그냥 여기저기 다니면서 한 번 해주고 가버리면 그만이잖아요. 만약에 부작용이 생겨도 어떻게 할 수도 없고. 그런 뜨내기한테는 절대 받지 마세요."

"그래, 알았다."

"그리고 연휴 끝나면 바로 병원 가보세요, 꼭이요."

"안 그래도 가 보려고 했다."

"제가 보기엔 좀 심한 것 같아요. 엄청 아팠을 것 같은데요?"

"아팠지. 말도 못 하게 아팠다."

어머님이 아팠다고 진저리 칠 정도면 정말 아픈 거다.

우리네 엄마들은 어지간해서는 아프단 말을 잘 안 하시는 법이니까.


무릎 연골이 다 닳아서 거동도 불편한 어머님은 '행여나' 하는 마음에, 누가 옆에서 용하다고 자꾸 부추기는 바람에(물론 용하다는 기준이 어떻게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선뜻 그 세계에 발을 들이셨단다.

그것도 아버님과 부부동반으로. 우리 부모님도 그렇고 어른들은 도대체 왜 그럴까, 정말 이해가 안 될 때가 있다. 우리가 보기엔 뻔히 이상한 말이고 말도 안 되는 얘기인데 그만 솔깃해지고 순식간에 넘어가버린다. 내 눈엔 다 보이는데 그게 안 보이나 싶을 때도 많다. 하지만 얼마나 간절하면 그랬을까. 병원에 다녀도 계속 아프기만 하고 마침 누가 잘한다고 슬쩍 한마디 해주는 바람에 '그런 거라도' 하면 좀 낫지 않을까 하는 그런 간절함에서 말이다. 그런 마음을 이해 못 하는 건 아니지만 난 적어도 정식으로 자격증을 따고 떳떳하게 한 곳에 정착해서 일을 하는 사람을 그나마 믿지 뜨내기 나이롱은 못 믿겠는 거다. 물론 자격증만 안 땄다 뿐이지 정말 실력이 좋은 사람도 간혹 있을 수는 있을 거다. 그래도 뜨내기는 못 믿겠다. 자격증도 있고 실력도 있고 버젓이 개원해서 합법적으로 치료하는 사람이 세상에 얼마나 많은데?

어머님이 들으시기엔 좀 안 좋았을지 모르겠지만 저런 식으로 계속하다가는 몸이 망가질 것 같아 나도 어쩔 수 없었다.

이왕 듣기 싫은 소리 한 거 계속 밀고 나가는 거다.

"어머님, 어머님 무릎은 너무 써서 연골이 다 닳아버렸어요. 병원에서 그랬잖아요, 무릎 수술 밖에는 답이 없대요. 그런데 그런 뜸 몇 번으로 되겠어요? 아무 소용없어요. 그러니까 이제 그런 건 아예 단념하세요. 꿈도 꾸시지 말라고요!"

라고는 차마 말할 수 없었다.

정말 어머님 무릎은 상태가 심각했다. 어설픈 뜸으로 해결될 게 아니었다.

아마 어머님도 잘 알고 계실 거다.

하지만 오죽했으면, 정말 오죽했으면...


"어머님, 아무리 남이 잘한다고 해도 어머님한텐 안 맞을 수도 있어요. 한두 번 해보고 아니면 그만두셨어야죠."

"그게 처음에는 좀 낫는 것도 같더라."

"병원도 다 자기 연이 닿아야 한다잖아요. 이 사람한테는 잘 들어도 나한테는 안들 수도 있고 사람들이 다 똑같진 않잖아요. 정말 다시는 그런 사람들한테 치료받지 마세요. 나중에 어머님만 고생해요. 그런다고 그 사람이 알아주기를 해요, 보상을 해주기를 해요? 애초에 그런 사람한테는 가지도 마세요. 제가 진작에 알았으면 못 하시게 했을 텐데."

"그래, 네 말 들을란다, 며늘아. 이제 안다닐란다. 우리 며느리 말 들어야지."

잔소리만 하는 며느리라고 싫은 내색을 할 법도 한데 어머님은 그래도 앞으로 절대 그러지 않겠다는 약조까지 내게 하셨다.

정말 기술이 있는지 어쩐지도 모르지만 입소문으로 용하다는 말만 믿고 그렇게 아픈데도 참고 계속하셨다니, 어머님이 안쓰럽기까지 했다. 친정 엄마였다면 아마 더 강력하게 나갔을 거다.

"엄마, 그렇게 용한 사람이 왜 돌아다니면서 하겠어? 그렇게 실력이 좋으면 진작에 뉴스에도 나오고 전국에 다 소문이 나서 무릎 아픈 사람 하나도 없을 걸? 생각을 해 보슈!"

라고 내 속에 있는 말을 그대로 다 뱉어냈을 거다, 물론.

하지만 어머님은 남편의 어머니니까, 내 친엄마가 아니니까 하고 싶은 대로 다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나는 어머님을 위해서 한 말이라곤 하지만 어머님 입장에서는 듣기에 껄끄러울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도 자꾸 얘기하고 얘기하고 중간 점검을 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고 나는 어떤 사명감마저 느꼈다)

어머님에게는 아들이 둘, 딸이 둘이나 있지만, 나는 엄연히 남이지만, 그냥 내가 나섰다. 평소 '우리집 일에 나서지 마.'라면서 그 양반은 말해 왔지만 말이다.

그렇게 시작되었다, 나의 백일 전화 프로젝트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