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아침, 공무원이 음주단속에 걸린 까닭은?

나는 맹세코, 남편의 음식에 술을 타지 않았다.

by 글임자


22. 10. 28. 본 사건과 아무 상관 없습니다.


< 사진 임자 = 글임자 >


"혹시, 우리 가족이 먹는 음식 중에 술이 들어간 게 있어?"

"무슨 소리야 갑자기?"

"나만 먹는 음식에 술 넣은 적 없어?"

"내가 술을 왜 넣어?"

아침 9시도 안 되었는데 휴대폰이 울렸다.

OOO

남편의 이름 세 글자가 화면에 떴다.

옛날 옛날, 호랑이가 금연하던 시절에 남편 음식에만 뭔가 다른 걸 넣은 적이 있는 나는 뜨끔했다.


"오늘 아침에 출근해서 음주 측정 검사해 봤는데 높게 나와서 말이야."

다짜고짜 도통 무슨 소린지 모르겠다.

"느닷없이 왜 학교에서 음주측정을 해?"

"오늘 애들 체험학습 간다고 했잖아."

이제 이해가 갔다.

지난주에도 학생들 수학여행 가는데 부산을 떨며 아침 일찍 출근한 날이 있었다.

굳이 새벽같이 일어나서 사사건건 내 일에 간섭하다 급기야 아침부터 가정불화를 일으키고 출근한 날이 있었다.

"애들이 수학여행 가는데 왜 자기가 일찍 출근하는 거야?"

"세상 물정 모르는 소리 좀 하지 마. 내가 버스 계약 담당자잖아. 일찍 가서 이상은 없는지 검사할 거 하고 해야지. 기사 아저씨들도 혹시 모르니까 음주 측정도 해 봐야 되고."

'세상 물정 모르는 소리', 과연 그 소리는 무슨 소리일까.

남편이 저토록 흥분하는 걸 보면 아무래도 매우 아름답지 못한 소리인 것만은 분명하다.

내가 세상 물정을 모른다기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행정실의 업무를 모르는 것뿐이다.

말은 똑바로 하자.

내가 담당자도 아니고 행정실에서 일해 본 적도 없는데 어떻게 그 속사정을 알겠냔 말이다.

그러나 나는 다른 물정은 다 알아도 남의 편의 업무 분장표에 있는 물정만큼은 알고 싶지가 않다.

아침부터 남의 편의 횡포에, 갑작스러운 갑질에 기분이 썩 유쾌하지 않았다.


오늘도 학생들이 버스를 타고 이동을 하는가 보았다.

그래서 또 음주측정기를 썼나 보다.

운전하시는 분은 당연히 그러려니 하겠는데, 직원들도 같이 측정을 하는 건가?

궁금하지만 묻지 않는다.

괜히 긁어 부스럼 만들기 있기 없기?

게다가 상대는 자그마치 남편이다.

내 질문이 몰고 올 후폭풍 내지는 '세상 물정 타령' 따위는 듣고 싶지 않았으므로.

그 타령, 혼자 잘 간직했다가 인간문화재로 거듭나시기를 바랄 뿐이다.

'아' 다르고 '어' 다르다고 내가 몇 번이나 얘기했던고?


"아침에 측정해 보니까 'high'로 나오더라?"

"어젯밤에 술 마시고 잤어?"

"아니. 난 혹시 자기가 내 음식에 술 탔나 해서."

"내가 음식에 술을 왜 타?"

"잘 생각해 봐. 진짜 안 탔어?"


사람이 속고만 살아서 그런다.

'웬 술을 내가 타겠냐고. 차라리 약을 타버리고 싶다.'

오해는 마시라.

내가 말하는 약이라 함은 '고된 직장생활에 찌들어 만성피로에 허덕이는 우리 집 가장을 위하야, 의 기운을 한껏 북돋아 줄 자양강장제 같은 그런 종류의 약을 말하는 것이다.

'박하수'에라도 밥 말아 주고 싶다.

내가 얼마나 남편을 끔찍이 생각하는데?

정말 끔찍하다 끔찍해, 진심으로,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우러나와서.


"진짜 이상하네. 근데 왜 그렇게 나오지? 저번에도 불어 봤는데 그때도 그랬어. 다른 사람들은 안 그래. 나만 그런다니까. 진짜 술 안 탄 거 맞지?"

"바빠서 술 탈 시간도 없어. 진짜 안 탔다니까 왜 그래?"

"그럼 우리 집에서 나만 혼자 주로 먹는 음식이 뭐가 있지?"

집요함을 끝을 달리는 이 남자.

"임자 씨 때문에 내가 지방직 시험에 떨어졌어요."

라며 접근해오던 집착남의 끝판왕 시절이 불현듯 떠오른다.

"아침에 요구르트 먹는 거 그거 말고는 다 똑같지."

'집에 있으면서 그런 거라도 해야 하지 않겠냐'라며 강요 반 제안 반으로 내게 수제 요구르트를 상명하달하다시피 했었다.

역시 '반반 사랑'의 화신답다.


"그럼 그게 문젠가?"

"그거야 모르지. 혹시 오늘 아침에 이 안 닦고 가서 그런 거 아냐?"

"오늘 이 닦았어."

거세게 반발했다.

"하긴 이 안 닦고 불었으면 그 기계 진작 고장 났겠지."

"이 안 닦은 거랑 무슨 상관이야?"

"요구르트가 발효된 거라 그런가? 그래도 좀 이상하긴 하다. 할 때마다 그렇게 나온 거 보면 아무래도 몸속에 뭔가 문제가 있는 거 아냐?"

"무슨 문제?"

"아니, 비정상적으로 분비되는 뭔가가 있다거나 하는 그런 거 말이야. 난 잘 모르겠다. 나중에 병원 가서 물어봐."

"의사가 어떻게 알아?"

그러는 댁은 아시고?

의사가 모르면 도대체 누가 알까?

검사를 해 보면 뭔가 가닥이 잡히지 않을까 해서 한 말이었다.

최소한 우리 둘 보다야 나을 거라 확신한다.


"둘이 백날 얘기해 봤자 결론 안나. 그냥 병원 가서 확인해 봐."

"뭘 이런 걸 가지고 뭘 병원에 가?"

이런 거 가지고 병원 안 가면 뭘 가지고 병원 갈 건데?

"그럼 병원 안 가고, 어디 법원이라도 갈래? 가서 판사님한테 판결 내려 달라고 하게?"

만약 가게 된다면 법원 중에서도 중년부부가 사이좋게 갈 곳은 '가정법원'이 될 것이다.

소 제기의 내용은 물론 달라질 것이다.

철없을 적 내가 동경해 마지않았던 그곳.


내 말은 듣지도 않을 거면서 왜 나한테 전화했나 모르겠다.

도대체 무슨 병일까?

저런 얘기는 듣지도 보지도 못했다.

술 한 방울도 안 마시고 갔는데 아침 댓바람부터 음주단속에 걸리다니.

최근 공무원의 음주 관련 징계가 강화되면서 남편도 여간 신경 쓰는 게 아니다.

가만 보면 여전히 (남편이 근무하는 그곳) 공직사회는 '술 권하는 사회'다,라고 종종 생각해 왔다.


이슬방울 한 방울도 맛보지 못하고 억울하게 당한 남편의 넋두리에 역시나 술 뚜껑도 만져본 적 없는 아내의 머리가 다 지끈거렸다.

그 와중에도 생각했다.

날도 추워지는데 이제 요구르트 대신 뜨끈한 '박하수'에 밥 말아줘야겠다고.

어쩌면 좋아? 자나 깨나 남편 생각뿐인 세상 물정 모르는 나란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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