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마설마했는데, 남편이 나를 사랑하는 걸까?
그것도 설마 진심으로???
22. 10. 24. 반반 사랑의 결실 혹은 그 남자의 아내 사랑법<사진 임자 = 글임자 >
"잘 먹었어."
"고마워."
"사랑해."
남편의 플레이 리스트다.
어디에 녹음을 해 놓고 주기적으로 반복 재생을 하는가 싶게 나오는 말들이다.
가을 개편이 대대적으로 필요해 보이지만 여태 그는 손을 놓고 있다.
특히나 마지막 '사랑해'라는 저 말은 진심으로 심히 의심스럽다.
그럴 때마다 나는 말했었다.
"입술에 침을 얼마나 많이 발랐는지 한 번 볼까?"
나이 먹을수록 체내 수분 부족으로 인하여 마른침도 삼키기 아까운 나는 입술에 바를 침이 없어 이제는, 그에게 차마 저렇게 말하지는 못한다.
대신 내 마음이 과연 진심인지부터 살핀 후에야 입 밖으로 꺼낸다.
세상에는
도무지 믿기 힘들지만,
직접 본 적도 없지만,
설마설마했는데
아내를 사랑하는 남편이 있다고 한다.
얼마 전 남편이 낙지 한 접(스무 마리)을 사 가지고 왔다.
"요즘 어머님 아버님 일 많아서 바쁘신데 가서 도와드리지도 못하고 그래서 사 왔어. 갖다 드려. 못 도와드려서 죄송하다고 전해줘."
누구 하나 사위 보고 도와달라고 요청한 사람도 없고 그러기를 바라지도 않았건만 한 번씩 저런 말을 서슴없이 하곤 한다.
"글쎄, 낙지는 확실히 전달해 주겠는데 그 말은 생각 좀 해 볼게."
찰나의 순간에 생각했다.
'도와드리는 건 고사하고 거의 가지도 않으면서 갑자기 왜 이러지?'
1년에 한두 번, 많으면 서 너 번 가는 편이다.
우리 집에서 친정과의 거리는 차로 자그마치 25분씩이나 걸리기 때문이다.
왕복 50분씩이나 걸리는 머나먼 거리를 사위님이 어떻게 가신단 말인가.
그러나 시가는 가는데 2 시간 정도니까 왕복 4시간 정도밖에 걸리지 않으므로 가볍게 다닐만하다.
내가 육아 휴직했을 때는 우리 가족이 매주 간 적도 있었다.
남편에게 처가란 곳은 갈 수 없는 먼 나라 이웃나라다. 그래서 못 가는 것이다,라고 혼자만 생각해왔다.
아니지, 철저히 본인의 의지로 안 간다고 해야 맞겠다.
"전에 우리 직원 보니까 일 년에 한 번도 갈까 말까 한다더라.하여튼 처가 가까운 것도 별로라니까. 내가 가면 어머님도 불편하실걸?"
직장 환경의 중요성을 절실히 느끼게 되는 순간이다.
내가 친정에 갈 때 같이 가자고 하지도 않는데 웬 뚱딴지같은 소린지 모르겠다.
우리 엄마 불편할까 봐 그런다네, 장모님을 끔찍이도 위하는 대견한 사위다.
'자랑스러운 효부상' 이런 건 2022년을 사는 우리에게 시대에 뒤떨어진 발상이다.
바야흐로 '자랑스러운 사위상'의 시대가 도래할지니, 군민의 날에 혹여라도 '자랑스러운 사위상'을 시상한다고 하면 눈 딱 감고 남편을 적극 추천할 용의가 있다.
나는 기꺼이 팔불출이 되리라.
그러던 남편이 갑자기 낙지를 우리 부모님께 드리려고 사 왔단다.
말이라도 고마웠다.
하지만 안다.
그가 말로만 그렇게 한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우리 부모님을 생각해서 낙지를 샀을 것이란 걸.
갑자기, 설마설마했는데 그럴 리가 없는데
'설마 나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거 아냐?'
하는 강한 의혹이 들었다.
'정말이면 어떡하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예로부터 아내가 예쁘면 사위가 절을 할 처가 말뚝이 없어서 낙지를 한 접씩 사서 보내는 미풍양속이 대대로 전해져 내려온다는 사실을 나는 잘 알고 있다.
낙지는 우리 부모님께 드렸는데 왜 나를 진심으로 사랑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을까.
낙지 스무 마리에 난데없이 베일에 싸여있던 그의 마음이라도 확인하게 된 기분이었다.
극도의 불안감이 찾아왔다.
그럴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설마 그럴 리가?
혼란스러웠다.
두렵다.
만에 하나, 그 의혹이 사실로 드러난다면?
아이들이 받을 충격을 어떻게 감당한담?
가족끼리 이래서는 아니 된다.
이게 말이나 될 법한 소린가.
남편이 제 아내를사랑하다니.
그런 풍경은 책에서나 보고싶다.
영화감상으로도 족하다.
세상에 이런 법은 없느니라.
결혼 후 10년이 지났으면 제 아내보다도 남의 아내를 사랑(?)하는 게 더 자연스러운 막장 드라마 같은 요지경 세상에.
세상에 이런 일이!
그럴 리가 없을 텐데, 평소의 말과 행동으로 미루어 보아 그건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것보다도,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보다도 더 희박한 가능성이라고 생각했다.
"엄마, O 서방이 엄마랑 고생하시는데 못 도와드려서 미안하다고 하면서 드시라고 보냈어."
하나뿐인 사위가 정말 그 실체가 있기나 한 건지 가물가물하던 엄마는 새삼 사위의 존재를 상기하셨다.
길 가다가 만나서 싸움이 나도 장모와 사위는 서로 얼굴도 못 알아보고 드잡이를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생각만으로도 아찔하다.
"와서 일해주는 거 바라지도 않는다. 고맙다고 꼭 전해라."
생각해 보니 얼마 전에 귤도 10Kg씩이나 사서 집에 갖다 드리라고 해서 나눠 먹었던 기억이 있다.
무엇을 살 때 남편은 종종
"어머님도 갖다 드리면 되지. 어머님이랑 나눠 먹자."
이러면서 대량 구매(굳이 그럴 필요까지 없는데)를 종종 하곤 한다.
그리하여 저 말 한마디만 생각하면 세상에 둘도 없는 사위로 오해하기 딱 좋다.
각자 알아서 소량 구매하며 적당히 살면 될 일인데 남편은 '일단은 사서 나누자'라는 식이다.
내가 그렇게 하자고 말한 적도 없고 엄마가 그렇게 해 달라고 부탁한 적도 없는데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걸핏하면 사서 나누고, 나누기 위해 두 배, 세 배를 사는 그는 '키다리 사위'란 말인가.
언제나(정확히는 본인이 마음 내킬 때라고 해야 맞겠다.) 뒤에서 은근히 우리 부모님을 뒷바라지해 주는?
추리(를 잘하지 못하는)의 여왕(은 되지 못하는)은 급히 그 사건의 전말을 속속히 파헤치기에 이르렀다.
'주식은 이미 너도 나도 요단강을 다 건너가 버렸고, 도대체 뭐지?'
한참을 생각해도 남편이 갑자기 내게 친절하게 대하는 태도가 이해되지 않았다.
근래에 보기 드물게 다정하다고도 느꼈다.(이건 정말 나만의 착각일지도 모른다. '다정하다'라는 말의 뜻이 혹시 그동안 변질이라도 되었는지 사전 상의 뜻을 정확히 헤아려봐야겠다.)
다정하다고 기원전 3,000년 전쯤에 느껴보고 너무 오랜만이라 내가 그 의미를 정확히 파악하고 있지 못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무슨 사고라도 크게 쳤나?'
항상 마음의 준비는 하고 살긴 한다.
'장바구니에 물건을 또 얼마나 담아놨길래 저러지?'
어쩐지, 최근에 택배 오는 횟수가 좀 잦다 싶었다.
본인이 벌어 본인이 사겠다는데 내가 뭐라고 하겠는가.
가정경제가 파탄날 지경만 아니라면(저러다 파탄 나겠다 싶을 때가 있다.) 스스로 감당할 수 있다면(감당할 수 없다고 느낄 때가 많다), 월급에 준해 적절히 요령껏 사들인다면(뻔한 공무원 월급으로는 답이 안 나온다고 내 눈에는 다 보일 때가 있다.) 크게 관여하고 싶지 않지만 관여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들이 종종 생겨서 문제인 것이다.
아내를 사랑하는 마음을 실체를 건네며 눈에 띄게 표현하는 물질만능주의자 남편이라니.
그러나,
지나치게 장바구니에 물건을 마구 쓸어 담으며 마우스를 클릭하는 그 검지는 미워할지언정 그 사람은 미워하지 않으련다, 당분간만이라도.
이것이 바로 낙지 한 접의 효과다.
솔직히 지속기간은 나도 장담할 수 없다.
반은 진짜인 것도 같고, 반은 확신이 없다.
나에 대한 남편의 사랑은,
짐작 반, 의혹 반.
그러니까
그래.
'반반 사랑'이다.